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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1/5

고생

오래 전, 인도 비자를 받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들락거릴 때였다.  

 

어머니는 이모댁에서 자라고 꼭 당부하셨지만,

대궐같이 넓은 집, 물 한 방울 튀기기 미안한 호사스런 욕실, 

의례적인 인사치례의 삼십 여분의 절차

...

그런 것보다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친구의 자취방이 나에겐 더 편하고 좋을 것같았다.

 

늦은 밤 캄캄한 길, 처음 들어보는 동네의 고불고불한 곁가지 많은 길을

친구가 말해준 것에만 의지하여 가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자취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전화도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이 캄캄했다.

 

한 시간 가량 낯선 길을 헤매다가 날 찾아 나선 친구를 만나고서야 한 숨을 돌리게 되었다.

반가움도 잠시, 친구의 자취방은 반 지하여서 더위가 숨을 막기 시작했고

씻을 곳을 물어보니, 아주 난감한 표정의 친구 얼굴이 들어왔다.

본디 씻는 곳은 주인집 일 층에 있는 욕실을 사용하고 있는데 지금은 늦은 시간이라

문이 잠겨졌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때는 한 여름..

그것도 길을 찾기 위해 헤매던 한 시간 동안 흐르던 진땀과 먼지로 끈끈해진 몸으로는 

도저히 그냥 잠을 잘 수 없었고..

 

차선책이라도 씻을 곳이 없느냐는 나의 물음에

대문 앞 구석진 곳에 있는 수도라는 친구의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시계는 새벽 두 시를 알리고 있었고..

인적도 끊긴 시간, 동네 개들도 잠이 들었는지 조용하고..

모험을 시도했다. 간 큰 시도였다.

친구는 큰 타월로 가리고 난 거의 오 분만에 샤워를 마쳤다.

얼마나 심장이 두근거렸는지 ..

세월이 그렇게도 지난 지금까지, 그 때의 불안하고도 절실한 기분은 생생하다.

 

그 후로 비록 넓고 멋진 욕실은 아니어도 

깨끗하고 편안히 씻을 수 있는 우리집 욕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씻고난 후의 쾌적함은 호텔 수준 이상으로 사치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아는 이 없는 낯선 타향에서의 잘 곳을 마련하지 못한 이의 불안한 마음과 함께 말이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우리 어머니는 나의 간 큼에 혀를 두르셨다. 

 

고생은 일상의 감사함을 깊게 느끼게 해주는 음식의 밑간 같은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그대로 담을 수 있는 깨끗한 심장을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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