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으로 들어가서
저번 글에서도 언급한 바대로
삼위일체에 관한 신학적 이해 앞에서 그 이해가 미치는 영향력의 범주에 대해 생각해 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리는 교리일 뿐이지
진실을 더 밝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삼위일체 교리 자체는 나 개인에게 있어
불필요한 혼란만 가중시켰고
복음의 본질에 집중하기 보다 마치 자석이 쇳가루를 끌어모으듯
교리, 교파, 교회조직에 더 집중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밀칠 수 없다.
그것은,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 처음, 교회에 가서 배운 것은,
'예수님께선 우리를 구원해 주시려고 이땅에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다' 라는 것이었다.
47년 정도를 돌고돌아 지금에 이르러 나는 다시 내가 처음 배웠던 그 진리 앞에
돌아와 서 있는 자신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일세기 이후 교회의 시대적 변천사와
교리가 만들어지고 세워졌던 배경과 그 힘의 배경등을 전체적으로 모르기 때문에
삼위일체라는 교리가 어떤 배경에서 생겨났는지에 대해서 과거 내가 잠시 속했던 교파에서
잠시 배운 것이 전부라서 솔직히 자신은 없지만,
여러 교파를 거치면서 그 삼위일체 사상이 낳은 열매들에 대해서는
직접 보고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바이기에
그 본질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복음을 중점으로 둔 상태의 방향성에 있어)
더 유리할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라"는 교회 현판을 걸고
성령의 역사라는 미명하에 무속신앙의 또다른 형태의 경험세계(영매술)로 인도하여
하나님과 자신간에 개인적 만남?이라는 영적체험에 의한 체험에 의한 자기 확신에 더하여
함께 그런 경험을 하고 있는 그 조직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참교회요 하나님의 몸된 교회라는 확신 속에 그 조직의 이땅에 영역 확장이
바로 이땅에서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라 확신하게 하는 힘,
그 힘 또한 어떠한 면에서 교회를 내부적으로 결속시키고 부흥시켜
영적 이방인들에게 우리 구주 예수님을 알리는 일을 하며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더 신실하게 섬기는 일상으로 이끌 수 있음을 내가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교회들에서 사용하고 있는 예배의 형태 속에서
근원을 알 수 없는 영적인 힘들이 작용되고
바탕으 깔아주는 데 사용되는 배경음악과 단순히 반복되는 가사들이
자기 체면 집단 체면을 걸기 위해 사용되는 것은,
음식을 만들어 제공함에 있어
화학 조미료를 치는 것과 같은 행위라는 느낌을 난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성령의 역사를
영매술사격으로 추락한 목사를 통한
감정을 부추킨 거품적 신앙의 바탕에 조직의 확장의 원동력을 삼고있는 교회들을
내가 살고 있는 한국에서 만난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굳이 삼위일체라는 문자적 교리를 내세우지 않아도
하나님과 그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를 대속하시고
죽으신지 삼 일만에 부활하시어
구원에 이르는 모든 길을 이루시고 당신의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가셔서
믿는 우리로 정녕 구원에 이르게 도우시는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 약속하신,
당신의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과 하나되신 성령, 바로 예수의 영이,
오늘날 믿는 우리가 구원에 이르도록 돕고 계신다는 일반적인 복음만 기억하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삼위일체'라는 사상이라는 우물에서 끌어올린 두레박 속에 물은
차라리 '성령의 역사'라는 이름을 훼손시키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에 담긴 하나님의 의와 사랑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눈에 오히려 흰 비늘같은 각질을 생겨나게 만드는
바이러스로 작용하고 있다고 단언하여도 지나치지 않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삼위일체 교리를 가지고서도
그런 영적 더러움과 함께하지 않은 많은 정결한 교회들도 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령의 역사에 촛점을 맞춘 개혁주의 교회들에 견재하여
말씀의 성취에 관심을 가지기보다 문자적 말씀 자체를 더 고수하고 있는 보수교회들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피하고자 과잉 알러지반응을 일으켜
발전보다는 발전해야 할 상태에서 그대로 웅크린채
영적 잠에 빠져들게 만들 가능성이라는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볼 수 있다.
영적 잠에 빠져버린 상태에서는 어떠한 종류의 빛에 속한 것들을 인지하지 못한채
현실에서 배척해버릴 수 있는 위험성이 다분하다.
또 한 가지, 주일과 안식일 준수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렇다.
이 문제는 아주 아주 설명하기 어려운데
어떤 시각적 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특별한 시각은 오직 네게만 있구나. 그래 너만 그리 보아라!"고 빈정되는 사람이 태반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오랜 시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버리게 되었기에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으로 글로 풀어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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