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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돌

저는 살아있는 돌입니다.

 

때로는 하늘에 떠 있는 살아있는 빛을 받아 화사한 빛으로 반사하여 화답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때까지 머금은 빛들이 도리어 돌 내부로 스며들어 내부의 속내를 비추어

돌 자체가 흔들흔들 하기도 합니다.

 

내부로 빛이 흡수될 때에는 저의 본질의 바닥을 들추어 저로 깜짝 놀래키기도 합니다.

 

 

저는 살아있는 돌입니다.

 

때로는 가벼운 햇살에 깃털처럼 가벼운 기쁨으로 나비처럼 날기도 하지만,

때로는 추운 겨울 곰처럼 어두운 굴 속에 갇히기도 합니다.

 

그 어두운 굴 속에 스스로 갇혀지는 순간에 저는 한 없는 충격을 받습니다.

 

 

저는 살아있는 돌입니다.

 

때로는 성령의 바람을 타고 스스로 날고 있음에 놀라기도 하지만

때로는 골짜기를 타고 도는 돌개바람에 떨어진 낙엽처럼 떠올라 곤두박질쳐지기도 합니다.

 

썩은 나뭇잎에 따라 누워 나도 그들과 하나된 슬픔에 하늘이 온통 잿빛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저는 살아있는 돌입니다.

 

때로는 받은 은혜가 감사해 온 세상이 빛으로 온통 하얗게 변하여 제 몸까지 하얗게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받은 은혜가 병풍 그림같이 생명력을 잃고 저를 둘러싼 추위와 어둠에 

한 겨울밤 개천에 버려진 돌처럼 더럽고 거칠기까지 합니다. 

 

 

저는 살아있는 돌입니다.

 

한 여름의 뜨거운 열기에 쪼개지기도 하고

한 겨울의 한기에도 깨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걱정이 없습니다.

제가 어떠한 모습의 돌이라도 당신의 관심 아래 있기만 한다면 

커다란 바위이든 조약돌이든

깨어지고 깨어져 아무 쓸모없는 화강암 조각이든 모래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래도 제가 살아있으니 다행입니다.

 

내부로 스며든 빛들이 서로 부딪쳐 천둥 번개를 내어 돌 자체가 웅웅거리며 울 수 있는 것도..  

당신이 하늘에 세운 빛들로 내 안의 빛들과 화답하며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도..  

모두 제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니까요.

 

 

당신께서 만드신 세상..

 

제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든지 그 모든 모습이 당신의 세계 안인 것이고

저의 어떤 감정이든지 그 모든 감정 또한 당신의 입김으로 된 것이기에

저는 당신께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단지 당신의 사랑에 죄송스러울 뿐이지요.  

 

 

예전엔 이런 기분이면 낙담하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아들을 온전히 죽음에 내어 주셔서 그 죽음에서 부활의 세계로 걸어 나오게 하신 당신의 사랑 앞에

제가 무엇을 감추며 부끄러워 낙심하겠습니까?

죄송한 마음으로 얼른 일어서서

옷매무새 바로 하고 머리 곱게 빗어 핀 찌르고 다시 당신 계신 하늘을 향하여 나아갈 수 밖에요. 

 

죽고 싶을 정도로 우울하여도 제가 저의 삶을 포기할 수 없음은 저는 살아 있는 돌..

당신께서 생명을 넣어 주신 돌이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는 영이시라 당신을 제 눈으로 확인할 길은 없으나..

저란 돌에서 숨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당신이 계심이 분명합니다.

 

생명없던 돌에서 기쁨이 피어나고, 생명없던 돌에서 노래가 나고

생명없던 돌에서 기도의 향기가 나니까요.  

 

 

제가 미웁거나 예쁘거나 당신께는..

당신의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신 ..

 

저는 살아있는 당신의 돌이 맞지요?

저에겐 저에겐 그 사실만으로도 다시 일어서기에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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