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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1/5

이름

모든 관계의 진실은 그 이름 안에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이름에 충실하려고 애를 써왔다.

 

때로는 부여 받은 그 이름에서 나의 의미를 찾았고

그 이름에서 때로는 억울할 수도 있는 서러움을 스스로 무시하며 잠재울 수 있었고,

그 이름에서 비누거품처럼 무궁무진하게 일어나는 나의 이기심의 거품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이름은 이 땅에서의 나의 울타리였다.

 

울타리는 여러 방향을 다 아우르고 있어

그 여러 방향에서 각각 다른 이름을 나에게 지어 주었다.

 

난 나의 의미를 그 이름들에서 찾아왔었고 거기서 자리를 굳힌 내 이름들이

이 땅에서의 나의 의미를 굳건하게 해 주었다.

결국 그 울타리가 내가 누리는 자유의 땅의 지경이 되어 돌아왔다. 

난 그것이 이 땅에서 얻은 나의 소산이라 여기며 기쁘게 여겼었다.  

 

그 울타리에서 나는 도리어 보호를 받고

또 그 곳이 황폐하지 않도록 그 안의 땅을 일구고 살았다.

그 과정에서도 부족함은 분명 드러났었고 부족함의 결과가 남았을 것이나 ..

그것은 내 능력의 한계일 뿐이었다고 스스로 일축할 수 있을 정도로

후회가 남지않는 세월이었다.

 

그러나 .. 

그 부족함의 결과가 ..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내 아이들이 상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몰랐었다.

 

자기 주도적인 인생을 사는 법 보다는 

주변의 평화와 유익을 위해 물 흐르듯 필요한 자리에 스미는 인생으로 살도록 길들여진 나는 ..

척박한 땅 .. 할 일 많고 .. 여러 이름으로 자주 불리워지는 곳에서 

더더욱 나의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고 즐기는 방법을 터득할 여유가 없었다.  

 

내가 내 아이들에게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생활 속에서 행동으로 가르쳤지만 ..

내가 거름이 되어 주변이 즐거워진 것으로 내가 행복해지는 피동적인 기쁨보다 더 우선이 되어야 하는

자기 주도적인 행복을 삶에서 찾아내고 건전하게 인생을 즐기며 사는 방법의 길은 보여주지 못했다. 

 

한참 사춘기를 겪고 있는 딸애의 어수선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

어떤 면으로는 내가 그 아이에게는 참으로 이기적인 엄마로 살아 온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희생하듯 내 아이들의 즐거운 시간들을 따라 희생시키며 이룬 것은

희생한 만큼의 가치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 없는 것들이었다.

그 사실이 너무도 미안했다.

 

내 아이들이 누려야 할 당연한 기쁨들을 채워주지 못하고서

무슨 이름들에 그리 충실하려 하였는지 ..

그 충실은 가부장적 제도의 관념에 포로가 된 나의 열심일 뿐인 것들도 많았었는데..

  

이제라도 내 품에 있을 날도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은 내 딸아이와 함께 

과하여 문제가 되지 않는 한도에서 행복하고 기쁜 기회들을 찾아나서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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