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는 생각이다.
아담과 하와의 창조는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시작 단계였다는 ..
그들의 사랑이 원숙하지 않았음은 창세기에 나오고 있다.
사람이 다듬어지고 모난 것이 깍이는 것에는 다름아닌 사람으로 되는 것이었다.
그것도 사랑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의해서.
아주 지혜롭고 멋진 방법이라 생각한다.
돕는 배필에 의해서, 애정이란 에너지로 서로의 삶에 대한 에너지를 늘 재충전 받으면서
하나님의 목적대로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것..
어쩌면 음과 양이 어우러지고 빛과 어둠이 하나되어
우주에서 보면 먼지같은 빛의 또 하나의 우주를 이루는 것..
결혼이라는 울타리를 통해서
사랑의 기초를 배우고 점차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로 키워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집의 경우에는
동성이었다면 가까운 친구로 지내기가 어려웠을지 모를 정도로
성향과 취미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 함께 거하면서 서로에게 진정한 벗이 될 수 있었다.
지금도 한번씩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남편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것이어서
한 발도 양보할 수 없을 때이다.
다른 이에게는 의미가 없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내 인생에서 이제껏 소중히 다루며 살아왔던 내가 사는 방법이자 나의 색깔이기 때문이다.
결국 가치관에서 오는 차이에 불과한 것이지만
융통성 없이 지나치게 예민하게 구는 나를
그 순간 남편이 힘들어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언짢은 말이 오고간다고 할 지라도
그 말들로 인해 남편의 나에 대한 신뢰에는 의심을 하지 않는다.
또한 그 말로도 상처를 받지 않는다.
어짜피 각자에게 중요한 방향은 틀릴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을 주장하는 방법도 다른 것이니까..
또 그것은 그 상황의 시작이 언쟁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고
살아가는 방법 중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 임을 서로가 이미 알고 있기에
서로 그 속상한 감정에서 얼른 벗어나고자 애쓰고 또 받아주는 여유를 서로 가지게 되었다.
나는 사람에게 존재하는 여러 사랑의 얼굴을 다 가질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방법으로
가정제도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이해하고
자녀를 키우면서 사랑의 폭을 키운다.
자녀를 낳아 키우는 과정은 정말이지 우리가 가진 인내와 사랑의 깊이를 더하게 해 주는 것같다.
어쩌면 그 아름다운 사랑을 가르치기 위한 장소로 가정을 세우셨을지 모른다는 생각과
하나님을 닮아가기 위한 사랑을 훈련시키는 방법과
그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서 우리에게 결혼제도를 주셨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