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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들 /담아온 글 ...

[스크랩] 죽음과 심판과 두 번째 나타남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평가 한다는 뜻이겠죠.

어떤 일이나 상황을 기준에 의거해서 잘잘못을 가려내는 일이겠죠.

그러니 심판을 할려면 우선 기준이라는 잣대가 먼저 있어야 할 것 입니다.

 

인류:   "보통 사람들은 a(죽음을) 경험 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b(부활후) c(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신자: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도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A(희생) 하셨고

 

         두 번째 B(나타나실) 것입니다.하지만 이때는 죄와는 상관없이

 

         그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C(구원을, salvation ) 얻도록 인도하기 위해서 입니다."

                                                                             

                                                                              ,,,,,히브리서 필자의 증언에서,,,  

 

* 알파벳 소문자와 대문자의 과정은 서로 같은 과정일 것입니다.

      

인류와 신자들 모두가  거쳐야만하는 과정 중에서 심판과 구원 바로 앞 부분의 과정인

죽음과 부활이 관건 입니다. 이 죽음과 부활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거쳐주는지가 관건 입니다.

      

인류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의 삯인 죽음을 자신들이 갚기 위해 무덤에서의 긴 잠을,,,

      

하지만

 

신자들에게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대치되기 때문에 무덤에서의 긴 잠이 생략 된다는 것이 핵심 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죽음과 부활 뒤에 오는 과정인 예수의 역활 즉

 

인류에게는,, 심판으로 오시듯이,

     

 

      하지만,,,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거듭난 신자들에게는,,

                 죽음 그 다음 과정인,,, 구원을 위해 (예수가 인류에게 심판으로 오실것 처럼)

                     신자들에게도(무덤의 과정이 필요 없이) 그 다음 과정인 오심,,두 번째로 오신다 는 것이죠.

      

 

 

먼저,,,이 구절에서 몇가지 꼭 집고 넘어가야만 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그래야만 죽음과 심판과 또 예수의 두 번째 나타나심과 구원이 서로 시기상 , 혹은

상황상 서로 연결되 있음을 이해하기 때문 입니다.

 

1) 먼저 보통 인류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이해 입니다.

   

 

   사람의 죽음은 신의 심판이 아니라 죄의 댓가(형벌)이다.

 

보통 인류라는 평범한 사람들 모두에게 임하는 죽음이란,,심판과는 거리가 먼 개념이죠.

인류 초창기 에덴에서의 선악과 상황을 두신 창조주의 의도를 심판이라 규정할 수 있겠습니까?

왜 제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됬냐하면,,

그 당시 심판의 기준같이 보였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존재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단지 이 법의 출현으로만 가지고는 그 상황이 심판이였다 라고 단정짓는것은 오류 일 것입니다.

 

잠깐, 그 때 당시로 돌아가 보죠.

선과 악의 기준이 되는 법의 출현,,

그리고 아담과 이브의 선택적 행위과정 등의 정황을 고찰 할 때,

아마도 우리는 그 에덴의 상황을 심판이라고 섭불리 정의 내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가 심판이라 규정할 수 있는 제 1 필수 조건이  있습니다.

그 필수 조건이란,,

심판의 정의란,, 죄 아래에서만,, 다시말해  -1 상태(죽음)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죠.

 

제 뜻은 이렀습니다.

 

에덴에서의 그 법의 역활이란,,

그 당시의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죽느냐 혹은 사느냐 만이 관건이 아닌,,

무었이 선이고 무었이 악인지를 규정하는 이라는 차원인 것이죠.

 

뜻을 좀 더 풀이하자면,, 아담과 이브는 죽음이라는 -1 상태가 아니  였다는 점 입니다.

아담의 경우,,이미 생명이라는 기본적 창조 즉 0,제로 상태에서의 법의 출현이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상황에서의 법의 역활이란 선 이라는 + 1 을 추구케하는 선물 형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의 죽음은 결국 뭐죠.

선악과 라는 법을 통해서만 형성되는 영원한 생명의 영의 프로그램 과정의 진입을 단절시킨 죄 라는 결과죠.

신이 내린 심판의 댓가도 아니고 아담이 고의로 + 1 생명의 길을 따 돌린 결과일 뿐 입니다.

단순히 죄라는 잘못된 길을 택한 결과이며, 육체라는 물질의 지속성을 유지시켜주는 에너지인 영의 진입을 막고

결국 땅의 원소로 지어진 자연이라는 없어지고마는 육체일 뿐이며 물질의 성질인 한계점에서의 물질 스스로의 퇴화일 뿐입니다.

즉 아담의 죽음이란 한마디로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물질의 성질을 택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음이란 ,, 땅 위라는 제로 에너지도 못 되는,, 땅 아래의 - 1 에너지인 지하속 에너지라는 자연의 저장 법칙입니다. 

 

 

이해를 위해 비교 성구를 끌어 오겠습니다.

 

계시록 20 장 11 절, 12절 에서 그 심판의 정의를 찾아보겠습니다.(구절 생략)

 

그 구절들을 읽으셨다면 님은 언젠가의 미래 그 당시의 법의 출현과 함께

그 법 아래로 인도 된 사람들의 신분의 가치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신분은 그 구절에서 밣힌것 처럼   "죽음" 혹은 "dead" 즉 -1 신분입니다.

즉 아담이 간 곳인  지하속 자연 소멸의 저장 장소라는 것이죠. 

바로 이들이 부활 되어서 그 당시의 법으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죠.

 

물론 그때의 그 법의 한계점이란,,부활된,,하지만 아직도 -1 상태인,, 죽음 안에서만의 권한일 것입니다.

부활된, 하지만 아직도 죽은 자들을,, 이 법으로 심판하여 죽음에서 이제 0, 제로 상태인

생명 상태로만 올려 놓기위한 법의 범주 일 뿐 이라는것이죠.

  

 

그렇다면 이제 한번 비교를 해보죠., 

 

1) "죽음" 들에게 심판하기 위해 주워진 법과

2)  그리고 에덴에서의 이미 생명 상태인 아담을 선으로 올려 놓기 위한 법,,

이 두 법,,, 1번 과 2 번 사이에는 이렇게 커 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이죠.

 

계시록 20 장에 나오는 심판의 법 상황은 

죽음의 무덤에서 일단 부화을 통해 모두 나와서, 그 다음 과정인 거쳐야만하는 심판의 법을 통과한 후,,

즉 위 히브리 성구 처럼 사람이 죽은 후에 언젠가 맞이해야만하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어서 그래서

이제 때가 되어서 인류가 무덤에서 나오고, 심판의 법을 거치서, 이제 막 생명책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된 자들은,,

마치 아담 초기 상태와 같겠죠. 그리고는 계속 진행될   +1   으로써의 생명 수준을 희망으로 바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음 3 가지를 비교한 이유는 제가 말 할려는 새 창조든, 혹은 형벌이든, 순서라는 요소를 부각시키기 위함 입니다.

 

1) 번은,,위 히브리서에서 말한 보통 믿지 않는 인류 사람이 죽은 후에 그리고 긴 무덤 기간 후,

    언젠가 맞이하는 미래의 이 심판 생명 상태와,,

 

2) 번은,,그리고 아담의 초기 생명 상태,,그리고 죄 지은 후 죽음, (아담의 경우는 순서가 꺼꾸로 내요)

 

3) 번은,,그리고 신자들이 믿음의 과정 중 경험하는 예수의 죽음으로 죽는 이 죽음,,,그리고 거듭남의 생명 상태,(부활이죠),, 

 

    과정들의 순서 나열은 거의 똑 같다는 뜻이죠. (아담의 경우도 꺼꾸로의 순서지만 과정은 같음)

 

 

3) 번만이 최상의 해결책이군요.

 

예수의 죽음으로 대신 우리의 죄의 삵을 메꾸면 되는 아주 편리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지 않은 일반 사람들이 가는곳인 무덤에서 죽음의 잠을 자야 할 시간이 필요 없군요.

믿는 신자들에게는,,일반인이 경험해야만 하는 순서인, 죽은 후,  무덤에서-- 심판까지의 긴 세월의 시간을 단축시켜 버린 복음 입니다.

(무덤이라는 죄의 삯를 치루는 장소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행위로 메꿔짐) 

 

이처럼 3 번은 예수의 종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선물 입니다. 

즉 믿음이라는 나열 과정안에서,, (예수의 활동, 사건들 안에서) ,,,

이미 예수의 죽음과 심판과 부활을 하나로 묶어서 이 사건들을 믿는 신자에게만,

믿지 못한 자들에게 임하는 무덤 속의 긴 잠,,그 과정을 단축시켜 논 신의 작품이죠.

 

위 히브리서에서는 예수의 희생의 죽음으로

신자들이 죽어야하는 그 삯을 대신 치뤄 준 댓가죠.

즉 의로운 영과 함께 죄성인 육신의 죄의 삯까지도 아예 제사에 포함 시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과정 중 죽음까지 예수의 죽음으로 해결된 신자 에게는 죽음에서 제로 상태로 거듭난 것이죠.

그러니 이 0,제로 상태의 생명이 되었다면,,(죽음의 긴 잠을 잘 필요없이) 

이제,,,+1 의 생명,즉 선한 생명,,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이 주워질 생명수준이 끊김없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결론적으로,,죽음에 대한 아래의 이 말씀이 이제는 님에게 다른 각도로도 이해됬으면 합니다.

 

"나를 믿는자는 혹 죽어도 살겠고, 일단 살아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거듭난, 즉 제로 상태) 나를 지속적으로 믿는다면,

그는 결코 죽음을 보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의 증언,

 

 

2) 다음은 심판에 대한 이해 입니다.

 

이렇게 심판이란,,

죽음 이라는 영역에서만 제한되 있으며,

 

그 심판의 목적은,, 

바로 그 죽음에서의 해방이며,

또한 필수적인 특정 법의 역활을 소유하고 있는 상황 입니다.

 

자,, 이제 다시 위 성구 히브리서 9장 27,28절을 볼까요.

 

윗 구절을 요약 하자면,,

우선 인류 대 부분은 누구나 다 죽는다 죠.

그리고 그 죽음 후,, 무덤의 긴 기간을 거쳐서 언젠가는 심판에 놓이게 된다가 되겠죠.

 

그러면 윗 요약,,간단한 풀이 들어 갑니다.

 

이 인류 사람들에게 일어 나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과정을,,

마찬가지로,,예수도,, 똑 같이 죽음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자신을 희생했다 입니다. 

즉 죄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죽었다 죠.

왜냐하면 예수를 믿는 신자들을 위해서,,,

사람의 죄로 인한 삵을 죄 없는 예수가 대신 넘겨 받기 위함이다. 

 

그리고는 더 해서,, 이 예수가 두 번째로 어디에선가, 어떤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을 위해서 다시 나타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특정 부류의 신자들에게 죽음에서 심판까지 이 부분이 생략될 수 있는 논리를 일찍 뽑자면 

다음 말씀이 답이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들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심판이 그를 건너 뛸 것인데 그 이유는, 그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 뛰었기 때문 입니다."  예수의 증언 

 

그렇죠. 죽음과 부활을 예수의 행위로 대신 갚는다면,,, 심판이라는 과정을 가질 필요도 없을 거니와 

더 나아가 죽어서 잠자는 무덤의 과정까지도 생략될 것이고,, 그에 더해서 ,,, 다시 오시는 예수의 시간을 

일생이라는 님의 지상 행로 동안으로 단축할 수있는 은혜 가운데, 특별한 자비 가운데 놓이게 됩니다.

 

이유는 단 한가지,, 심판의 기준이,, 즉  믿으라는 새로운 법의 출현으로,,

그리고 이 기준 법에 믿음으로 순종함으로써 심판을 건너 띈 것입니다.

더군다나,, 육체의 행위를 영으로 죽이는 자 들,,이 특정한 신자들에게는 ,이 거듭난 자륻에게는

이미 죽고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믿음으로 거쳤기에 ,,,또 다시 죽고 무덤으로 들어가는 과장을 반복할 필요가 없으므로

즉 한번 죽었기 때문에 무덤의 긴 과정이 불필요하며,,

단지 그 다음 단계인 예수의 나타남을 기간의 끊임없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일생 내에서 예수의 두 번째 역활인 구원으로의 인도를 받기 위해

이 예수의 나타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 복된 소식 입니다. 죽음과 무덤 생활이 영의 제사로 취소 된 복된 소식 입니다.      

 

 

3) 두 번째 나타나심과 구원에 대한 이해 입니다.

 

두 번째 나타나시는 이유는,,,

예수가 첫 번째 나타난 이유인 죄를 대신하기가 아닌,, 더 이상 이 죄와 관련해서가 아니라,,

이젠,, 0, 제로 상태의 생명을 얻은 신자들에게 완전한 구원과 관련해서 두 번째로 나타나시는데,,

바로 이들 특정한 자들을 이제는 0, 제로에서 +1 인 생명 수준인,,구원으로 이끌기 위해서다 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 특정한 부류의 사람이란,,

믿음으로 이미 생명 수준이 0,제로가 된,,즉 죽음을 거친 자들인 신자들 입니다.

즉 믿음의 과정 중 하나인,,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에 대해서는 예수의 대신 죽음으로 죽고

다시 예수의 부활로 다시 태어나는 사람들,,즉 윗 성구처럼,,,예수가 대신 죽어 준 그 죽음을 믿음으로 받은 자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격는 그 죽음의 심판을 이미 살아 생전에 격은 자들,,

이들 신자들에게는 이렇게 예수의 죽음으로 무덤의 긴 잠 과정을 이미 거쳤기에,,

즉 믿음의 과정으로써 긴 죽음의 잠이 응축되고 축소되었기에, (하지만, 분명히 그 죽음의 과정을 정확히 거친)

일반 인류가 죽은 후, 언젠가 예수가 와서 인류를 심판하듯,,이와 같은 죽음 후의 연쇄 과정을,

이제 예수의 죽음으로 미리 죽은 신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 죽음 후의 과정인 심판 과정을 구원 과정으로 대치 시키겠다 입니다.   

제 설명이 글로써는 어렵내요.^^

 

다시 한번 해보죠.

인류 1) 죄의 삯인 죽음.  2) 무덤에서의 긴잠, 3) 예수가 와서 인류를 심판함, 이런 순서의 과정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신자:1) 죄의 삯인 죽음을 예수의 죽음으로(예수의 죽음을 믿기 때문) 2) 무덤에 들어 갈 필요 없음(시간 단축) 3)예수가 신자에게 와서,마치 믿지 않은 사람이 죽은 후, 인류에게 심판으로 예수가 오시는 과정처럼,,(이 과장을 신자들에게는 두 번째 나타남) 마치 부활 된 인류를 심판의 과정으로 이끌듯, 신자들에게는 구원의 과정으로 이끔.

 

또 해보죠. 위 히브리서의 핵 포인트만을요.(그 핵심인 두번째 나타나심은  과정 순서에 있습니다.

인류에게 일어나는 과정을 신자들에게도 적용한 것이라는 히브리 필자의 논리 입니다)

 

인류는 죽는다 그리고 그 다음 과정인 무덤과 그 다음 과정인 부활과 그 다음 과정인 심판,,이러한 운명이 순서대로 나열돼 있다.

신자도 죽는다 하지만 예수가 대신 죽어줬다. 그러니 무덤의 과정이 취소,삭제될 수 있다.

그리고 예수는 부활 됬다. 신자도 이제 예수의 죽음으로 죽고 예수의 부활로 부활되서 아예 무덤의 긴 잠을 건너 띈 것이다.

그러니 무덤속의 인류에게 심판하기위해 오시는 예수의 그 과정을, 곧바로, 이미 죽고 부활된 신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신자들이 죽고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다. 이 죽고 부활되는 과정이 이미 예수의 과정으로 치루워졌기 때문에

불신자들처럼 오랜 기간 동안의 긴 잠을 무덤에서 보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곧바로 그 다음 과정인 예수의 두 번째 역활, 즉 인류에게는 심판으로 오시는 과정을, 신자들에게는 구원 과정으로 오실 수 있다는 히브리서의 정확하고 이치적인 논리 이죠.  

 

 

 

그렇 습니다. 이 죽음과 부활로 거듭난 신자들의 생명들에게는 이제 그 다음 과정인

완전한 구원이자, 거룩함의 끝,, 영원한 생명이 필수적일 것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이라는 구원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예수는 자신의 신분의 영역 즉,,성전에서 다시 두 번째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 두 번째 나타나심,, 첫 번째 나타남의 이유인,,

죄와 관련하여 성전에 나타나신 그 이유와는 이젠 상관없이,,

즉 이젠 죄와는 상관 없이,,

왜냐하면 , 죄의 삵인 사망을, 이 죽음을,, 예수의 대신 죽음으로 이미 거친 자들에게는

그들 앞에 놓인 거룩함과 그 완성인 구원만이 이들에게 놓여진 숙제이기 때문 입니다.

바로 이들을 위해 예수는 다시 성전에 나타나서 이들과 함께 거룩함의 길을 동행해 줄 것입니다.

 

이 길은

이 거룩한 법은 죽음과 관련된 심판이 아니라,,

위 성구처럼 예수의 죽음으로 이미 죽음을 건너 뛴,,그래서 이제는 예수가 죄와 상관없이,,

두 번째 나타나시는 목적인 님을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한 성전으로의 +1 의 입성의 길 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권한이 주어 질 은혜의 선물 입니다.

 

우리 믿음의 신자들은 이미 이런 심판의 시대를 일찍 건너 뛴,, 그래서 구원 받을 첫 번째 완전한 열매 입니다. 

 

다음 두 말씀의 성구들이 저의 복잡하고도 조잡한 해설을 깨끗히 정리 해 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시어서 우리에게 독생자를 보냈습니다.

그 이유는 믿는 우리에게 소멸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섭니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보내신 이유는 심판을 목적해 두신것이 아닙니다.

그런것이 아니라, 그를 믿는자들에게 구출을 주시기 위해섭니다.

그를 믿는 자들은 심판을 경함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를 믿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심판 받았습니다." 예수의 증언 중에서

 

그렇습니다. 예수 이후부터 줄 곧,,,현재까지 영의 심판의 때 입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법이 1 세기 때부터 출현해 있기 때문이죠.

 

이 아들을 믿으라 는 새로운 영의 법의 출현으로 인해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하지만 반면에 살아 생전 이 새로운 법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영으로 심판 받은 것입니다.

즉 영으로는 그는 생명을 누릴 수 없기에 결국 육체의 죽음으로 떨어지는  -1 의 상태의 저장 장소로  들어 가야 합니다.

영의 심판의 기회를 다 놓친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이자 생명 입니다." 예수의 증언

 

그렀습니다.

이 예수가 곧 성전의 길이자,,,

진리의 영인 새 계약이자,,,

거룩함의 시작인 제물로써의 시작이자, 그 끝인 희생,,,곧,, 완성된 구원,,,영원한 생명 입니다.

 

죽음에서 시작해서 심판의 법을 거쳐 해방의 BORN AGAIN, 즉 새로운 생명을 시작하고,

더 나아가 거룩함의 시작인 성전으로써의 입성인, 제물로써의 제공과 그 완성인 지성소의 구원,,

바로 이 구원의 구성 입니다.

 

위 성구의 예수의 두 번째 나타나심,,,

바로 대 제사장이신 예수가 그의 역활인 몸, 즉  성전에서만,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 제사장들에게 먼저 발생되는 과정 입니다.

 

누구든지 이 예수의 피와 살을 취한 자들은 오직 예수가 간 길,,아버지 품속으로의 길,,

이 사랑의 길인 성전의 길 만이 보일 것입니다.

 

이곳에서,,이 사랑의 삶인 성전안에서만,, 대 제사장이신 예수가 두 번째 나타나셔서

제사장이신 님을 거룩함의 종점,,아버지 품 속인 구원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부디 님들에게도 성전으로의 입성이 있기를 기도 합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그 안에 영원성이라는 최고의 권한을 희생으로 따낸,,

아버지 홀로만이 거하시는 권한 입니다.

님도 이 권한으로 초대 받은 것입니다. 

 

그렀습니다.

아담 안에서 일어난 모든 행위의 사건과 과정들이,, 당연히 이 세상 사람들에게도 하나도 빠짐없이 임하죠.

그 영향은 우리 신자들에게도 결코 필해 갈 수 없겠죠.

그래서 아담의 마이너스 죽음이 우리들에게도 임합니다.

 

그러나,, 윗 성구처럼,,,

우리 신자들에게는 예수 안에서,,예수가 격은 모든 행위의 사건들과 과정들이 임한다는 것이죠.

이 좋은 플러스 영향은 우리 신자들 역시 결코 피해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죽음이 우리에게도 임합니다 바로 의인 예수 안에서 임합니다.

이 예수 안에서 먼저 그 죽음을 맛 본 신자는 죽음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하지만 해방되었다고,,즉 born again 되었다고 영원한 생명이 자동적으로 오진 않죠.

 

다시 태어 난 신자들에겐,,예수가 가신 길,, 이 거룩한 길이 놓여있고,,

그리고 그 길을 먼저 가신 예수가 두 번째로, 죄와는 상관없이,, 구원을 위해 나타나셔야 합니다.

 

누구든지 이 희망을 품고있는 신자는 자신을 순결하게 유지할 것입니다.

순결치 못한 자들은,, 이 예수를 볼 수 없습니다. 즉 성전이시자 길이신 이 예수로 입성이 안 됩니다.

 

아버지는 사랑하시는 자들마다 징계 하십니다.

바로 순결을 위한 아버지의 마련 입니다.

징계가 필요한 이 시점,,, 사도들이 모두 다 저술한 이 어려운 징계의 기간들,,,

바로 예수의두 번째 나타나심 전에 우리가 필수적으로 가추어야 할 예수의 옷, 제사장의 행실의 옷 입니다.

 

죽음의 심판을 미리 거친,,,

그래서 구출된(SAVED) 이  0, 제로 상태의 새로운 생명,, 

이 죽음에서 거듭남의 생명을 얻은 유아기 과정의 여러분,,

이제 말씀의 우유를 계속 먹고 쑥쑥 성정하여 순결한  제사장의 행위로 된 흰옷을 차려입고

예수가 두 번째로 나타나실 그 분이계신 곳,, 성전으로의 입성에 성공 하시기를 기도 합니다.

 

그 곳에서 거룩한 법의 출현을 고대 하면서요,,,,

 

"여러분 너무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마세요.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기 때문 입니다.

내가 먼저 가서 그 장소를 예비하면 다시 여러분에게 꼭 올 것입니다.

그리고는 여러분을 내가 있는 곳 까지  인도 할 것입니다."

 

예수의 증언 중에서,,,

 

이 예수님은 꼭 두 번째로 나타나셔서 우리를 그가 계신 곳,,

바로 아버지 품 속으로까지 인도 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으로까지 인도 할 것입니다.

 

이 예수가 먼저 간 곳이 구원이라는 아버지 왕좌이기 때문 입니다.

이 왕좌가 아버지 이십니다. ,,,이곳까지의 길을,,

자신이 확보한 장소를,,우리를 위해 예수께서 준비하신 것이죠.

 

그리고 이 장소로까지 우리를 이끌기 위해 이젠, 죄와는 상관 없는,,

즉 사망을 이긴 자들에게 먼저 성전에서 나타나실 것입니다. 

이 성전 안에는 사망이라는 더러움이 존재 할 수 없기 때문 입니다.  

 

님은 이미 사망을 이긴,,, 물과 영으로 거듭난 깨끗한 생명 입니다.

 

이 예수의 두 번째 나타나심을 성전에서 기다리십시요.    

 

 

 

 

  

    

 

 

  

 

 

    

 

 

 

  

   

 

 

   

 

 

  

 

 

   

 

 

 

출처 : 어두운 예언
글쓴이 : 예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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