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향한 나의 양심은 그 순간부터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은 앞으로도 그 양심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어떠한 주저함 없이 떠난 조직이지만, 사실 그 조직을 나오고 난 한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조직이라는 비누방울 같은 속 세상은, 세상과 구별 시키는 무지개빛 보호막이 되어 왔었고,
그 안에서 난 이미 편안한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날이 서있는 양심과 명확치 않았던 이기심의 선의 경계 사이에서 늘 고단했던 나에게,
양심을 조직의 권고에 맡겨맞겨 두는 증인 생활은 더 없이 편했었다.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 조직을 나오는 것은,
이제껏 증인이 되어 누렸던 환상의 세계였던 무지개빛 비누방울 보호막 터트리는 것과 같았다.
그 보호막 세상 밖으로 나온 상태는 영화 "아일랜드"에서 나오는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그 비누방울 속 가상 현실 세상 밖으로 나와도,
큰 무리 없이살 수 있는 생활 기반이 이미 갖춰져 있던 나였지만,
그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가 되지 않아 발을 내딛지 못한채 한참을 서있어야 하였다.
거의 삼년 정도를 머물고서도 그랬으니, 그 조직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다른 형제들은 어떠했을까?
요즈음 조직을 나온 형제들을 보면 그 형제들에게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가슴아픈 이야기이지만, 조직을 떠났지만 조직의 영향권 아래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보인다는 말이다.
우리 형제들,
여호와의 증인 조직이 지나왔던 흔적들로 이 조직이 거짓조직이며 한낱 인간조직에 불과하다는 것을
한 마음으로 목청껏 알리고 있다.
그리고 이 조직의 혐오스런 위선을 들추어, 하나님 이름의 권위로 형제들을 구속하는,
이 조직 원수의 자리에 서는 것에도 어떤 주저함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과 함께 내 눈에 들어오는 또 다른 모습은,
워치타워에서 배운 성경 전체 이해의 틀 전체를 벗어던지기에는 역부족인 모습이다.
워치타워에서 내는 글에 너무도 익숙한 나머지,
그 워치타워식 논리 전개방식이 아닌 글과, 흐름상 이해는 되지만 해당 성구를 적용할 수 없는 글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이러닉한 사실은, 조직에서 한 번이라도 다룬 적이 있는 내용엔 관대함을 적용시키고
언급된 바 없는 생소한 내용과 생소한 용어에 배타적이 되는 경향이었다.
조직에서 별로 다룬 바 없는 부분은, 성경에서 여러번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경향이었다.
여호와의 증인 조직이 거짓 조직이라 확신한다면,
그곳에서 배운 내 것이 되어버린 성서 지식 중에서 지녀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정비하는 단계를
분명히 거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나는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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