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보면 우리 아이들은 참 불쌍하게 컸다.
온 집안의 경제력 생산 중심에 서 있는 우리에게
약국은 우리 가족 생활의 중심이 되어 왔었다.
그 생활에서 가장 피해를 본 것이 아마도 아이들이었으리라.
재능 많고 능력 많은 남편은 그가 속한 세계에서 늘 필요한 사람이 되었고
본디부터 외향적인 남편은 약국 체질이 아니라서 학교나 약사회 일에 더 열심이었다.
사정이 그러하니 나는 약국에 붙박이가 되었다.
아이들은 남의 손에서 밥상을 받고
그들이 읽어주는 책에서 책의 재미를 맛보아야 했다.
큰 아이 경우에는 유치원까지는 내 손에서 컸지만,
작은 애 경우에는 유치원 전까지는 외할머니 손에,
그 후로는 남의 손에서 기본적인 것들을 제공 받아왔었다.
그것이 엄마로서 미안하고 마음이 아픈 부분이다.
시장보다는 마트에, 백화점에,
선풍기보다는 에어컨에 익숙해 버린 아이들..
늘 바쁜 부모 밑에 살기에 기차보다는 비행기 타 본 경험이 더 많은 아이들..
약국 직원분들 명절 휴가, 여름 휴가에 더 바빠진 약국일 때문에
남들은 즐거운 휴가를 누릴 시간에 도리어 더 부모의 손이 더 그리워진 아이들..
여행다운 여행 한 번 제대로 다녀 보지 못한 이이들..
우리 작은 애, 초등학교 1학년 사회 시험에 가장 더운 계절은?이란 문제에 '봄'이라 답을 적었고
가장 느린 탈 것은? 이란 문제에 '비행기'라 답을 적었던 시험지를 돌려 받았을 때의 충격이란...
그 작은 애랑 나는 다가오는 토요일 날 여행을 떠나기로 하였다.
열흘 간의 여행이라면 현실의 구속에서 벗어나
생활에서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라, 교육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개성을 가진 각기 다른 인격체로서의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엔 충분한 시간이 되리라 싶다.
기대하지 않았던 정말 감사한 기회이어서
정말 가치있는 대화로 알차게 보내리라 마음의 깃을 여미어 본다.
"엄마! 일러 바치는 것은 아니구요..
오빠 사실,
엄마 발소리 나기 전까지 계속 놀고 있었어요.
모르셨죠?
혼내지는 말고, 그냥 알고 계시라구요.
사실 나도 공부 바짝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예요. (공부는 했지만...)"
약국 마치고 들어와 이것 저것 챙기는 나에게 다가와서
앞에 말없이 내밀던 작은 애의 초등학교 때 적은 쪽지를
우연히 책갈피에서 발견하곤 웃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