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6장 7 - 15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하겠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가지 않으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면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낼 것이다.
보혜사가 오시면, 그분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이 잘못 생각한 것들을
책망하실 것이다.
그분은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은 것이 바로 죄라는 것을 말해 주실 것이며
내가 아버지께로 감으로써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라는 것을 알려 주실
것이다.
이 세상 통치자가 이미 심판을 받았다는 것이 심판에 관하여 그분이 책망하실 내용이다."
"내게는 아직 너희에게 할 말이 많이 있지만, 지금은 너희가 그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분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분은 자기 마음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가 들은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될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진리의 성령은 내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려 주심으로써 나를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것이다.
그래서 내가 성령께서 내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려 주신다고 말한 것이다."
아주 조심스런 나의 요즘 생각들이다.
성령에 관한 것과 우주 쟁점 문제에 관한 것이다.
내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던 "너희"였다.
"너희"라는 단어는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라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 사이에 사랑하여 주고받았던 축복이 담긴 덕담의 영향을, 후손들이 보고 있다 하더라도
그 당시 선조들 각 개인을 향한 이야기는 구분되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조심스런 발언이지만 예수께서 주시겠다 약속하신 보혜사는 그 당시 약속 받은 이들에게로
한정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1세기 당시 성령이 내려져 하나님의 성전의 기초가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시기와 때인 어느 시점인 예정된 시간이 되어 가려진 난해 성구와 예언들이 실체를 드러낼 시기일 즈음,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다시 성령을 내려 부어주시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추리하지 않고서는 20세기를 걸친 그 기나긴 세월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1세기 이후로도 계속 보혜사 성령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가정하고 보면,
각 시대대마다 하나님을 사랑하던 진실된 사람은 분명 존재하였을 것 또한 가정하고 보면,
성령의 영향력 아래 나날이 발전된 성서 이해와 사상들,
그리고 하나님을 지향하였지만 결국엔 헛된 열심임을 증명했던 수 많은 노력의 사건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1세기 때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고 성령이 거두어진 상태에서 현재의 각 교회의 뿌리가 자라게 되었기에
우후죽순적으로 각양각색의 사람의 이론들이 덧칠되었지만 그 복음의 뿌리는 동일하게 존재하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수 많은 예언 속엔 한 약속을 품고 있다.
우리 주님께서 마지막 때에 사람들을 보내주실 것이라는...
하나님께서 표를 하신 사람들을 말이다.
그 표는 받은 성령의 열매로 확인될 것이며 성서를 근거한 판단으로 분명히 알 수는
우리 주께 받은 분명한 진리를 갖고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이 그러한 마지막 때라고 확신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된 시간이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 또한 갖고있지 않다.
그 시간이 희망의 시간이고 이제껏 기다려왔던 시간이기에 난 겸손하게 열린 귀를 가지려 할 뿐이다.
그래서, 난 하나님의 시기와 때가 시작될즈음 1세기에 주님의 사람들에게 부어졌던 또 한번의
성령 부음이 있을 것이라 추리해 본다.
한 성령에 의한 것이면 같은 목소리를 낼 것이며, 같은 방법, 같은 목적, 같은 사랑으로 하나될 것이라는 믿음 또한 가지고 있다.
그리고 증인들의 화두였던 "하나님의 우주쟁점 문제"는 이미 1세기에 해결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요한복음 16장 11절.
이 세상 통치자가 이미 심판을 받았다는 것이 심판에 관하여 그분이 책망하실 내용이다.
우리 주께서 이 땅에 두 번째 아담으로 오셔서 첫 번째 아담이 이루지 못한 온전한 순종을 이뤄내심으로
한 사람 아담의 죄로 인해 들어온 죄의 삯인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을 이루어 내 주셨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영광을 받으신 후, 죄로 인한 흠없는 속죄양으로 제단에 바쳐졌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를 영으로 부활시키시고 당신의 영광스런 자리 옆 당신의 우편에 앉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제단 위 흠없는 제물이 되어 구원받을 무리들의 죄값을 지불하셨기에
앞으로 있을 구원받을 무리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만들어 놓으셨던 것이다.
1세기 때의 예수님의 사도들은 예수께서 이루어 놓으셨던 구원의 통로를 따라감으로서 구원이 시작되었고, 성전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다.
사탄이 제기한, 사람이 자율 의지로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고 제기한 우주 쟁점 문제를
완전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법을 순종으로 완벽히 지키셨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은
수 많은 사도들이 죽음으로 증명한 그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증명하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근거로, 나는 사단이 제기한 우주 쟁점 문제는 이미 1세기 때 끝내버린 사건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까지 개개인이 사단이 제기한 우주 쟁점을 우리 개인 하나하나가 증명하여야 한다는 생각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잘못된 견해로 생각한다.
요한복음 16장은 이러저러한 면에서 묵상할 내용이 많은 파트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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