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를 구출하셨고 더 나아가
우리를 거룩함까지로도 부르신,,,,
이 은혜는 예수 안에서 그 시작 전부터 이미 우리에게 수여 되었지만,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appearing) 이제 확연히 드러 났으니,
1)죽음을 먼저 파괴하시고 우리에게 빛으로 된 영원성과 생명을
가져다 준 복음을 통해서 입니다.,,,"
디모데 후서 1장 9-11
",,, 예수의 일생 중, 예수는 목소리 높혀 눈물로써,
많은 기도와 간구를 올렸습니다.
2)죽음으로부터 자기를 구출해 줄 수 있는
오직 한 분에게 올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는 자신의 신분이 아무리 아들 신분일 찌라도
이 고통을 통해 아버지께 향한 복종을 배웠습니다.
이 고통 속의 복종을 통해 자신이 먼저
3)완전성에 도달한 후,
자신에게 순종하는 모든 이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었으며
이제, 하나님에게 멜기세덱의 형식으로 대 제사장이라는 직함을 따 낸것입니다."
히5장 7-10
",,,그의 죽음으로써 그 죽음의 파워를 쥐고 있는 자, 곧,,
4)마귀를 없애기 위함 입니다.
그래서 그 죽음의 두려움 안에서 그들의 온 평생을
죽음의 종살이로 거하는 모든 자들을
5)자유케하기 위함입니다."
히 2장14-15
일단 이 세 구절을 시작으로 (각각 번호를 메긴 용어들에) 죽음과 마귀,
그리고 그 죽음의 파워로부터의 일으킴 이라는,,
길,,the way we've walked in,,이라는 이해를 먼저 가져 오겠습니다.
첫 번째 아담의 길
우리 육체의 처음 조상의 선택은
우리가 싫어하든 좋아하든 우리의 선택과는 관계없이
우리의 피 할 수 없는 운명의 길이 되었습니다.
불행이도 그가 우리에게 제공한 길은
창조로(갓 태어 남) 시작해서-->,
죄, 그리고-->
결국 죄의 장성인 -->사망 이라는,,,
그 길의 최종 도착지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담이 터 낸 이 캄캄한 길,,
오직 죽음이라는 종착지만을 향해 있던
이 찰흙같은 어둠의 길만이,,,
죽음을 향한 과정들의 순서인 동시에
우리가 걸을 수 있었던 유일한 도로였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4) 처럼,,"죽음의 권세잡은 자 마귀"의 영역인 어둠에서
그의 어둠의 파워를 키워주는 어둠의 자식으로 팔려 간 샘이죠.
역행하는 두 번째 아담의 길, 그리고 그 길의 과정,혹은 순서
하지만 창조주는 이 죽음을 되 돌려 놓는 또 다른 길을
그 처음 아담의 길 위에다 깔아 놓기로 계획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새로운 길의 시작(순서, 과정)은,
처음 길의 정 반대, 즉, 꺼꾸로인 첫 아담의 길 종착역인 죽음(-1)에서 부터이며
이 두 번째 길의 끝은 아담의 처음 시작이였던 생명(0,제로) 를 꿰 뚫고
그 이전의,, 영원부터라는 창조주만의 장소로까지 이어질 어마어마한 길이 될 것이였습니다.
즉 하나님은 5) 처럼, 죽음의 두려움에 잡혀서 평생 종살이하는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
시간(사건)을 되 돌려 놓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되 돌려지는 두 번째 길의 시점은 바로 이곳이였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라는 첫 번째 법이 처음 등장한 그 똑 같은 장소에서 였죠.
바로 이 똑같은 장소에 1) 처럼 예수가 나타나(첫 번째 appearing) 마이너스 죽음을 플러스 죽음으로 파괴하는
그래서 제로 상태로 복구시키는 생명의 열매가 확연히 드러나게 됩니다.
아담이 먹지 말아야 했던,,하지만 기필코 먹었던,,, 그 선과 악을 관리하는 즉 신격 권한의 열매,,
오직 하나님에게 속해있던 이 권한의 열매, 즉 신격 영역의 침범을 범하는 이 명령의 상징을
기필코 아담은 범한 것이었죠. 그 댓가란,,, 마이너스 죄의 에너지 작용의 결과로써의 육체의 죽음 이였습니다.
이 죽음까지의 아담의 행위의 과정들이 곧 아담의 피가 된 것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이 피를 그대로 이어 받은 것이었구요.
이처럼 우리 인간의 피 속에는,,단순한 선악과 라는 금지된 과일을 훔쳐 먹은 죄가 아니라,,
신의 영역에 일부러 무단 침입하는 신성모독이라는 엄청난 죄를 범한 것이며
이미 첫 사람 아담의 피속에 마이너스 DNA 로 찍혀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대 물림으로 작용한 것이었죠.
십자가 위에 처형 당한 인간 예수가 뒤집어 쓴 죄명,,신성모독 죄
하나님은 이제 두 번째 인류의 조상을 예수라 이름하여 출발 시킵니다.
바로 첫 사람 아담과 같은 죄,, 신성모독 죄를 대속하기 위함이었죠.
그리고 마침내 때가되어서 이 예수는 그 당시 재판관이었던
제사장 앞에서 선도 받고 십자가에서 처형 당하였습니다.
십자가 라는 신의 운명의 나무에 열매처럼 달려있던 선악과 예수는
이제 에덴 동산에서와는 반대로, 꺼꾸로 이렇게 말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먹고 마시는 그 자는 정녕 살리라!."
"나의 피를 마시고 나의 살을 먹는 그 자는 영생 하느니라"
과연 이 두 번째 선악과로 오신 예수 안에는 뭐가 들어 있길레 자신을 먹고 마시는 자는 영생한다는 것이죠?
(기존하는 외부적 교리는 건너 뛰기로 하겠습니다. 내부적 요점만 집어 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 예수라는 두 번째 선악과 안에
신성모독이라는 죄의 댓가인 죽음과
창조주만이 하실 수 있는 제물로써의 대속(redemption, 교환) 이라는
피의 거룩함을 순종 과정으로 삽입한 것이었죠.
그 결과는 영광의 부활 입니다.
즉 (신성모독을 향한) 죽음과 영광의 부활이라는 종합적 가치를
창조의 과정으로 밟게 하시고 마침내 완성시켜서
그 예수의 길을 새 창조의 첫 열매로 뽑아 낸 것입니다.
이 예수라는 두 번째 선악과 속에는
먹는다면 정녕 죽을 수 있는 신성 모독으로써의 죽음과 동시에,
먹는다면 정녕 영원히 살 수 있는 거룩함의 제물로써의 결과인 부활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던 것이죠.
정녕 우리는 믿음으로
그 살을 먹고 그 분의 죽음에 참여하여 같이 죽고,,
또 그의 피를 마셔서 {그 분이,,, 2) 처럼,,, 자기를 이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에게 순종한 결과,
구원이라는 완전성에 도달하여 아버지를 향해 부활하신것 처럼},
우리도 이제 이 과정을 우선 믿음을 통하여,
새로 거듭나서(구출,SAVED, 새 생명)
영광의 부활을 향해 거룩한 출발할 수 있는 희망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에게 대 물림한 첫 번째 아담에게 발생했던 마이너스 피의 형성 과정과 마찬가지로,
믿음 속에서 대 물림하게 될 두 번째 아담인 예수가 그 과정들을 거쳐서 결국 완전성에 도달하여
그의 피 속에 플러스 DNA 로 찍혀지는 순간인 샘이죠.
이 예수는 첫 번째로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께 믿음을 두어서
죽음과 부활을 경험한 첫 번째 증인이자 첫 번째 창조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즉 죽음의 권세잡은 자 마귀에게 죄의 삯을 본인의 희생으로 다 갚고
그 죽음의 권세의 열쇄를 마귀에게서 빼았아 오신 분 입니다.
이 분은 그래서 죽음에서 나 온 영의 첫 번째 열매가 되셨죠.
이렇게해서 위 제목 성구들 처럼,,마귀의 권세의 중심인 사망, (죽음)을 완전히 파괴한 사건이
바로 두 번째 아담인 예수의 과정 중에서 실재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실재했다 하여 모든 자들에게 자동적으로
그 죽음에서의 해방 효력이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 자체란,,
하나님의 희생이라는 선물이 깃들여 있기 때문 입니다.
다시말해서 이 예수의 등장과 마침속에는 첫 번째 아담의 등장과 마침과는 달리,,
죽음에서부터 시작해야하는 신의 거룩한 희생이 치루어진,,그래서 선택해야만 하는 창조의 가치 때문 입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길은 첫 번째 아담의 길 위에,즉 이미 퍼진 수 많은 후손들의 존재 위에,(그들을 되 사기 위한)
덮어 씌어서 시작되었기에,,,그들 각자의 원함이 필수적 입니다.
즉 위에서 밣힌바와 같이 이 사건의 의미 자체가,, 상징적 두 번째 선악과의 출현인 동시에
그 대상들이란, 이미 수 많이 퍼진 첫 번째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이며 그 선악과의 법의 선택을
이들 대상자들에게 기다리고 있기 때문 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창조는 우리 각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믿음이라는 영역 안에서만 진행 중 입니다.
또한 예수를 생명의 주인으로 믿으라 라는 법이,
즉 이 예수가 두 번째 생명의 길의 문의 시작 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자들, 믿는 자들만이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죽음과 부활인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계명이
최소한 믿으라 라는 법의 영역 안쪽인, 믿음 안에서 활동할 때에만
그 가치인 죽음과 부활을 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죠.
하지만 각자 믿음의 장소에 따라서 이 죽음의 적용과 일으킴의 시기가 틀려지는데요,,
제일 먼저는 위 글처럼 새 창조의 과정 상 마귀에게서 볼 일을 완성하신 첫 열매이신 예수로부터 시작해서요,
(마귀의 죽음의 권세가 더 이상 예수에게는 못 미친 다는 의미)
그 분에게 속한 자들 모든 부류의 신자들에게 각각 믿음의 장소에 따라 다르게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전 글에 소개된 많은 믿음의 층들을 심도있게 분석한다면,
각각 그들의 어느 시기, 상황쯤에 이 죽음의 권세잡은 자 마귀의 출현이
나타나 죽음으로 작용되는지를 알 수 있으며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권세가
이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마치 전쟁 치루듯이 믿음 안에서 발생됨을 알 수 있습니다.
역행하는 길의 시작인 문 안에서 죽음이(마귀) 위치한 곳,
그리고 믿음 VS 죽음의 전쟁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천사가 먼저 용을 치더라,,"
"보라, 내가 땅을 한번 더 진동 시킬 것이다 이번엔 땅 뿐만이 아니라 하늘도 진동시킬 것이다."
이 두 구절은 서로 연관있는 구절 입니다.
하늘이라는 곳에서 벌어진 진동 이라는 것이죠.
이 진동하는 이유는,, 흔들리는 것들을 모조리 땅으로 떨어 뜨린다는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후에,,다시 또 땅도 흔들어서 흔들리는 요소들을 아예 뿌리체 뽑아 버리신다는 심판 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의 핵심은,,떨어져서 버려지거나 파괴되는 요소들이 아니라...
오히려 사탄과 그의 악귀들을 흔들어 하늘에서 추방하여 땅에 떨어 뜨리게하고 결국 완전히 파괴하는,,
즉 결코 진동하지 않을 진짜 하늘의(왕국) 영향력의 탄생에 촛점을 마춥니다.
마치 모세와 그의 백성이 시내산에 도착했을 때,, 시내산이 계약의 진동으로 흔들려서 한 나라가 탄생한 것과 같습니다.
이 모세의 인도하에 나 온 백성들,,,수 백년동안 애굽에 노예 신분으로 거하면서 그곳의 역겹고 불결했던 모든 애굽 문명들이
흔들리는 진동으로 떨어져 나가고,,
즉, 거룩한 계약의 법들로 진동을 거쳐서 이스라엘이 하나의 왕국으로 탄생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진동,,즉 흔들림이란,,,교체, 혹은 파괴와 동시에 새로운 건립을 의미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미가엘 쪽의 천(군)사들은 믿음과 아무런 관계없는 기존의 천사를 의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두 예수의 제자들 뿐이겠죠. 이들이 어떻게 사탄과 그의 악귀들과 싸우는지 자세히 볼까요.
하늘의 여자, 새 계약의 상속자들에겐 죽음의 세력이 존재할 수 없다.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이,, 사탄과 그의 악귀들의 세력을 무력화시킨 요소들이 드러났죠.
바로 그 요소들이란,, "...이들이 사탄을 이긴것은 어린 양의 피와 그들이 증거한 말씀..." 이었죠.
그러니 이 하늘에서의 전쟁이란, 짐승들의 육체적, 물리적 무력 전쟁이 아니라,,
권리와 합당한 권세의 힘,,곧 법적인 신들의 세력의 대립이었죠.
이들 천사들이 이 두 가지 지적 무기를 소유하고 사탄의 왕좌인 죽음을 몰아 낸 것입니다.
어디에서요,,,바로 하늘이라는 곳에서요.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볼께요.
이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이누구길레,,
어린양의 피와, 말씀의 증거를 사용할 수 있을까 하구요.
이 미기엘과 그의 천사들이 그져 문자적 하늘이라는곳에 거하는 문자적 천사장과 기존했던 천사들이라면,,
즉 어린양의 피와 말씀의 증거라는 실제 무기와는 별 상관없는 존재들이라면,,
과연 이 제 3 자 입장의 존재들이 어떻게 실제 당사자들인 사탄과 그의 악귀들과 영역 다툼인
권리와 권한이라는 법적 전쟁을 벌일 수 있고 또 사탄이 순순히 물러 났겠느냐는 것이죠.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의 정체란,,
어린양의 피와 말씀의 증거라는 무기를 소유하기에 합당한 당사자들이기 때문 입니다.
즉 미가엘의 신분은 예수 자신이고,, 그의 천사들이란,, 이미 하늘에 거하는 계약의 여자,,즉 그의 거룩한 제자들이라는 의미 입니다.
이들 거룩한 제자들은 지상의 거룩한 봉사와 관련하여 제사장 역활을 수행 중이던 그 당시의 말씀의 증거를 위해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은,, 즉 마귀의 세력인 죽음을 이긴 자들 입니다.
예수 (미가엘)는 이들 아직 지상에서의 (하지만 하늘을 뜻하는 성전 안에서) 거룩한 곳에서 봉사하는 이들과 함께
사탄을 대항하여 전쟁을 치루었던 것입니다.
우선은,,자신의 피를 지성소라는 십자가 상황에서 흘리시는 합법적 권리 과정이 있었구요,
두 번째로는 이 피와 관련된 희생을 말씀으로 전환시키고, 바로 그 말씀에 대한 신자들의 확고한 믿음의 증거 입니다.
바로 이들이,, 즉 하늘의 성전 안에서 봉사하는 신자들(천사들)이,, 예수와 함께 사탄을 먼져 쳐서 이기고
아예 땅이라는 육체(세계)로 내 쫒아 버린 것이죠.
그리고는 하늘에서 이제 구원과 권세와 왕국과 예수의 권한이 모두 완성되었죠.
이처럼,치열한 법적 권리의 싸움, 전쟁을 거쳐서 죽음의 세력이 이들 전쟁을 치룬 천사들에게서 제거된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의 12 지파가 가나안 땅을, 합법적 주인이신 하나님에게 법적으로 유산은 활당 받았지만,
지파들이 실제 믿음의 전쟁을 치루어 그 부패한 족속들을 이기고 쫒아내서 그 유산을 믿음으로 완성시키는 과정과 흡사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일은 마귀의 일인 죽음을 이러한 합법적 과정을 거쳐서 파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죽음을 파괴하는 합법적 과정은 예수의 새로운 길 선상에 우뚝 서서 하나의 관문처럼 버티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신자들은 그 누구라도 거쳐야하는 운명의 관문 입니다. 문제는 한번 죽는 이 죽음을 예수의 죽음의 과정으로
대신하여 지상에서의 살아생전 계속해서 그 분의 다음 과정으로 이어져 길을 계속 가는지, 혹은 자기 죽음으로 무덤에서의
긴 잠을 자고 나서야 후에,,,예수가 오실때,,,그 분의 부활에 참여하는지가 관건이겠죠.
아래는 부가적 참고 입니다.
이들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이 치른 전쟁에서 얻은 결과는
”이제 구원과 파워와 왕국과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어,,” 진 것이죠.
왜냐하면 그 Accuser, 거짓의 아비인 그 기소 자가,,,
밤낮 하나님 앞에서 기소하던 그 기소가 실증되지 못하고 거짓으로 판명되어서 완전 패배 당했기 때문이죠.
그럼 사탄이 뭘 기소 한 것입니까?
옛날 에덴 동산의 거짓말의 아비가 또 무슨 거짓으로 살인을 할려고 십자가 나무 위의 열매를 못 먹게 하는 걸까요?
이제는 그 길이 꺼꾸로 역행하기에, 이브에게 먹으라 고 거짓말 했던 사탄은 이번에,,
예수의 아내들에게 그 열매를 먹지 말라! 하는군요.
이글 서두에서 처럼,, “너희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라는,,
하나님 자신의 입에서 나 온 변할 수 없는 그 법은 그 때 에덴서부터 그대로 입니다.
바로 그 장소로 다시 돌아가는 상황이 시작된 것이며
바로 그 장소에 다시 십자가 나무가 세워지고
이제 죽음과 부활이라는 새 열매로 “너희가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 라는
두려움의 죽음으로 열린 이 열매를,,, 사탄은 ‘그들은 두려워 먹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거짓 기소 중이였던 것입니다.
사탄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열매를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기 때문이다 라고
이제는 정 반대로 '먹지 말라! 먹지 않는다면 너희가 살리라' 라는
거짓말로 살인하는 중인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바로 이 구절에서와 같습니다.
11절,,, ”그들은 이겼던 것입니다.(전쟁 같은 재판에서) 어린 양의 피와(십자가 사건) 그리고
그 말씀에 대한 그들의 증거를(그 사건에 대한 믿음) 가지고 이겼던 것입니다”,,,
한번 깊게 생각해 보세요,,,
어린 양의 피,,십자가 희생은 하나님과 예수가 행위로 하신 열매죠.
즉 하늘의 에덴 동산에 생명 나무에서 마침내 열매가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대한 그들의 증언 때문에 그들이 승리 한,,” 것입니다.
그 말씀이란 과연 무슨 말씀을 의미하는 걸까요?
무슨 말씀에 대한 그들의 증언이,, 이 하늘 에덴 동산이라는 영역에 다시 나타나서
우리 형제들에게 밤낮 거짓말하는 사탄을 완전히 격추시켜서
그들을 제 2의 십자가 에덴 동산에서 이제 옛 뱀을 내 쫓아내듯 밖으로 쫓아낸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실제 했던 사건인 하나님의 일,,예수가 죄에 대해서 죽고 그리고 삼일 만에 다시 영광의 부활로 마쳤다 는
사실이죠. 즉 십자가 열매에 대한 증언 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증언은,, 죽음과 관련된 믿음을 필요로 했기에,,그들은 죽기까지 그 사건에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입니다.
즉 죽음이 더 이상 사탄의 권세에서 떠났다는 그 하나님이 하신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증언 입니다.
다시말해 그 십자가 열매인 죽음과 부활,,살과 피를 먹은 것입니다. 이 먹는 일 자체가 증언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어떤 달리기 선수가 말하기를 “ 나 100 미터 거리를 9초 안에 뛸 수 있어” 라고 단언 했을 때,,
질투에 휩쌓인 다른 선수가 그를 기소한 상황과 같을 것입니다.
이 선수가 증명할 수 있는 단 한나의 방법은 말로만이 아니라,,실제로 100 미터를 달리는 것입니다.
기소의 성격상, 뛰느냐 못 뛰느냐 라는 증명 때문에,, 이 선수가 100 미터를 달려서 9 초 안에 끝마쳤을 때에만,,
그는 그의 증명을 마친 것인 동시에 상대방의 기소를 무력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죠.
즉 그 선수는 상대의 기소에 실증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100 미터를 달리기 전에는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다른 선수는
그를 기소하는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하겠죠. “그는 못한다” 구요.
하지만 마침내 100 미터를 9초 안에 뛰었을 때 그 기소는 더 이상 아무런 파워가 없습니다.
오히려 창피하기까지 하며 그 기소자는 그 장소를 떠 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이미 실제 한 사건 입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부활은 그 예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실제 사건을 믿고 그 길을 그대로 따라와 주는 믿음의 사람들을 위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신자들이 이 실제 사건을 믿는다 라는 그 증언이란,, 말이 아니라,,,
실제로 100 미터를 9 초 안에 뛰는 성격인 행위로 증명될 문제 입니다.
즉 이미 실증으로 증명된 뒤따르는 선언 이라는 개념이죠.
그러므로 죽음과 그 뒤 부활을 믿는다 라는 개념 속에는,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죽음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이 실제로 실증 되야 한다는 논리 입니다.
그래야 이 죽음과 부활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소유한 그 믿음이 증명되는 것이죠.
이것이 로마서 4장에 등장한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증언의 방법이자,
예수를 죽음에서 살리신 분에 대한 신자들의 믿음의 증언,, 공정한 똑 같은 방법 입니다.
사탄은 신자들이 이러한 상황을 죽음의 두려움으로 먹지 않을 것이다 라고 "계속 밤낮으로 참소하고 기소한" 것이죠.
그러니,, 만약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 라고 공언하는 신자가 자신의 죽음이 두려워서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부인한다면,,, 그는 사탄에게 실제로 기소 당하는 중입니다. 즉 그의 말 뿐인 믿음의 증언은 쓸모 없는 증언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탄의 기소장의 성격, 내용이 죽음과 부활 이라는 사건에 대한 믿음 이기에,,12장 11절에서와 같이 그들 신자들은 사탄이 제시하는 죽음에 직면하는 어떤 상황이 실제 발생 했을 때 죽기까지 해야 그는 그의 믿음을 증언 하는 것입니다.
즉 말씀을 증언했다 라는 그 성구의 의미란,,,,,,11절 끝 부분인 “,,,and by the word of their testimony ; they did not love their lives so much as to shrink from death.” 라는 실증의 결과가 필요한 것이었죠.
그들의 증언이란,,, 바로 뒤 구절인 “,,,죽음 앞에서도 그들은 살기를 거부했다” 라는 행위로 된 실제 증언 이라는 것이죠.
바로 그들이 거친 이 실제 증언과 예수의 십자가 위에서의 피가 함께,, 사탄과 그의 악귀들을 파괴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신들의 무기가 되어서 하늘의 법적 권한 전쟁에서 죽음을 권세로 잡고 있는 사탄의 머리를 깨 부수었던 것입니다.
결과,,사탄은 이들 죽음까지 두려워하지 않은 믿음의 거룩한 신자들에게는 더 이상 죽음을 요구할 수 없는 신세로 전략하고 만 것이죠. 이들에게는 무덤에서의 긴 잠,,죄의 삯인 죽음이 더 이상 권세를 부리지 못합니다. 이들에게는 첫 번째로 첫 열매로 “구원과 파워와 왕국과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뤄진 것입니다.” 오직 이들을 괴롭힐 수 있는 영역이란 땅,,,즉 죄의 육체의 영역으로 떨어진 사탄의 제한된 활동 영역뿐이겠죠. 그러므로 이제 방금 하늘에서 해산의 몸을 푼 여자가 동시에 죄 된 육체를 입고 있는 땅에서도 활동 하므로,,, 땅으로 쫓겨 내려 온 분노한 사탄은 이 여자를 육체의 함정에 빠뜨리려는 계획으로 뒤 쫓습니다.(그 후 생략)
이 여자란,, 신자들을 품고 있는 계약을 의미 합니다. 혹은 성전 반열이라고도 해두죠,
이 반열이 시기 상 먼저 건축 됩니다. 이렇게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반열 입니다.
예수의 피와 살을 취하는 창조 과정을 믿음으로 거쳐서 물과 영으로 거듭난 자들로써 베드로 전서 1장22절과 이어지는 2장1,2,3절의 과정을 다 거쳐서 이제,,예수처럼,,거룩함에까지 자신들의 새 생명을 살아 있는 제물로 바친,,지상에서 제사장직을 수행하여 결국 구원으로 이미 일세기 때 예수와 함께 왕좌에 앉은 자들 입니다.
그렇 습니다. 이 행위의 과정들로 예수는 마귀의 일인 죄와 죽음을 파괴하고 그의 역행의 길을 완주하여
새로운 길이 놓이게 되었으며 그 길의 문의 역활까지도 따 내었던 것입니다.
이 새로운 길 중에서는,,
a) 물론 영의 심판이 아닌,,육체의 심판인,,육체의 사망도(죽음) 도 존재 합니다.
그 결과 예수의 물과 피로 거듭나지 않은 신도들은 육체의 죄로 인해 죽어서 무덤의 긴잠을 잘 수도 있습니다.
b) 또한 육체의 사망에 긴 잠을 자는 신자들을 위한 영의 부활도 존재 합니다.
c) 그리고 이 길 어느 시점부터는 제로라는 새 생명이 존재 합니다.즉 물과 영으로 거듭난 생명을 의미 합니다. 구출의 시작을 의미 합니다.
d) 그리고 그 새 생명의 안쪽(시작) 부터는 영으로 계속 육체의 세력을 죽인다면,,원래의 죽음이라는 죄의 삯이 그 흔적 조차 없는 길 입니다.
e) 또한 이 새 생명으로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친다면,,, 빛으로 펼쳐질 길인, 거룩함 이라는 신들의 영광스런 길이 존재합니다.
이 길들이 바로,,모든 믿음의 신자들에게,,이 길 어느 시점에서 문자적으로 죽든, 혹은 예수의 죽음으로 죽고 거듭나든 상관없이,,
오직 일방통행으로만 지속적으로 갈 믿음의 새 길,, 예수의 길 입니다.
죽음과 부활이라는 예수의 가치를 새 창조의 과정으로도 그리고 실제적 가치로도 적용하여 혹,,문자적으로 죽은 신자까지도 부활시켜
다시 계속 걷게하여서 끝내 완주시킬,, 예수의 길 입니다. 즉 이 믿음의 길에 들어선 신자는 심판 받지 않을 것이라는 전 편의 의미 입니다.
모든 부류의 믿음의 신자들이 이 새로운 길에 초대받고 그 길 어디엔가에 존재 합니다.
하지만 이미 죽음을 정당한 값으로 지불하고 이 길 제로 안쪽으로 들어 가 있는 신자들도 현재 있습니다.
과연 이들이 어떤 방법으로 마귀에게 합당한 죽음을 지불하고 새로 태어나 그 길 안쪽으로 들어가 먼저 구출 받았는지를
여러 사도들의 증언을 토대로 알아 볼까요.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후편으로 일단 마무리 짓고 마지막 글로 넘어 가겠습니다.)
첫 열매들이 죽었던 그 죽음의 장소,,
성소,지성소 반열이 먼저 지움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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