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약국에 나오게 된 횟수도 12년이 넘었다.
그 기간동안 수 많은 얼굴들이 다시 볼 수 없는 얼굴들이 되어 기억 속에 묻혔다.
각기 다른 사연들로 사라져 갔다.
흐르는 물길처럼 오늘도
남겨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가 현실이 되어 나에게 익숙함으로 다가온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형편이 여유롭지 못하신 연로하신 분들의
죽음을 향하여 치닿으면서 겪는 몸과 마음의 상태이다.
정말 사그라지는 불씨을 보는 것 같다.
삶이 그리 남아 보이지 않으신 분들이
몸에 힘이 나는 영양제를 달라고 요구할 때 느끼는 망막함이란...
돈이란 구속에서 이미 벗어난지 오래된 분들...
돈은 산 사람을 위한 것이란 느낌이 찬물을 끼얹듯 섬짓한 기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단 돈 몇 백원이라도 깍으려는 사람들을 보면 차라리 마음이 가볍다. 생기가 느껴지니까.
그 분들의 몸과 마음에 담긴 애환들을 보면서
인생들의 사그라드는 형태는 각가지지만
실상 헤아려보면 그다지 다를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햇볕 잘드는 베란다 화분에 곱게 자란 꽃이 따사로운 햇살에 말라 사그라지든,
바람부는 언덕 거친 바람에 시달리다 그 바람에 말라 사그라지든,
사람의 눈에는 차이가 있을 지는 몰라도
꽃이 피고 지어 사그라드는 그 과정은 동일하다 싶다.
내가 사는 동네가 그리 여유가 있는 동네가 아니라서
복없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거친 다양한 삶의 형태들을 가까이에서 자주 보게 된다.
나는 그 안에서
신의 불공평함을 보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를 떠난 우리 인생들의 적나라한 여러 면들의 모습과
목적지 없이 부유하는 물풀들의 애환과 그 물풀들의 의미없는 애착의 부질없음을 본다.
세상에서 바라고 원하는 것
그 역시 건조한 땅이 비를 기다리는 것과 그다지 다를 바 없으며
자신의 삶에서는 원치 않아 정말 피하고 싶은 것
그 또한 연약한 가지에 거친 폭풍우 내리치는 것과 다름없는 것.
그 모든 것은 자연의 일부의 것이라
우리가 자연스럽게 다 받아들이고 결국엔 수용하여 그 자연과 하나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본다.
그 간 사그라진 사람들을 기억해 보면서
그들의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면서 그 육신과 함께 묻힌 것은 그들을 힘들게 했던 자연의 환경 뿐이었고
결국 남는 것은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 그 열매들만 남는것을 본다.
기억에 묻힌 많은 얼굴들의 주인공과 그의 환경들은 자연의 것이었으니 자연으로 돌아갔고
그 자연 속에 남긴 그들의 살아온 발자취만 향기가 되어
남은 자들의 뇌리 속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그들의 생명을 주셨던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께 어떤 의미를 남겼는 지가 남겨졌다.
난 어떤 모습으로 남겨진 이들에게 기억될련지...
내 하나님께는 어떤 의미를 남기게 될련지...
원하였으나 실천하지 못한 많은 일들 앞에
아직 기회의 시간이 남아있음에 새롭게 마음이 뜨거워져
오늘은 기회의 시간을 아직 허락하고 계시는 내 하나님께 무릎꿇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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