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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이야기/3

여호와의 증인 조직의 맹렬한 독

이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조각조각들을 크게 확대해 조직의 기둥과 벽으로 만들었고 

하나님의 말씀의 조각들을 빼어내 조직이 나아가는 방향의 길 바닥에 깔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증인들 모두의 마음을 모아

조직의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 여기며 몰두하게 하였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자신들이 세운 조직의 왕으로 세우고 

눈에 보이는 자신들의 조직을 스스로 예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신권조직이라 주장하였습니다.

   

증인들은 이 조직의 본질에 대해서 추호의 의심없이

조직의 권고나 가르침이 하나님의 권고나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며

이 조직의 해설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며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조직의 견해 말고는 그 어떠한 다른 견해는 수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상조직이라 천명하는 이 조직의 앞뒤 맞지 않는 좌충우돌적 성서이해 또한

서서히 밝혀지는 빛이라는 논리에 적용시켜 자신의 생각을 죽이며 조직의 견해를 기다리는 것이 믿음이라고 합니다. 

조직에 대해 의심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의심으로 여기며 스스로는 죄의식을 갖으며

다른 형제에게는 의심의 영을 지닌 자로 평가하기 시작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영적양식이란 명목으로 주어지는

파수대와 깨어라 그리고 조직의 출판물을 매개로 한 전 세계적인 집단 세뇌.

무형의 조직의 가르침으로 획일화된 모습과 행동으로

유형의 하나님의 참 조직의 모습으로 가름하며 확인하고 안심하는 넌센스.

반듯한 외모 절도있는 생활등 실제 드러나는 외형의 모습들로 선택받은 백성임을 자처하는 선민의식.  

하나님의 의사 통로를 맡고 있는 이들에 대한  적은 무리들에 대한 특별한 시선,

그들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성경에 나와있지 않는 현대판 하나님의 예언일 가능성의 문을 열어두고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나 뉘앙스에서 무수히 나오는 추측과 억측들.

조직에서 ?은 말을 고수하기 위해 성경 해석에 무리수를 두는 행위까지 의심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

그것은 하루 아침에 생긴 일이 아닙니다.

지속적인 집단 세뇌교육의 결과입니다. 

 

이 현실은 분명 현대판 조직 우상숭배의 모습입니다.

  

백여년 전 이 조직을 세운 이들은

자신들은 왕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임명받은 슬기롭고 충실한 종의 반열이라 주장하며,

자신들의 조직을 통하여 하늘의 영적 양식이 내려진다며

자신들의 말을 하나님의 뜻으로 둔갑시켜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그릇 인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성서상의 인물들을 자신의 조직 속 인물들로 끌어들이고

성서 예언을 자신의 조직에 끌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까지 초대하여 그분을 왕으로 세웠으며 하나님의 참 조직이라는 이름의 권위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지배하였고

그들의 생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희생으로 마련한

성서의 주제인 구원의 선물을 가려버렸습니다.

하늘반열인 적은 무리에 대한 개념을 신비한 커튼으로 가리고

구원의 약속을 먼 훗날에나 있을 지상낙원의 바램으로 대치시켜 버렸습니다.  

즉 성경 전체의 흐름의 길을 여호와의 증인조직의 교리를 위한 방향을 돌려버렸습니다.

 

이것은 저주 받아 마땅한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 없는 반역입니다.

정말 이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조직과 결별하고 나온 이들까지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이렇게 움켜잡을 수 있는 것은

이 조직이 가지고 있는 예사롭지 않은 세뇌의 독 때문입니다. 

  

조직안에 있으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입된 세뇌된 교육으로

세상 밖에 나와도 이 세상과 하나될 수 없는 이방인이 되었습니다.

세상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악함 내지는 이방인들의 더러운 세상이란 선입견이 뿌리 깊게 내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싶지만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그 어떠한 교회와도 연합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들 자신 스스로도 진리와 왜곡된 교리가 한데 섞이어 있지만

세상 종교는 거짓 종교조직이란 뿌리 깊게 내려진 선입견을 떨쳐버릴 수 없어

스스로 깨끗하고 고고한 양심을 지닌양 자신의 발을 둘 곳을 찾지 못합니다. 

 

독이 든 진리를 품고 있다손 치더라도 일반 다른 교회 사람들보다

성서지식이 넓고 깊음이 도리어 큰 걸림돌이 됩니다.

조직에서 심어주었던 내면적 걸림돌인 선민의식과 교만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거기에 외면적인 걸림돌인 삼위일체나 지옥 교리들이 나오면

이내 식상하여 그 곳에 발을 디딜 생각까지 없어집니다.

어디에도 갈 곳이 없습니다.

스스로 또 다시 혼자가 됩니다.

 

혼자서 성경을 읽습니다.

하지만 증인 시절에 배웠던 그 내용들이 테잎 돌아가듯 재 인식됩니다.

성서에 대한 지식과 인식은 조직에 남아 있는 증인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조직만 거부하고 있는 셈입니다.

성서를 읽어도 읽어도 다람쥐 쳇바퀴식이라 증인이라는 옷만 벗었을 뿐 내면은 증인입니다.

그러니 믿음 생활에 있어서 증인식 생활 패턴을 벗지 못합니다.

봉사에 익숙해진 몸이 안에서 외칩니다.

예수님의 복음전파의 명령을 어떻게 지킬 것이냐고 묻습니다.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며 너의 믿음은 죽어가고 있다고 위협합니다.

행동하지 않는 믿음에 대한 죄책감과 두려움이 되어 그를 애워쌉니다.

 

영적 양식이라 주어지는 파수대와 공개강연 성서읽기등 그 프로그램에 따라가기만 하면

머릿속은 늘 하나님에 관련된 생각과 성경상에 언급된 믿음들의 생각에 젖어있어

그 생활에 나름대로 만족해 하던 생활에서,

온전히 혼자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와 자신 스스로 일쿼 먹어야 하는 영적 양식이 부실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증인시절 외면으로나 내면으로나 보이게든 보이지 않게든 채워지는 경건함은 있었으나

스스로 하는 홀로 신앙에서는 그것이 별로 보이질 않습니다.

내면의 만족감 역시 내면의 행위에 의한 만족감이었건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다양한 성서 읽기가 예전처럼 되지를 않습니다.

불안해집니다. 외로워지기 시작합니다.

나 혼자라는 생각에 숨이 막힐 것 같습니다. 

그 현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게 만듭니다.

정체성을 잃은 이에게서는 기도조차 나오질 않습니다.

막연히 하나님께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연기처럼 피어오릅니다.

 

 벗이자, 동지이자, 울타리이던 이들이 외면하고 지나갑니다.

사랑하던 이들 모두를 잃었습니다.

그의 의사소통의 통로가 다 막혔습니다.

그의 모든 기억들은 그들에게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데

버림받듯 내 ?겨진 자신이 누구인지도 까마득해집니다.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너무도 고마와 눈물이 날 정도로 가난해져버렸습니다.

 

이방인이 되어 버려진 그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붙여 봅니다.

말은 되지만 혼이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외국에 나온 것 같습니다.

차라리 입을 닫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누군가와 대화하면서 느끼는 고독은

차라리 혼자만의 고독보다 더 황량하기 그지없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이 몰려 옵니다. 

 

이 사회에 적응해 보려 합니다.

그러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은 준비되지 않았고

그가 잘하는 것은 이 사회에서 요구하질 않습니다. 

그의 가치는 여증조직 안에서만 빛을 발할 뿐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력감이 몰려 옵니다.

 

이 모든 현상들은 모두 증인시절 조직의 세뇌를 받아 독이 온 몸에 퍼진 증상들입니다.

 

증인 조직을 나왔지만 내면은 전부 증인의 것 일색입니다.

증인에서 배웠던  성서이해, 하나님과 예수님에 관한 지식, 증인식에서 가졌던 나의 정체성,

이 모두는 증인 그대로입니다. 진정 몸은 나왔지만 몸엔 이미 조직이 세뇌시킨 독이 퍼져 있기에

그 세뇌의 중독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정말 이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진정 여호와의 증인 조직의 세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은 

워치타워 조직으로부터 여과없이 받아들여졌던 성서지식의 재 연구가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버려야 하고 무엇을 간직해야 하는지.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성경의 약속은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참된 숭배의 회복과 진리의 추구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리 주님께 엎드려 도와주실 것을 간구하며 그분께 매달려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선행되지 않고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려는 노력은

증인 옷과 증인 가방을 던진 채, 집에서 조직에서 배웠던 성서 지식을 묵상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가졌던 믿음의 상태로 가만히 있는다면 

증인 조직의 맹렬한 독의 늪으로 계속 빠져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분명히 말하자면 그 상태는 증인조직을 빠져나온 상태가 아닙니다.

진리의 지팡이를 늪 밖에 깊이 밖고 그것에 힘주어 매달릴 때야 비로서

그 세뇌의 늪에서 빠져 나와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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