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난 내 나이 사십을 넘어서야..
내가 미치도록 좋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몸서리치도록 싫은 것이 무엇인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내가 눈 감고도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난 내 나이 사십을 넘어서야..
내 영혼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고
그 영혼의 소리가 내 안의 진짜 나를 깨우게 된 것 같다.
왜 내 귀는 나의 영혼의 소리를 듣기보다 주변의 소리를 담기 위해 열려 있도록 강요 받았었을까?
왜 내 감정들은 나의 감정보다 주변의 감정들에 맞춰지도록 길들여졌을까?
난 암벽등반가들의 자연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눈을 뗄 수 없다.
난 선천적으로 힘의 분산을 통해 체중을 최소화 시키며 자연과 하나되는 일은 정말 잘 할 수 있었는데..
난 가볍게 바람처럼 스치지만 스치는 곳의 향기를 그대로 품어버리는 뛰어난 감수성이 있었으나
그 아름다운 감수성을 왜 하찮은 사람들의 감정의 냄새 따위를 품어 날라 사람에게 매이게 되었을까?
꼭 그림이나 음악이 아니라도 내 안의 감성을 다른 표현의 도구들로 표현하고 살았으면
원인 모를 내 안의 열정에 나를 태우는 일은 없었을텐데..
본디 야성이 강한 호랑이가 고양이처럼 사람의 손에 길들여지게 키워져
본능의 야성의 정체를 도리어 혼란스럽게 여기며 살아왔던
불쌍한 내 인생의 한 단면이다.
만일.. 내 영혼의 소리를 아주 어려서 들을 수 있었다면..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빠져 하나님 생각이 지금보다 간절함이 못했을까?
정말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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