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5장을 읽으면서 '선택'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4.5.6. 절
대제사장이 되는 것은 영광스런 일이지만, 자기 마음대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론처럼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역시 스스로 대제사장의 영광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의 아버지가 되었다."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이다."
선택해 주셨다?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의 아버지가 되었다." ?
본디부터 당신의 아들이셨는데 새삼스레 이런 말씀은 왜 남기셨을까?
그렇다면, 하늘 영광을 버리고 낮고 천한 이땅에 오셨다는 내용이 액면 그대로의 진실이었다는 말인가?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천지창조의 일꾼으로까지 함께 하셨던 영광스러운 아버지의 아들의 자리를
완전히 버린 상황에서,
아담처럼 죄를 지으면 천한 피조물처럼 천길 낭떨어지의 죄의 사슬인 죽음으로 소멸될 가능성을 안고
이 땅에 오셨단 말인가?
뒷배경 없는 완전한 아담인, 완전히 새로운 개체로 당신 몸을 던진 것이란 말인가?
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의 범위에서, 당신 아들이신 예수에 관한 영역은 늘 비켜가고 있었다.
인간적인 잣대로 자신의 아들의 영역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영역이 아니던가?
난, 그동안 인간적인 잣대의 시각으로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 오심의 가치를 사실대로 이해하고 못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둘째 아담으로 오셔서 아담이 이루어내지 못한 순종을 이뤄내셔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네 아버지가 되었다"
"너는 맬기세덱의 계통을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이다"라는 승인을 받은 것은
새로운 관계의 선택이자 계약이자 공포였단 말인가?
예수님의 아버지가 우리의 아버지가 되는 길의 시작이 바로 이에서 비롯된 것이란 말인가?
당신의 모든 것을 바쳐 우리를 아담의 원죄의 족쇄에서 끊어내시고,
당신의 고귀한 피로 제단 위의 속죄양이 되셔서 우리의 죄의 삯을 미리 지불하신 것.
죄에 얼룩진 우리가 당신에 대한 믿음을 둔 가치만으로 당신의 핏값으로 깨끗해짐을 입어,
당신이 피흘리며 가신 그 발걸음 따라 가면, 당신 계신 영광스러운 자리에까지 갈 수 있도록 하신 것.
그것이 구원의 의미란 말인가?
그 구원의 통로가 되시기 위해 우리 주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바쳐 희생하신 것이란 말인가?
당신의 희생을 밟고 우리가 구원에 이르도록 자신이 통로가 되어주신 것이란 말인가?
변할 수 없는 당신의 말씀의 법 아래,
스스로 죄인의 길을 선택한 당신의 피조물들과 그들 후손 생명의 가치들을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희생하면서까지 구원하여 주신 방법엔,
하나님 당신의 공의가 이토록 선명히 새겨져 있었단 말인가?
오! 주여 ...
당신의 사랑 당신의 그 희생이 이토록 제 마음에 분명히 새겨졌으니, 저 이제 어찌 합니까?
저는 이제 당신께 스스로 매인 자가 되었습니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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