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상속 이라는 개념이 없다면 산 소망(희망)이 나타나질 않습니다.
이 상속 없이는,, 믿음도 사랑도 여러분 안에서 그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꼭, 꼭, 이 유산을, 이 상속을 찾아서 여러분의 심장속에 들여놔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도,,,하나님이 준 이 상속을 위해서 모든것을 참고 견딘 것입니다.
창세 시초인 아담서부터 예수까지,, 그리고 예수서부터 제자들 모두 다
그리고 현재까지,,이 하나님의 상속이 믿음의 중심입니다.
에덴의 두 나무의 본질 자체가 상속인 것입니다.
이 상속은 하나님 자신인 사랑이 중심 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상속이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이 상속안에 모든것들이 다 포함되도록 구상한 것입니다.
에덴의 두 나무와 그 두나무의 확장 판인 율법 자체가
바로 이 상속을 위해서 존재한 것이구요.
이 상속을 꼭 찾고 이 상속에 희망을 걸어야 여러분이 살 것입니다.
로마서, 고린도 전, 후서, 에베소서, 히브리서, 베드로 전,후서, 요한1,2,3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제자들 편지 모두 가 다 이 상속 때문입니다.
심지어 계시록까지,,, 이 상속에 100% 촛점을 맞추고는
이 상속에 대한 신 희망이 신도들 심장에서 활동하도록 부추킴니다.
이 상속에 개념없이는 성경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상속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이는 하나님이되어 주신
아버지와의 관계조차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예수라는 믿음 사상 자체가 바로
이 상속을 위해서 오셨고,
이 상속을 위해서 죽으셨고
이 상속을 위해서 새 계약을 맺으셨고,
이 새 계약의 핵심인 이 상속을 위해서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이 상속은 재물 개념이 아닙니다.
이 상속은 욕심과 관련이 조금도 없습니다.
이 상속은 죄로인해 차단되었다가 하나님의 의를 통해서 회복되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활동하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왕좌" 입니다.
이 왕좌 개념 안에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 모든것을 아래로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덴 시초부터 자기 형상을 닯은 많은 아들들을 이 왕좌에 두시기로
변할 수 없는 의도를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직도이 왕좌 개념에 주춤되거나, 꺼리거나,
나는 왕이 될 마음도 없고 그저, 하나님 사랑만 있으면 돼,, 라는
야생 세계로 추락한 이후의 인간적 생각으로 하나님의 상속을 대한다면
예수도, 하나님도, 믿음도, 사랑도 희망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죄와 사망이,,하나님의 분노가,, 여러분을 노예로 계속 잡고있을 겁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이 왕좌 아래 죄와 사망과 하나님의 분노까지 두시고, 이것들을
다 다스리도록 의도하셨고, 이 왕좌를 은혜의 중심이되게하셨습니다.
가족 여러분,,, 이 소망이 우리의 심장에 아직도 없다면,,
우리는 아직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소망이 없다면,,
우리의 정신과 몸을 붙잡고있는 이 세상의 소용돌이 치는 씨스탬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을 겁니다.
우리의 믿음의 길이 열리는, 즉, 하늘을 열리게하는 원동력은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이 살아있는 희망만이,,,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라는 두 가지 변할 수 없는 보증을 받고
이 보증만이,, 예수도 걸어가신 그 길,,바로 지성소를 향한 그 하늘의 길을 갔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이 길을,, 하늘이 열리면서 그 하늘로 들어 가신 이 길을,,
아버지 계신 지성소까지 라는 제사장의 희생의 길을요,,
약속과 보증된 성령으로 받고, 그 희망으로 가신 것입니다.
희망만이 우리를 움직이게 합니다.
이 희망이 없이는 우리는 그져 이 세속 일에 붙잡혀서
죽을 때까지 그 일만하다 결국, 세상 사람처럼 똑같이 사그러집니다.
왜냐구요? 고린도 후서 5장 10절의 믿음의 행위 철칙에 따라서이기 때문입니다.
" 믿음의 식구인 우리 모두 다 예수님의 심판대에서 그대로 드러 날 것입니다.
우리 몸으로 선을 행했던지, 혹은 악한 일을 행했던지 그 몸이 행한것에 따라서
예수님은 그대로 공의롭게 각 사람에게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선과 악은 원래부터의 도덕적 표준인 선악과 열매를 의미 합니다.
우리가 소식을 듣고도 열매를 맺지 않으면,, 그 가지는 사그러져 버립니다.
우리가 선한 활동이라는 열매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움직이게하는 요소인 진정한 희망이 우리의 심장에서 성장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성전인 우리의 이 몸을,,, 죽을 때까지 먹고 사는 일에만 집중한다면,
그 성전은 성전으로써의 의무인 예수의 길을 가는것이 아닐 겁니다.
우리가,,
길거리에 떨어진 말씀의 씨인지,
혹은 가시밭에 떨어진 말씀의 씨인지,
혹은 바위 위에 떨어진 말씀의 씨인지,
아니면, 좋은 땅에 떨어진 말씀의 씨 인지는,
말씀을 받은 아담의 선택이였고,
호렙 산 아래에서 말씀을 받은 이스라엘의 선택이였고
말씀인 예수를 받은 우리의 선택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은 그 나무 자체가 아니라,,,씨 포멧 임을 꼭 명심하십시요.
씨 포멧이라는 의미가 주는 강조는 이미 그 씨에 입력된 성장의 크기에 따른
우리의 몸의 행위로 서로 합성된다는 뜻입니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우리도 때가 된다면 한번에 훅 갑니다.
결코, 결코, 말씀을 땅속에 묻고는 숨겨 둔 게으르고 악한 종이 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비밀 한 가지를 풀겠습니다.
선악과와 생명나무로 된 이 통합적 구조인 예수라는 생명 이미지 개념이,,
우리 안에서 씨로 자라서, 시간 상 온전한 성장이 된 그 때 언젠가에,,
그 예수라는 생명 개념이, 우리 몸인 그의 성전에 나타 날(appear) 것입니다.
이 선악과의 졸업식인 "나타남" 시기에,,,,아담은 두려워서 뒤로 물러가 숨었습니다.
제 말은 ,,,
나타남과 오심이라는 7 째날의 창조 과정은
말씀을 씨 형태로 받은 아담 때인 옛날이나.
말씀이 율법 형태로 주워젔던 그 호렙산 때나,
예수가 침례받을 때, 말씀을 하늘의 길 형태로 받아서 하늘의 성전이 열릴 때나
그리고,,,지금이나 모두 다 똑같은 포멧으로 되 있다는 비밀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절대로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우리 각자 앞에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왜 자꾸만 살아 있다고하는지를 밝힐것입니다.
우리는요,,,
이 말씀을 받고 죄로 드러나서 뒤로 물러가 숨은 아담이 절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좋은 소식으로 된 이 말씀이 곧 창세 전에 아담에게 하신 그 말씀과 동일한 말씀 입니다.
다음 글을 올리기 전에 먼저 이 산 희망을 먼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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