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은 날 제 어미로 여기고 산다.
조제실 뒤 제 의자에 누워있으면서도 천장에 있는 거울로
수시로 내 동선을 살핀다.
내가 신을 갈아 신던지.. 겉옷을 걸치던지..하면
어느새 문 앞에서 이미 기다리고 있다.
어쩌다 저 자는 사이에 내가 나가고 없을 때는
내 책상과 한약 조제실과 약국 온 구석구석을 바쁘게 뒤지다가
내가 나간 문이 어느 쪽인지 냄새를 맡고는
정확히 나간 문 쪽에 앉아 날 기다린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다가도
다른 사람은 인지하기도 전에..
내 차가 들어오는 소리를 먼저 듣고는
오히려 들어가 버린다.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몰라도
나는 그것을 그 녀석이 나에게 화를 내고 있는 중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아침에 딸애 계란 후라이를 해 줄 때면..
냄새로 아는지 소리로 아는지 몰라도
딸애 다음 차례는 제 것으로 생각하는지
내 발 밑에서 입맛을 다시고 있다.
그 녀석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단연 우리 애들에 대한 나의 애정표현이다.
질투심이 그 녀석을 아주 예민하게 자극하는 것을 알고 있다.
칠 년을 넘어 살았으니..
자신이 내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심하게 불안해 하며 질투하고 애태우며 나에게 매달린다.
자식처럼 늘 내 손을 기다리는 그 녀석의 질투가 나에게는
한낱 개의 투정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녀석의 삶에서 우주의 중심은 제 녀석일테니까..
그래서 어지간하면 그 녀석의 비유를 맞춰주는 편이다.
그 녀석을 키우면서 알게 된 것은 그 조그마한 머리와 심장에서도
사람들이 느끼는 왠만한 감정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놀랍게도 고마워 할 줄 알고.. 사랑한다는 눈빛에 반응하고..
때로는 정말 놀랍게도 위로도 해 줄 줄 안다는 것이다.
지난 일요일 날, 아들 아이가 다녀갔는데..
밤 늦게 딸애가 들어오고 나서도 계속 현관문 앞에서 웅크리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제 형이라 불리는 아들아이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난 그 녀석의 불안해 어쩔 줄 모르는 질투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