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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1/5

더위의 추억

에어컨 고장난 열다섯 살 겔로퍼 문을 여니 숨이 막혀 온다.

이마와 팔등까지 땀방울이 송글송글 올라온다.

 

아무 생각없이 치마를 부채삼아 펄럭이다가

조금은 시원해지면서 옛날 기억이 살아났다. 

 

 

여고시절 더운 여름날 점심시간이면

치마를 부채삼아 펄럭이다가 그것도 성에 차지 않으면  

치마 속으로 책바침으로 부채질을 하다가 그것도 성에 차지 않으면

아예 치마를 벗고 하얀 속치마 하나 달랑 입고 있는 용감한 아이들도 간혹 있었지.

 

갑자기 선생님이라도 불쑥 들어오시기라도 하는 때면

갑자기 냉장고에 들어간듯 창백하게 얼어서는

벗어 놓은 치마 무릎 위에 감아 싸던 털파리같은 아이도 있었지.

 

무엇보다 화단가 수도꼭지 앞에서 세수하고 목과 윗가슴까지 물로 씻고 돌아 나오면

요즘 에어컨보다 더 상쾌했었는데...

그 상쾌한 기분으로 친구와 그늘진 화단가를 함께 걷다보면

나란히 걷는 우리들의 하얀 실내화는 약속이라도 한듯 왼발 오른발 리듬이 맞았었은데... 

엇박자로 걸어보자며 리듬을 깨고

엇박자로 걸으면서 다시 한참을 가다보면 또 같은 발이 먼저 나오고 있어 신기하기도 했었는데...  

 

매미소리 맴맴 

하늘에 가득하던 다섯째 시간

매미소리 자장가 되어 하나 둘 책상에 엎드리리고 

선생님의 비상카드

선생님들의 첫사랑 이야기가 자주 나왔지.

그 이야기가 중반 쯤을 달리면 엎드려 자는 아이 하나 없고 교실 안의 눈들은 초롱초롱 했었지.

 

그 나이적 최고의 관심은 사랑이라

숨을 죽여 듣고 있다가 아이들의 잠이 다 깬 것을 확인한 선생님들은 수업 내용으로 돌아가려 하셨고

아이들은 이미 선생님 첫사랑 이야기의 단맛에 이미 빠져들었기에

그 꿀같은 이야기의 멈춤은 풍선 바늘 찌르는 것처럼 허전해지는 것과 같아서

아이들의 원성은 교실을 꽉차 복도로 연기처럼 새어나가니,

좀 순한 선생님은 지어낸 이야기인지 진짜 자신의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그 이야기의 끝은

각자 알아서 상상해라라며 끝을 맺으셨고,

좀 독한 선생님은 지휘봉 탁자에 탁탁 두들기며 본 수업 내용으로 돌아갔었지.

 

그때는 앞으로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내 첫사랑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나의 미래의 남편은 그 첫사랑일까? 

미래의 내 아이는 어떤 아이들일까?

미래의 내 집 담벼락엔 장미 덩굴이 올라가고 있을까?

...

그런 공상으로 그 수업은 내 머릿속엔 들어오지 않았었지.

 

 

오랜만에 여고적 생각으로 들어가게 하는 더위,

오늘의 더위는 고마운 더위였다. 

 

그때의 친구들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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