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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들 /담아온 글 ...

[스크랩] 아브라함의 시험은 곧 믿음의 선례이자 법이다.

님의 질문에 대해 간단한 답을 드립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직접하신 시험은 예외이며 좀 특별한 것이었죠.

 

이 시험의 본질은,,

 

우선,,하나님 자신의 약속을 아브라함에게 이미 수 십년 전에 직접 주시므로 그 시험의 토대가 놓여 집니다. 

 

이제 그 약속의 주인공인 이삭이 태어났고,또  세월이 흘러 그가 청년이 거의 다 되었을 때에 이 시험을 주신 것입니다.

 

옛날, 아브라함에게 했던 그 하나님의 약속이 아직 계속 진행형이자, 동시에

 

아브라함의 반응과 그 약속의 시작인 독생자 이삭의 반응이 함께,,

 

그 약속의 상속자로써의 자격 내지는 책임자로써 아브라함과 연합해서 믿음으로 표현되어 나 올 것을 기대 하십니다.

 

 

 

여기서 잠깐,, 이 시험이 원래 담아 내고져 하는 더 큰 의미를 조금만 볼까요.

 

 

아담이 죄를 범한 이후로 부터,,

 

하나님의 대속 마련의 계획이 후손들에게 계속 언어로 전해져 내려오고

 

마침내 욥의 시대에서는,, 그의 고통 중에 그의 독백에서 발견되었듯이,,

 

욥은,, 하나님의 아들이 언젠가에 인간들을 위해 대신 죽을 것이라는 풍성한 지식을 이미 소유한것을 볼 때,,

 

이 대속의 지식은 조상 대대로 내려 온 유산의 중심으로까지 소중한 상속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욥과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아브라함 역시 자신의 귀하게 얻은 독생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매우 특이한 시험에,,

 

처음엔 아마 마음이 심히 괴로웠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런 반응은 매우 정상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다시 하나님께서 원래하셨던  약속에  믿음에 굳게 고착 합니다.

 

 

 

그의 믿음이란,,

 

비록 제물로 바친 이삭이 죽을 지 언정,,

 

다시 생명으로 이삭을 돌려 받을 수 있다는 믿음,,즉 하나님의 원래 약속에 대한 믿음에 계속 고착한 것이죠.

 

이 시험은 하나님이 직접 하신 약속에 근거한 차원의 시험 입니다.

 

그 의미란,,그 때까지도 계속해서,,그 약속이 현재 진행 중이었다 라는 의미죠. 

 

 

 

아브라함이 이 시험을 통과하나 못 하나를 시험하신 것이 아니라,,

 

그 시험은 오히려,,아브라함과 그의 독생자 이삭에게, 믿음이 무었인지,,그 믿음에 합당한 조상으로써의 권한,자리를 주시기 위해서였고,

 

그리고 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방식을 토대로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까지 똑같이 적용해 주시기 위해서

 

앞으로 하나님이 예수와 하나가 되서 하실 대속의 믿음이라는 믿음의 원본, 청사진이 찍혀 나 온 것이라는 거죠.

 

이 점이 아브라함의 시험이 담고 있던 더 큰 의미라는 것은 아마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믿음의 청사진이라구요?  네 맞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던 그 방식의 믿음이란,,

 

아브라함의 그 때의 상황과 같은 상황이 예수 시대부터 똑같이 연출될 것을 미리 염두해둔 청사진이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던 상황,,(믿음의 청사진)

 

1) 아브라함이 후손이 없는 관계로 그의 미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약속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나 올 셀수없는 후손을)

 

2) 자신의 나이와 아내 사라의 나이는 이미 죽은 나이인 90 살과 100 세이였습니다. (즉 죽음과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죠.)

 

아브라함은 자신이 처한 불가능한 상황인 위 두 상황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믿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던 위 두 가지 요소의 첫 번째 믿음의 상황이 청사진 처럼 찍혀져서,,

 

이제 그 실체인 2 번째 믿음의 상황,,즉 예수와 그 이후의 우리가 하나님께 둔 믿음의 상황과 일치 전개 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상황,,, (믿음의 실체)

 

 

1) 역시,, 우리 인간도 아브라함의 미래 처럼,, 이미 아담 범죄 이후에 사망 속에 갇치어서 우리의 미래가 전혀 없었죠.

 

2) 그러나 예수의 출현으로 그에게 희망을 건 우리 인간은 잠시 기뻐 했다가(마치,이삭의 출생으로 잠시 기뻐한 아브라함 처럼)

    

     이 예수가 다시 죽음으로 들어가는 슬픔을 맞이 합니다.(마치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죽음같은  상황) 

 

 

하지만,,,, 

 

이 죽음에서 예수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약속의 현재 진행형을 믿었던 우리의 믿음,,그 아브라함과 동일한 믿음을,,

(마치 이삭이 제물로 죽을지 언정, 하나님은 그의 변할 수 없는 약속에 따라 그를 다시 죽음에서 일으키실 것을 믿은 아브라함의 믿음처럼)

 

우리 신자들도 약속의 실체형으로 믿고  소중한 유산 처럼 마음에 간직 합니다.

 

 

 

이러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던 그 동일한 방식의 믿음으로써,

 

그를 의롭다 하신 하나님이 믿음의 청사진으로써의 영원한 선례로 남기시고,,

 

그 실체인 예수를 죽음에서 일으키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도 ,,아브라함의 선례에 따라서,, 의롭다 선언 될 것입니다.

 

 

 

이 종류가 약속에 관한 믿음에 반응,,즉 하나님의 시험 입니다. 이 시험은 상을 위한 시험이지,,

 

시험에 실패했을때, 그를 내쳐 버리거나 죽음에 쳐할려는 시험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그 밖의 다른 모든 종류의 시험들은 단지 믿는 우리나 혹은 믿지 않은 일반인이나 똑같이 임할 수 있는 

 

인간 욕심에 호소하는 이 세상에 속한 것들로써 우리에게 시험 형식으로 다가 올 뿐 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온 시험이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믿음에 시험이 될 수 있는 ,,

 

우리 육체에 호소하고 유혹한다는 차원에서 욕심적 요소들이기에 시험 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누구에게 시험의 덫을 깔아 놓고 시험을 통과할지 혹은 못 할지 지켜보는 유치한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욕심적 구조로부터 나 온 모든 세상의 것들에 각자가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가 시험지 역활을 할 뿐 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종류의 상황에 노출되지 않도록 무조건 막아 준다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이길수 있도록 그 시험을 허락 한다는 의미 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

 

과연 이런 시험들이 될 수 있는 상황들 없이,, 싸운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믿지 않은 이웃들에게는 이런 육체에 호소하는 불리한 상황들이 선택의 욥션으로 다가올때

 

그리고 그 욥션을 욕심에 기울려져 택 했을때,,그리고 결과가 좋지 않을때를,, 재수 없다 하지요,

 

이렇게 자신의 욕심의 댓가로 와 닿는 차별없는 공식,,인과응보 이겠지만

 

우리 믿는 신자 측에서 볼 때는  그 욥션 자체가 믿음에 시험이 되겠지요.

 

만약 우리도 일반인처럼 욕심에 기울려져서 그 욥션을 택한다면 인과응보를 거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점에 있어서,, 믿는 신자 신분이나 일반인 세상 사람이나,,특별한 차별이 없을 것입니다.

 

그 욕심에 인과응보는 똑같이 거둬야죠. 하지만 신자가 아들 신분일 경우,,경고들이 특혜로 주워질 겁니다.

 

특혜라고 해서 죄를 일부러 지어도 계속 지어도 인과응보를 빗겨가는 특혜가 아니라,,새 계약 안에서의 특혜를 의미 합니다.(생략)

 

이것이 합당합니다 왜냐하면 계약 관계 안으로 체결된 약속 때문 입니다.(생략) 

 

 

 

단지 믿음에는 그 인과응보인 생명의 상이 있을 뿐 입니다.

 

믿지 않는다고해서 그 벌로 늙어 죽는 것 외의 일상 생활에서 불상사가 더해서  불행을 일부러 얹져지는것이 아나라는 것이죠.

 

신자건, 아니건, 심은대로 거둔다는 원칙이 적용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으로 부터의 시험인 아브라함의 시험과 일반 신자들이 격는 세상 구조상 육체로부터 인한 시험과의

 

큰 차이점을 들자면 그 시험의 토대가,, 아브라함의 경우처럼,,이미 하신 하나님 약속에 기초에 있냐 혹은

 

세상 구조를 토대로 한 인간 육체의 유혹이냐 일 겁니다.  

 

 

다시 강조 하지만은,,불신자들에게는 심판 육체의 부활 때까지는,,,

 

 단지 그 믿음의 상인 영의 생명을 받지 못하고,,

 

현 세상에서,,그의 인생 시간이 꽉 찰때 쯤에  원래의 죄의 삵인 무덤으로 들어 갈 뿐 입니다.

 

 

 

 

그 전에,, 일반 불신자들에게도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들과 그 믿음의 근거가 될 상황들이 똑같이 우리에게 재현되었듯이,,

 

일반 불신자들에게도 재현되어서 그들도 믿음의 옵숀을 기회 삼아서,,

 

1) 예수를(없었던 우리의 미래가 존재하고) 우리의 미래로 주시고,,

 

2) 또 그 예수를 (이삭을 다시 제물의 죽음에서 돌려 받았은 것 처럼 ) 우리 죄를 위해 죽은 예수를 그 죽음에서 일으키신 하나님을 믿는

 

    아브라함과 똑같은 상황을 재현시켜서 그 같은 믿음을 소유케해서 그들 역시 의롭다 선언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선택을 하시기를,,,

 

 

그리고 이미 믿는 우리 신자들에게는 이 소중한 믿음을 위협하는 모든 시험들에 대항하여 선한 싸움을 계속 하시기를,,, 

 

 

  

출처 : 어두운 예언
글쓴이 : 예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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