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날의 끝자락의 여운.
어둠이 내리자 뿌연 구름으로 덮힌 하늘 위로 보름달이 떠 있었습니다.
날을 거꾸로 지내는듯 낮을 밤처럼 자고 나오는 저의 눈에
그리 선명하지는 않지만 하늘에 홀로 떠 있는 보름달은 동양화를 보는 것처럼 운치가 있었습니다.
지나치게 밝은 약국의 전등들과 주변의 네온사인들은,
여러 색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다 까만색 크레파스로 전체를 다시 칠해 버리고
그 위에 프라스틱 끌로 새로 그림을 그리면 밑바탕의 색이 하나하나 살아나는 것처럼
잠에서 깨어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한 낮에 잠이 들었다 땅거미가 질무렵 깨어난 아이처럼 왠지 모를 슬픔에 싸이지만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
그것은 절대 내색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남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제 책상에 앉아 아버지 하나님 앞에 앉았습니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네요.
생각이 전혀 담기지 않고 수묵화를 감상하는 관객같은 모습으로 산 하루..
하지만 이런 저의 하루 모습이나
자기 열심이 원동력이 되어 가던 길을 계속 가던 날들의 모습이나
아버지께 가는 길에서의 가속도 제로 상태는 같은 것이라 억지 위안을 삼아 봅니다.
도리어 가속도는 제로상태에 도전하지만 역회전하여 자기 정리가 필요한 날..
부식토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많이 어지럽고 많이 아팠던 날..
한 번씩 돌아오는 이런 날들은 제 마음의 방들을 정리하는 날입니다.
오늘 저녁 하늘에 뜬 둥근 달이 텅 빈 제 방을 환하게 비추는 날..
제 마음에 당신의 은혜와 사랑이 깨끗한 눈이 되어 소리없이 내리는 날입니다.
온통 하얀 색의 세상.. 해가 뜨고 하늘에 그 해의 빛이 가득해지면
제 마음이 받았던 하얀 은혜와 사랑들이 그 빛을 반사해 온통 빛들의 환한 세상을 만들어갈테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 살아 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세상이라면
저는 아버지께서 창조하시다 말은 그 상태에서 저의 모든 것이 그대로 멈춰버려
영원한 성에 고립된 가위손 에드워드처럼 그렇게 살고 말았을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해져 도리어 울적해지기까지 하는 이 밤..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동고동락하시다가
우리를 당신 계신 영광스러운 곳까지 올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하시고
믿음의 후손들인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우리들을 믿음의 강에서 태어나게 하신 우리의 영원하신 아버지가 되시기도 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유난스레 선명하게 드러나는 밤입니다.
제게 무엇이 가장 소중한 보물인지가 선명히 드러나는 이 밤에
저의 비어진 마음에 당신의 그 위대한 사랑을 담아주셔 위로와 격려와 희망을 새롭게 하여 주시고,
당신의 독생자 예수님으로 인해 저의 아버지가 되게도 하여주신 하늘 우리 아버지께..
깨끗한 사랑의 기도의 향을 피워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