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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1/5

새창조.

나의 대학 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과 종교조직의 교리가 섞인 것이었지만 그 사실을 모른채 나의 모든 생활과 생각과 나의 미래를 그 영향력 아래 두고 있었다.

그 당시 나의 가슴에 담고 있었던 단어는 '회복'이었다.

 '에덴의 회복'에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싶었다.

이 매력적인 단어에 나의 모든 것을 걸어 내가 소멸된다해도 아까울 것이 없었다.

 

나에겐 사랑으로 우리를 만들어 주시고,

죄로 인한 죽음의 덫에 걸린 우리를 위해 당신의 귀한 아들까지 허락하신 하나님과

당신의 몸을 기꺼이 내어주신 우리 주 예수님의 마음이면 나에겐 너무도 충분했다.

피조물로서 창조주에게 그 사랑을 받았던 그 사실만으로도 나의 존재 가치는 이미 충분하다고 여겼다.  

하늘에서 사는 영광스런 일도, 영원히 살 수 있다는 희망도, 더 이상 죽음도 슬픔도 없다는 소식도

나의 감사한 마음의 그릇에 이미 넘쳐나는 거품에 지나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성의 회복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그 거룩한 회복에 미력하나마 내 인생이 거름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회복이 아닌 새창조의 시간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회복을 위한 거름이 되길 바라시는 것이 아니고,

새창조의 영광스런 일꾼으로 부르시고 계셨던 것이었다.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새로 회복시켜야 할만큼 능력이 부족한 분이 아니셨다. 

 

하나님의 '오늘이라는 시간에' 살고있는 우리가

새창조의 약속을 우리의 현실로 받아들여

그분의 영광스런 소식에 믿음을 두기를 바라고 계셨다.

 

난, 

하나님의 사랑을 담고려 했던 나의 마음의 그릇이 너무도 작았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도 낮음을 보게 되었다.

나의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로 받아 주시고, 나에게 부어 주시려고 하신 그분의 사랑에 대한 믿음 역시

너무도 약하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힘들 때  도와주실 것을 믿는 것도 믿음이고,

불가능한 것을 되게해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도 믿음이고

나의 기대보다 더 많이 사랑하여 주신 것을 믿는 것도 믿음이고

우리 주님께서 예비하신 영광스런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길,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길까지

우리의 믿음으로 갈 수 있다는 약속하신 성서 말씀 그대로 믿는 것도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내 생명의 가치가 더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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