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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너머에서 ..

이 글은 저번에 드렸던 글

'제가 신흥종교에 발판이 되어 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에 이어지는

믿음에 관련한 글입니다.

 

요즘 제 고민은 언어라는

심한 구속력과 한계를 지닌 소통의 도구로

점점 세워지고 있는 너무나 단순하고도 자연스러운 진리를

어떻게 보다 분명히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입니다.

 

그런데 기가막힌 사실은

그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것들은  

하나님에 관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가장 기초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를 비롯하여 하나님의 공의와 능력과 영광 ..

예수님에 관해서도 우리가 이미 알고 있어

예수님의 호칭 앞에 수식어처럼 달고 있는 그런 말들이 모두 그것입니다.

사실 토시 하나라도 더 붙어야 할 것이 없는

성경말씀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이 이땅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그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똑같은 것을 알고 있는데 ..

왜 여러분들과 저는 똑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면서도

어떻게 한 목소리로 한 믿음을 외치며 같이 일을 할 수 없었을까? 하고요.

 

바로 ..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은 여전히 성경말씀 속에 포함된 

예언에 속한 시간에 살고 있기에

이 시간에도 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며, 앞으로도 이루어질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는 언제든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과

능력으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일을 목격할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가능성을

겁없이 열어두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고 더이상 종교에 속지 않기 위하여

현 성서이해와 다른 이해에 대하여 고민하고 살펴볼 여지없이

현 믿음이라도 계속 굳건히 지켜나가고자 애쓰는 사람과의 차이가,

오늘의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분께서 은유적으로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자칭 사도요 예언자라 하는 이의 그 이상한 이야기를 이해하는 자 또한

영적 또라이가 아니겠느냐고 .."

아마도, 그의 그 판단은, 자신을 '예수'라 소개했던 바 .. 그 사실을 듣고도 배척하지 않고있는 이에 대한

지극히 일반적이고 상식적 수준의 판단이 포함된 것일 겁니다.

 

저 역시 건네받은 그 말로 '미쳤네.. 아주 심하게 미쳤네.." 하고 웃었을 정도로

님들처럼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저의 비정상적인 호기심이나 저의 영적 또라이 상태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를 배척하는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죽은 믿음의 고백들에 놀라서

그 죽은 믿음을 겨냥한 날카로웁고 집요한 글들을 도리어 읽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글에 귀를 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글의 방향 때문이었습니다.

 

이땅에 사람이 아닌 하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글의 촛점이 자신의 주장이 아니라

공의의 하나님과 사랑의 하나님 그리고

그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한 구원의 역사'에 맟춰져 있었습니다.

 

예수 ..  우리 모두는 예수들이 되어야 할 것이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에서 육으로는 죽고 영으로 부활하신 예수께서 당신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셔서

구원의 모든 길을 이루시고 나서

속히 오시어 우리로 당신 계신 곳에 함께 있게 하시겠다 약속하신 자리..

그 자리는 바로 예수의 자리였습니다. 히브리서 2장 10절과 11절의 말씀대로 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한 분이시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돌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믿음의 자녀들이 그분의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되길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을 통해서 예수님을 완전한 구원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신 예수님과 거룩하게 된 사람들은 모두 한 가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그들은 한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젠가 어느 목사님과의 사적인 만남의 자리에서

구원의 가장 깊은 비밀에 속한, 구원의 영역 ..

그 영역은 ..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좌정해 계시는 곳..

즉 하나님의 가족관계 안으로의 초대에 응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입양되어 하나님을 감히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

즉 예수께서 가신 길을 그대로 걸어가 하나님의 안식에 까지 걸어들어가게 되는

바로 작은 예수의 자리라 .. 알고 있다 고백했을 때.. 그 목사님께서 옳다 인정하신 바 였습니다.

 

이 복음을 이해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우리는 모두 예수가 되어야 합니다"라 해서 그리 틀린 말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독생자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로 걸어가신

이땅에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지셨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단 한분이십니다.

 

"제가 예수예요"라는 표현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저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적어도 이 카페에서 공인이라면 공인 축에 속할 수도 있는 제가

그런 말을 듣고서도 배척하지 않았던 저의 믿음적 이유를 밝히는 것이

도리일듯 싶습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의 편견 속에서 가만히 자라

복음이 진정 무엇이었는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고

이제는 저 스스로 여러분의 편견을 밀치고 일어섬으로서

그간의 편견으로 인한

사랑의 깨어짐을 회복하려는 의지가 바로 오늘 이글의 방향입니다.

 

저는 매끄러운 다듬어진 말 한마디 한마디 보다는

비록 너무 거칠어 껍질째 먹을 수는 없어 한번 깍아내고 먹어야 하는 그런 말이라 할지라도

그 말이 시작된 배경과 의도 그리고 그 말로 인한 직간접적인 효과와 

그 너머 시너지 효과를 모두 살피는 사람이기에 더더욱

그의 말에 지금도 그리 가볍지 않게 조사와 살핌을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믿음에 있어서는 이제껏 앞으로도 여전히

어떤 존재도 하나님과 저 사이에 둘 수 없는 사람이기에

 

성경말씀에 두는 믿음만이 유일한 저의 지팡이요 등불이 될 것입니다.

배척보다는 조사에 조사를 ..

딱히 뭐하할 수 없는 수상함이 보일 때는 그 에너지가 어디를 목표로 하고 있는가를 가만히 살피며

저의 마지막날까지 그리할 것입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 믿음에 관하여서는 저는 조금도 겁장이가 아니었으며 비겁자가 아니었으며

이중 인격을 이중 믿음을 지니지 않았음을 자부할 수 있습니다.

만일 몇 년전 그때, 평소 존경하며 사랑하는 어르신과의 인간적 의리를 지키고자

제 믿음의 소리를 눌러버렸다면, 오늘 이시간에 이제껏 저의 믿음에 오점을 남기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제 믿음의 소신을 분명히 하고 그 어르신과 믿음의 행로에 결별을 고했던 그 사실은

저 인간적으로 누리고 싶은 아주 커다란 영역을 포기한 것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그 이후로 믿음으로 기뻐하며 포옹할 수 있었던 분은 단 한분도 만나지 못하였고 그래 저는 늘 홀자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두는 저의 경건한 두려운 마음의 자세요,

지금 이시간도 버려두고 계시지 않으시고 우리를 간섭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온기를 느껴보고싶어 하는

그분을 향한 간절한 살아있는 그리움의 모습입니다.

 

참고로 맹신으로 인한  메트릭스화가 되는 것은

과거 여러 종파를 스쳐지나가가  급기야 여호와의 증인의 경력까지 갖춘 것으로 충분한 저입니다.

 

저의 여러분들을 향한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는 마음을

가나안 형님 내외분과 이엑스 카페 여러분께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