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시아버님 돌아가시고 많이 울었더랬습니다.
평소 인자하시게 절 많이 아껴주시던 분을 더 이상 못 뵙게 된 것이 슬펐기도 하였고
다른 한 가지는 자기 설움 때문이었는데
이젠 제가 아버지라고 부를 분이 이 세상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아버지란 단어가 나에게 있어서는 주인을 완전히 잃게 된 사실이 저를 많이 슬프게 하였습니다.
아버님 돌아가시자 시어머님에 대한 새로운 각도에서의 시각이 생겼습니다.
시어머니란 자리는 이 분이 아니면 주인 잃은 자리가 될 것이란 새삼스런 애착같은 것이었습니다.
날 며느리라고 여기실 분,
왜 자주 와 보지 않느냐는 투정 또한 이 어머니 아니면 누가 하겠냐는 생각,
낯색만 보아도 무엇이 필요하신지를 알 수 있게 된 이십 년이란 세월 동안 함께 한 기억들,
이것은 이 분 아니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어서
이 분이 계시지 않으면 다 없어질 어떤 세계란 생각이 드니
이 분이 새삼스럽게 내 인생이 담겼던 소중한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면에선 나와 독립되어 있지만 또 다른 나의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 당신의 생명처럼 아끼시는 제 친정어머니나
당신에게 늘 도울 힘이 되어야만 하는 제 시어머니나
이제는 똑같이 내가 살아야 하는 한 의미가 되었습니다.
내가 받으니 좋고 내가 해야하니 부담스러운 단계를 넘어서 버렸습니다.
모두 똑같이 소중한 분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있어 그분들이 힘이 되고 저의 손과 발이 그분들에게 기쁨이 되니,
우리는, 비가 필요한 땅은 비가 고마웁고 자신을 반기는 땅이 있어 비가 행복해지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런 상태가 바로 제가 살고 싶은 인생의 모습이었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은 저보고 온실에서 자란 화초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내면 속 저는 바람부는 언덕에서 자란 야생화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니었지만 청교도적인 생활을 사시는 제 부모님과
상대적 빈곤과 부유를 함께 느끼면서 자라게 해 준 제 환경들.
그 속에서 저는 인간의 진정한 기쁨과 슬픔과 환희와 고뇌를 모두 들여다 보며
사람에게 진정 가치있는 것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로 옆에 있어 주면서 함께 하는 기쁨.
그 기쁨의 가치가 사람에겐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야생화였습니다.
그 이상의 것은 좋아 보여도 이미 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 아버지의 외로움이 제 주변이 되어
늘 마음 가난하였던 저에게도 가장 필요한 것이 그 사랑이었고
그 사랑을 즐기는 것이 참된 기쁨이 되었으니까요.
배 고픈 아이 과자보다는 밥을 찾듯 말이지요.
그것은 전쟁으로 갑자기 당신의 전부였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갑자기 잃어버린
내 아버지의 가난한 마음이 저에게 그대로 전달되었기에
저까지 그 사랑을 늘 고파하며 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제게 물려주신 그 유산은 실은 엄청난 유산이 되었습니다.
늘 배고파 하던 사랑.
그 배고파 하던 사랑의 퍼즐의 짝은 놀랍게도
내 하늘 아버지의 그 크신 사랑의 짝과 맞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조금도 부족한 틈이 없는 완벽한 짝이 되어 더 이상 사랑에 대한 허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내 하늘 아버지와 내 주이신 예수님의 사랑은 저의 유전적인 허기를 완벽하게 채워주었고
늘 배고파하여 그리워하던 것이었기에 그 가치는 온전한 것으로 저의 기쁨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세상적으로는 보잘 것 없는 평범한 분이셨고
당신이 남기신 유산이라면 당신의 땀으로 거두신 빨간 벽돌집과 독산동의 아담한 집이 전부였지만,
그분의 실제 유산은
저로 평생 하나님 계신 하늘로 제 눈을 향할 수 있는
마음의 밭을 남겨주신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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