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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이야기/4

옛 친구로부터의 전화

내가 고의 아니게 내 주변 사람들을 길들여 놓았던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먼저 연락을 하는 경우는 희박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받는 전화에서 바로 어제까지 연락을 주고 받은 이처럼

친근하게 바로 제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통에, 어떤 이들은 그동안의 괘씸죄에서 나를 풀어주기도 한다. 

 

이 친구 역시 저가 전화하지 않으면 내쪽에서 절대 전화를 먼저 넣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예전에 터득하고는

일 년에 몇 번씩 자신이 먼저 전화를 낸다.

이제는, "내 전화번호 알기나 하는 거니?"라는 식으로 딴지를 걸지조차 않는다. 

   

친구는 고2짜리 딸애를 뉴질랜드로 유학을 보냈다 했다.

비슷한 또래 우리들의 아이들의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친구가 세상에 내어 놓은 그 친구의 아이들의 모습이 정말 궁굼해졌다.

함께 만날 기회가 주어지면, 난 내 친구보다 내 친구 아이들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할 것 같다.

 

몇 년 지나 기회가 되면, 우리가 만났던 그 시절 그 나이에

우리가 세상에 내어 놓은 우리들의 아이들이 서로 만나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세월이 얼마나 빨리 지나고 있는 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모습이 떠올랐다.

그 친구의 첫 느낌은 나무 위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있는 청설모를 보는 것 같았다.

 

자신의 영역으로 어떤 누구도 침범하여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야생동물처럼

늘 주변을 견제하는 듯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늘 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나 역시 혼자 다니는 편이었고, 그 아이도 혼자 내 주변을 맴돌고 있었으니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누군가 말동무가 필요한 시간이면 우리는 자연스레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그 당시 나는 나의 살가운 내 고등학교 때의 친구와의 헤어짐을 극복하지 못하던 때여서 

어떤 다른 친구를 사귈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에 그 아이처럼 좀 멀찍히 내 주변에 있어주는 것이 편하기도 하였다.

 

다른 이들은 너무도 다른 성격의 두 아이가 늘 함께 다니는 것을 신기해 했다.

졸업할 즈음 우리 지도 교수님은 처음 그토록 다르던 두 눈빛이 이젠 같은 눈빛이 되어 나간다며 신기해 하셨다.

 

그 친구는 결과를 중시하는 편이었고, 나는 과정을 중요시 하는 편이어서

어떤 일을 함께 하면 서로 마음 상할 일이 종종 발생하였다.

그 아이에게 중요하지 않은 일이 나에게 중요하였고, 그 아이에게 중요한 일에는 나의 열심이 모자라는 것 같았으니

그 아이에게 나는 답답하게 비쳐졌었고, 나에겐 그 아이가 버거웠다. 

하지만 서로에게 없는 면들을 서로 보충하며 의지하던 세월들의 무게가 너무도 커져버렸기에 

어쩌면 우리는 서로 정말 어울리지 않는 친구였음에도 불구하고 늘 옆에 서로를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기의 성향대로 그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영양사로 근무하여 지금까지 가정 경제에 큰 몫을 맡아 왔고

나는 전공을 전혀 살리지 못한 채, 남편의 그늘에서 남편의 보조역할을 맡고 있다.

 

친구는 아이를 호주에 있는 대학으로 보내 그곳에서 살리고 싶어 했다.

그곳으로의 짧은 여행을 다녀와 그곳 사람들의 마인드가 정말 좋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여서 

평소 어린 학생들의 유학에 대해 그리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 않던 나였지만, 친구의 용감한 시도에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유학을 보낼 경제적 여유가 그리 넉넉하지는 않지만,

우리 큰 아이가 자신의 성향과 비슷한 그곳에서 살게되면 그 아이에게 좋을 것 같아서

그 아이에게 말을 던져보니 단번에 "NO!"란 대답이 나왔고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작은애가 단번에 "나는 좋아!"라며 애원하듯 쳐다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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