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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1/5

아버지의 신문

굳이 말로서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규율로 우리집에 정착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날 새로 들어온 신문은

항상 아버지가 처음 펼치셔야 되는 것으로 알고있는

식구 모두의 인식이었다.

 

아침 읽찍 출근하셨기 때문에 우리집 경우에는 석간신문을 받아 보았는데

그날의 신문은 늘 아버지 퇴근시간까지

늘 같은 자리에서 자신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릴적에 난 저녁을 드시고 신문을 들고 계시는 아버지가 많이 야속했었다. 

철없는 아이적이었지만 신문에 집중하고 계시는 아버지는 다른 세계에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어느날 뜬금없는 아버지의 질문으로서였다.

 

신문에 눈을 박고 계시던 아버지가 바로 옆에 앉아 제 할 것 하고 있는 딸에게

갑자기 전혀 예상 밖의 질문을 하셨다.

"너는 죽기까지 굶고서 보고픈 얼굴 한 번 보고 죽을래?

 어짜피 한 번 보고 말것이니 잘 먹고 살래?"

"한번 보고 말 것 같으면 난 그냥 먹고 살래요!" 

"그래? 근데 사람은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도 있단다."

 

난 그 후로 아버지께서 신문을 들고 계신다고 늘 신문만 읽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아버지의 성 안에서 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에겐 아버지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신문을 펼치고 있었지만 아버지만의 생각들이 그 신문이라는 성벽 안에서 자유롭게 머물고 있었던 것 같다.

 

때때로는 감정의 절제를 필요한 시간을 벌기도 하고,

그 누구에게서도 위로받지 못할 외로움을 삭히기도 하고..

 

누구와도 말하기 싫어 혼자 숨어들어 쉬고 오는 숲속 공터같은 곳..

그곳이 아버지 손으로 펼쳐든 신문 앞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랬기에 아버지가 신문 보시는 앞에서

어느 누구도 아버지께 장난을 걸거나 그리 급한 일 아니면 말을 시키지 못하게 하는 

근접하기가 쉽지 않은 힘을 느꼈는지 모른다.

  

나의 아이들 키울적에 우리 큰 아이가 한 번씩 "엄마! 지금 무슨 생각해?"란 소리를 하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도 내 아버지처럼 나름 생각의 쉼터가 순간순간 필요했던 것 같다. 

 

혹시나 내 아버지의 신문 앞에서처럼 나에게도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중에 

나만의 성 안으로 들어가 아내나 엄마란 존재의 부재를 틈틈히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닐까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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