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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들 /담아온 글 ...

[스크랩]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그를 일으키리라" 그 마지막 날 이란,,(전편)

다음의 글은 죽음과 부활이라는 새 창조의 예수의 과정을

오직 도면 위의 평면적이고 문자적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일반 신자들을 위한 글 입니다.

 

아시다시피, 위 제목 성구는 예수가 하신 말씀 입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생명에 관련된 말씀을 하실 때 이 마지막 날 일으킴(한국어 번역)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 했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우선, 의문부터 가져 본다면,,,

 

예수는, 이 마지막 날, 그리고 일으킴,,이라는 용어를

신자들을 생명으로 일으킬 때에도 사용하였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 닥치는 죽음이 임할 때에도

이 마지막 날 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었죠.

 

그러니 이 마지막 날과 관련된, 일으킴, 또는 생명을 줌, 생명으로,, 라는 용어는

혹시,모든 인류가 범 공통적으로 맞이하는 어떤 객관적 연대라기 보다는,

각 개인마다 그의 일생 중 어느 시점에선가 맞이하는,,이미 set up 된 심판 과정상의 끝 부분이

아닐까 라는 의문 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과거 일세기 때의 사도들과 제자들의 인식과는 거리가 먼,,

우리시대의 기독교내의 많은 종파에서 특히, 문자적 죽음만을

죽음으로만 고집하는 기독 종파와 그 죽음 뒤에는 결코 부활때까지는

그 어떤 부류의 신자도 무덤속에 잠겨 있어야 한다는 교리란,,

철저한 육체적 관념속에 가두워진 세뇌 교리들일 것입니다. 

 

이 세뇌 교리란,,

그들이 믿는 하나님의 능력조차 부인하는 결과를 낳고 있으며,, 

하나님의 일인 죽음과 부활이신, 예수 안에서까지도,,

결코 사탄의 능력인 죽음속에 꼼짝없이 가두워져서 정해진 부활때까지는

그 죽음의 파워 속에서 보내야 한다는 어둠속의 무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진리가 이미 사건으로 증거 되었습니다.

 

그 사건이란, 우리 조상 예수는 죽었고 3일 후, 무덤에서 부활 하셨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조상이 거친 과정인 이 죽음과 부활이라는 커다란 사건을

실제적 사건으로 받아 드린다면, 그의 후손인 우리 역시 같은 과정으로

예수와 같은 부활을 경험해야 합니다.

 

특히 예수와 같은 거룩함에 참여하는 거룩한 신자 모두는

그 거룩함의 끝인 제물로써의 죽음,, 그리고 3일 후,,

예수와 같은 영광의 부활을 경험해야  공의롭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우리에게도 이 거룩함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헤가 이뤄지는 논리 입니다.

 

예수 안에는 많은 부류의 믿음이 층으로 존재 합니다.

그리고 이 예수 안에 속한 수 많은 믿음의 신자들의 부활의 순서는

이미 고린도 회중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 중에서그 순서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예수의 영을 소유했다면 그 신자는 예수 안에 속한 자 일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많은 구절들에서 찾아 볼 수 있듯이,,

이 예수의 영을 소유해서 예수에 속한자라 할찌라도 육신의 죄 때문에 무덤속의 긴 잠을 자야겠죠.

이들에게는,,, 예수의 강림이라고 번역된 때에 이들에게 오셔서 그들을 부활 시키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살아 생전 중에 첫 열매들인, 예수의 거룩함에 동참한 신자들,,

즉 예수의 죽음과 같은 제물로써의 죽음에까지 동참한 자들에게는

무덤으로 부터의 해방 과정이 필요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와 같은 영의 첫 열매,,  그리스도의 같은 첫 열매 부류이기 때문 입니다.

 

아래의 계속 될 글들은 이 점을 확실히 해 줄 것입니다.  

각 믿음의 층들에게서 일어나는 마지막 날의 시기와 일으킴을

새 창조와 구원과 연결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가깝게 접근하여 조명한 글 입니다.

인간의 죽음이라는 거쳐야만 되는 과정, 혹은 관문 중 하나가 

어떤 가치로 언제, 어떻게 지불되는가에 따라서 

어떤 신자에게는 그 죽음의 잠을 중복해서 잘 필요가 없다는 분석 글 입니다.    

 

 

많은 믿음의 층들에게 발생하는 마지막 날,,그리고 일으킴의 적용들, 

 

 

 

A) 지하 -1 층에서 계속 어둠으로

 

우선, 한 예로써 요한 12장48절을 보겠습니다.,,

 

",,,내 말을 듣지도 않을 뿐더러 거부하는 자들은

이미 그들에게 심판이 이른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바로 내 말 자체가, 그를 심판 할 것입니다." (예수의 증언 중에서)

 

간단한 해설 들어가기 전에,,잠깐,,, 이 48절에 불신자들을,,

바로 그 앞의 또 다른 구룹인 47절 신자들과 비교해 볼까요.

 

47절에 나오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 입니다.

 

B) 지상, 제로 ground 를 향할 신자

 

,," 누구든지 내 말을 듣기는 하지만,,충성스럽게

지키지는 못하는 자들에게는 나는(단번에) 그들을 심판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1000 년 제사직 마련으로 이들을 회복시키니까)나는 세상을 (내 말을 듣는 자들을,혹은 믿는 자들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출(구원)(끝까지)하러 왔기 때문 입니다."  (예수의 증언 중에서)

 

 

눈치빠른 님은 아마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대하시는 예수의 차별 반응에 놀라셨나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적용이 마치 차별하는것 처럼,, 왜 이리 판이하게 틀릴까요.

 

부활 후,,지상 제로에 거할 미래를 택한  말씀을 듣는 부류의 자들에게는

비록 현제로는 거룩한 행실이 못 따라와 줘도,

심판으로 끝장내지 않고 구원으로 계속 쭉쭉 나가신다고 하시고,

 

반면에 어두운 지하 1 층에 거하는, 말씀 조차 거부하고 홰방놓고 물리치는 뿔난 불신자 자들에게는

그 자의 마지막 때에 그를 변호할 것이 없는 그래서 붙잡지 못할,, 아무런 도움없이

영의 생명에선,,사그러짐을 경험하는 심판의 끝에 다 다른 다는 차별을 두는 경고내요.

 

과연  차별대우 하는것 같은 이 심판이  의롭고 합당 할까요?  

하지만  차별대우 라는 그 차별속에 마지막 날과 심판이라는개념이 관련되 있음을 아시나요.?

 

지하 1층에 거하는 자들에게 적용되는 마지막 날의 시기와 심판의 시간대가, 즉 그 용어의 개념이,,,

미래 언잰가 제로 ground 에 존재할 자들과는  좀 다르내요 그쵸?

 

우선 이쯤해 두고 다음으로 빨리 넘어 가죠.

 

그리고 어째 이 말씀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말씀인데요 그죠.

 

네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께서 니고데모와의 대화 가운데서 하신 말씀의 중복이기 때문 입니다.

 

요한 3장에,,,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이는 믿는 그들을 

                     사라지게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합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신 이유는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믿는것을 통하여 구출되게 하려고 했기 때문 입니다.

                      

                      그를 믿기만 하여도 그 사람은 끝내 심판받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에 그를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이미 심판 받은 것입니다.

                      그 심판은 (기준은) 바로 이것 입니다. 빛이 세상으로 왔지만,

                      사람들은 어둠을 빛 보다 더 좋아했기 때문 입니다."

 

 

두 번째 세상을 OPEN 하신 창조주,,,

 

 

난데없이 왜 주제를 비껴가는 듯한 두 번째 세상 창조냐구요?

 

일으킴 그리고 마지막 날 이라는 이 단어들이 분명히

심판과 새 창조, 그리고 생명, 이라는 개념과 서로 관련이 있기 때문 입니다.

 

"마지막날에 그를 일으키" 신 다는 이 멘트 자체가

새 창조이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그 신자의 마지막 부분에 발생될

예수의 역활인 구원의 과정과 밀접히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신자가 경험하는 거룩함의 과정의 길인 구원의 상황들은,

이미 그 길이신,,그 역활의 주인이신,, 예수의 두 번째 나타남과 

필수적인 관련이 있다는 저의 의미이죠.     

 

새 창조나 심판이나, 혹은 법, 그리고 의 와 마침내 완전성,,이러한 각가 지닌 깊숙한 논리는

나중에 하나 하나씩 밣히기로 하구요. 우선 위 주제와 연결된 각각의 주된 연결점만을 드러내겠습니다.  

 

또 다시 인류에게 찾아 온 두 번째 선택, 두 번째 에덴 동산 

 

마지막 날에 그를 일으킨다는,,윗 구절, 이 예수의 말씀은 우선, 하나님의 새 창조의 기초를 제공해 줍니다.

즉 창조의 초창기 육의 창조 때에, 선악과 라는 기준이 되는 법이

그 당시 제로 생명에서의 시작,기준이였듯이요.

 

마찬가지로,, 이제 하나님은 이 지상위에,,또 다시 과거 에덴 동산과 똑 같은 상황을 재현시켰습니다.

,, 새로운 생명,,즉

빛으로 된 생명을 출현 시켰기 때문 입니다.

바로 두번째 세상의 기초 즉, 새 창조의 밑 바닥인 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새 창조의 기준 법인 생명의 법이 출현한 것이란 의미죠.

(이 두 번째 새로운 기초의 나머지 출현 부분은 심히 깊은 주제이므로 생략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은 이제,

이 새 생명의 출현에 눈을 떠야 그 생명의 근원을(빛) 볼 수 있습니다.

예수가 빛의 생명 수준으로 온 그 사건이

곧 인류의 두 번째 에덴 동산의 모습이여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마침내,,예수의 빛으로의 생명 완성 이후,,

이제 그 빛이 새로운 창조의 심판의 기준이자 시작이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류에게는 빛이냐 어둠이냐 라는 두 번째 생명의 선택이 각 자에게 놓여진 샘입니다.

첫 번째 처럼 아담 개인에게만 의지했던 선택이 아닌,,,이제는 예수라는 조상의 완성이 마침이 되어서

그의 완전한 자손으로 입양되는냐 아니냐를 ,우리 각자 스스로가 택할 수 있는 두 번째 세상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빛과 어둠을 나누시는 작업으로 부터 새 창조는 그 시작을 알립니다.

 

이쯤에서 다시 요한 12장 47절 48절 바로 전 구절을 끌어 오겠습니다.

 

"나는 이 세상의 빛으로 왔습니다. 나를 믿는 자들을 더 이상 어둠에 갇쳐있는것을 막기 위합입니다."

빛과 어둠의 영역을 가르신다는 의미죠.  

 

그 빛이란 ,,

예수 자체의 피와 살이며,

그 피와 살을 먹고 마시라는 것이 곧 이요,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계명 입니다.

 

우선,,사람들에게 이 계명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즉 하나님의 일인,,믿으라는 간단한 계명에 마음으로 믿어 순종하는것 만으로도

그 신자는 영의 심판에 떨어지지 않을 자비로운 임시 보호,보조 장치를 해 놓았던 것입니다.

행여,,죄성의 강도가 매우 깊은 믿는 어떤 신자가 지속적으로 계명에 충실하지 못하더라도,,

기필코 구원까지의 마련이,, 무덤 후,,즉 신자가 죄의 삯을 받는 장소인 무덤에서의 긴 잠을 자더라도,

정해진 기간에 영의 부활로 나오고 그 신자의 완전성을 위한 제사가 계속 되기 때문 입니다.

즉 새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는,, 대제사장으로써 지속적으로 자신의 피의 제사로 그 신자를 지지하기 때문 입니다.

기필코 예수는 그 신자에게서 죄성이라는 죽음의 원수를 없애시기 위해, 그 원수를 자신의 발등상에 두실 것입니다.

이 신자와 같은 부류의 수 많은 자들이 무덤에서 나와,,하늘의 도시인, 생명 나무와 생명의 강이 흐르는 곳에서

마음 푹 놓고 자유롭게 긴 시간을 두고(1000 년) 치료(제사)를 받을 것입니다.

이들은 결코 심판에 떨어지는 일 없이 오히려 하나님의 자비 가운데 이렇게 새 창조를 이루워 갈 것입니다.

 

이들 신자들은 그 때서야,,

빛이신 하나님과 그 빛으로 오신 예수,,그리고 그 빛의 생명으로 거듭난 제자들의 빛의 발산을 통해,  

그 빛으로 걷는 연습을 하여 마침내 그 빛을 따라서 자신의 새 창조를 그 곳에서 완성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빛으로 된 생명이 이제 이 지구 위의 생명들에게 새 기준 입니다.

 

즉,, 빛으로 오신 예수라는 생명이 기준 입니다.

다시말해 이 예수를 믿으라 가 이 법의 계명 입니다.

 

이쯤 간단하게나마 밑 그림을 깔고,,

다시 요한 12장 47절과 48절,이렇게 두 구절을 보겠습니다.

 

우선 47절에의 한 부류의 사람들 이죠(제로 ground로 향할 신자)

이들은 예수의 말을 부정하지도 않고 부인 하지도 않고 ,,오히려 귀를 기우려 듣습니다.

하지만 행실로써는 말씀대로 행하지는 못했나 봅니다. 그러나 이들은 믿는 신자들 입니다.

즉 말씀을 듣고 믿음을 받았지만,,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자신의 일생을 바친 부류가 아니라는 것이죠.

 

이 부류의 사람들에게 예수의 목적은 오직 하나,,

이들을 심판하는것이 아니라,,오히려 이들을 마지막 날이라는

상황의 때에 일으켜서 그들을 구출하는 작업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즉 이들 제로 그라운드의 주인공들인 신자들에게는 아예 심판의 과정을 건너 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으킴이라는 시기도 48절의 지하 어둠에 거하는 층의 사람들과 차별을 두시겠다는것입니다.  

 

이들은 이렇게 죽음의 무덤에서 부활되어서,, 

영으로는 믿기 때문에 생명이라는 제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그 당시의 먼저 죽음에서 일어나서 이미 생명을(제로) 얻은,,제사장직을 할 1000 년간의 제사장들에게 봉사를 받을 것 입니다.

즉 그 하늘의 동산에 제사직과 이 제사직을 필요로하는 일반 신자들이 존재하게 된 것이겠죠.

그리고 이 마련이 진행될 1000 년 전에는 이들 부활받은 신자는 죽음으로부터 완전한 구출이 아닐 것입니다. 

완전한 제로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의미로써인,,계20장 5절의 의미인,,"1000 동안 살아나지 못한다" 는 아직도 -1 상태 입니다.

즉 부활했다고해서 자동적으로 생명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개념이죠. (부활과 생명과는 별개 입니다.)

왜냐하면,, 그 성구에서 말한 것처럼, 1000 동안이라는 제사직 아래 있기 때문 입니다.

 

제사직이란 의인이 아니라 죄인에게 행하는 봉사를 말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1000 년간의 제사직이 땅에 거하는 인간 불신자들에게 베풀어지는것이 될 수 없음은,,,

불신자들은 더 이상 믿으라 는 영의 법 아래 있지 않기 때문 입니다.

이 1000 년간의 제사직은 최소한의 믿음을 소유한 믿음의 백성들로만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제사장들이 그 1000 년간의 (충분한 기간이라는뜻) 제사직을 시작했다면,,,

그 제사직의 봉사를 받는 백성이란,,부활됬지만, 믿음안의 아직도 죄인 신분 신자들,,

즉 아직 제로 상태의 생명으로 가야 할 길이 먼,, 회복될 자들의 존재로 이해되야 하겠죠.

제사직과 불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요지 입니다.

(이 제사장 부류의 정체에 대해서는 후편에 더 추가될 것입니다.)

 

 

이들 신자들은 어딜 향해서요? 바로 제로 생명으로 드러나기 위해서겠죠.

즉 아들 자신의 피로 이들까지도 송두리째 사신 예수는,,,

이들이 듣기만하여도 즉 믿기만 하여도

이들을 결코 영으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끝내 죽음에서 구출 하신다는 요한 3장의 의미 입니다.

 

분명,,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은

불완전한 이들이 행여,, 지상 생활에서 못 이룬 새 생명을

무덤 후, 부활을 통해서 이들을 일으시키고,

지속적으로 예수의 제사를 계속 적용시켜

이들을 완전히 창조하시겠다는 의지이 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등장이란,, 제 2 의 아담의 등장 입니다.

이 사건은 지구 위에 매우 심도 높은 의미들을 남깁니다.

 

왜냐하면, 아담의 등장이란,,

뒤 따르는 후손들의 등장이기도 하거니와 동시에 생명의 법의 등장이기 때문이죠.

법이 등장했다면 의와 완전함도 곧 뒤따르겠죠.

의와 완전함이 뒤따른다면,

하나님의 창조도 완성 되겠죠.

 

제 말은 이 지상위에 2 번째 아담,,즉 예수의 등장이란,,

법의 시작과 동시에 미래의 후손의 등장이기도 한 새 창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러 이 법을 물리치는 죄인이 된 인류에게 법의 시작이란,,

곧 이런 부류의 자들에겐,,,심판(기준,비준)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요한 3장의 의미는,,,

우리 인류 모두에게,,과거 예덴의 선악과 처럼 같은 상황이 제연된 것이죠.

즉,,우리에게 또 선택이 주워진 것이자,,

이 빛이 짙은 어둠속에서,, 같은 공간과 시간대에서 공존하는 시작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빛을 선택하는 자들에게는 그 선택의 초기에 심판을 두신것이 아니라,,

즉,,이 빛이라는 새로운 생명의 수준은 여러 자비스런 단계를 완충하고 있어서

혹 신자가 행위로 못 미치는, 모자르는 면이 있다 하더라도,,

곧 바로 심판으로 떨어지게 하는 무자비가 아니라,,

무덤에서 일으킴을 받은 후에도 계속해서 완전한 영의 창조를 위해

대 제사장의 보호아래 1000 년동안 진행될 거라는 오직 한 방향인,,

완전한 구원으로 향해 놓여있는 일방통행 입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여도 그 신자는 성급히 심판으로 몰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예수의 말씀을 듣기를 일부러 거절하며 부인하고

부정하며 물리치는 자들에게는 위 48절 처럼,, 어찌 해 볼 자비의 여유조차 없습니다. 

그들은 살아 생전때 발생하는 이 새 창조의 기회때에, 그 초기 계명인 믿으라 는

기회의 대문 조차 걷어 차므로, 어둠을 더 좋아하는 선택을 해 버린 것이죠.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살아 생전 때에 이미 영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즉 이 두 번째 아담의 영의 세계로의 진입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죠,,

그래서 믿는자들이 받을 혜택인,,회복 장소,,,즉

하늘  제사장들의 1000 년 동안의 제사직 씻김도 받을 수 없는 형편에 놓이는 샘 입니다.

 

이들 일부러 불신하는 자들에게는 오직 하나 남은 육의 심판에 놓이게 됩니다.

즉 미래 어느 때인가,,이들 불신자들인, 즉 거의 모든 인류가 되겠죠. 

무덤에서 모두 나와서 영의 법이 아닌,,,육의 법 아래 놓이게 되므로,,

이웃에게 온유하라는 법,,즉 이 육체의 기본 법에 순종하여 통과해서,  

이제야 -1 에서 육으로 제로 상태로 되느냐 아니면 이젠 육체까지도 영원히 사멸 되는냐 라는

육의 생명의 심판에 놓이게 됩니다.  

 

부분적 결론으로 47 절의,, 듣기는 하여 믿는 신자들을 향한 예수의 의지란,,

즉 그 구절의 요지는,,이들이 듣기만 하여도, 즉 마음으로 믿기만 해도,,

비록, 행위면에서 지속적으로 충실치 못할지 언정, 

예수는 결코 섭불리, 성급하게, 영의 심판을 그들에게 내리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지속적으로 내세에서까지 끌어 올려서 계속 그들을 구출할 거라는 것이 요지 입니다.

 

 

이 부류들 말고,,믿음의 층들의 또 다른 부류들이 있습니다.

 

 

 

또 다른 믿음의 층들을 발견함,,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날과 일으킴의 시기

 

 

 

이 또 다른 부류의 신자들이 등장하는데요,,

그 중 한 부류는,,바로 계시록 20 장에 등장하는 왕좌들 입니다.

 

C) 심판하는 권세를 행하는 왕좌들의 믿음의 층

 

다행이,,이 왕좌들의 정체를 알려주는 상황도 역시 같이 나오내요.

이 왕좌들은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내요.

 

한번 자세히 이 구절들을 관찰해 보세요.(계 20장4-6절)

이들 왕좌에 좌정한 자들이,, 어떤 부류의 신자들을 심판하는데요,,,,

그 심판 받는 신자들이란,,마지막 날 이라는 어떤 지점의 상황에, 

그때서야 무덤에서 나와 (긴잠을 잔 경험) 제로 생명을 이들에게서 얻고,

그리고 제사장 직분을 받을 신자들이내요,,

즉 이들 왕좌들이란,,죽어있는 신자들까지 영으로 살리는 심판을 행하는 왕좌인데요.

 

이처럼,, 왕좌에 앉아서 심판하는 권세를 받은 이 왕좌에 좌석한 자들이 한 부류이구요.

 

 

D) 왕 겸 제사장으로써의 직분을 무덤에서 나와서 영의 부활 후 수행할

    1000 년 동안의 제사장 믿음의 층

 

그리고 또,, 한 부류는,,,위 소 제목의 주인공 신자들,,즉  

영의 부활로써는 첫째 부활에(긴 죽음의 잠에서) 참여할 자들인데요,

 

성구에 언급된것 처럼 ,, 죽은 영혼들이였다가 부활과 동시에 생명을(제로) 받은 신자들 입니다.,

즉 거룩한 제물로써의 제사장 길은,, 그들이 지상 생애 살아 생전때 못했지만,, 

믿음과 관련된 위기의 상황에서는 예수의 증언 때문에 목 베임을 당했거나,혹은

도끼로 죽었거나, 또는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다고 죽임을 당한 (모두 박해의 종류들)

예수의 증인들인,, 한 부류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들 첫째부활에 참여할 제사장들을 부활시킨 왕좌들은 또 누구죠?

 

그리고 왜 이 미래 제사장들이,, 왕좌에 앉아 있는 심판관들에게 심판 받아서,

그 결과로,, 무덤에서 일으킴을 받는 동시에 그 때 제로 생명으로 받고서,

1000 년 동안 예수와 더불어 왕 겸 제사장 직을 수행하는 것이죠?

 

제 질문은,,

마지막 때라는, 무덤에서 부활되어서 나올때,,이 기간 중에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은,,

그래서 그 때에 가서야 거룩함에 참여하는 1000 년 동안 제사장 직을 수행할 이 신자들에게 심판은 무슨 의미죠.,,

 

그리고

 

이들 첫째부활을 인도할 왕좌들의 주인공들은 누구죠.

 

 

다음 글에서는 이들 믿음의 층들의 정체와  

이들에게 각각 적용되는 일으킴 이라는 의미와,,

또 그 일으킴이 적용될 시기인 마지막 날, 혹은 마지막 때, 또는 마지막 부분,지점 이라는

의미를 밣혀낼 것입니다.

 

죽음의 무덤에 관계없을 정도의 의로운 POWER 를 소유하고 그 죽음 전이든,후이든

관계없이 넘나들며 심지어 죽음이라는  그 어둠의 왕좌 세력까지 초토화 시켜버려서

아무때나 언제나 아무에게나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유자재로 적용되는,,

 

1) 생명으로 일으킴,  

 

그리고

 

2) 마지막 날, 혹은 마지막 때 라는 예수의 POWER,,

 

 

이 용어가 하나의 일획적인 시기와 장소에 붙잡혀 묶여져 있을 수 없이

믿음에 따라서,, 예수의 능력의 말씀으로 작용하여 변화무쌍하게 나타나야만 되는 공의를요.  

 

출처 : 어두운 예언
글쓴이 : 예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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