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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모든 시름과 고통 잊으시고 영면에 드시오니 ..

이제 이모님 얼굴도 기억 속에서나 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몇년 전 .. 위암 수술을 받으시고나서 한 일주일 되어서였던가요.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던 당신이셨지만,

병원 침상에 꼿꼿이 앉으셔서 저를 반가이 맞이하셨지요.

 

서로 비슷한 가운데

삶의 방식은 세 자매 모두가 각각 달랐지요.

하지만 그 다름 위에 자매들간에 얼마나 우애가 깊던지 저는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힘든 인생길을 걸어오셨다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적으로는 가장 풍요로운 낙원을 이루셨던 이모님의 지난 발자취는

저희 모두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부요하게 사는 것인지를 알려주는 

이 집안에 작은 등불이 되셨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말씀을 나눌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의 시간이 되겠다 싶어

당신을 뵈었을 때 하셨던 당부 ..

그날에 제게 주셨던 축복의 말씀과 함께 잊지 않겠습니다.

제게 하신 당부의 말씀속에 혈육의 뜨겁고 애잔한 정을 느낄 수 있어

결혼제도를 통해 저의 가족관계로 들어온 어른 너머의 존재로서의 시야가 제게 펼쳐졌었습니다..

 

불교집안에 기독교 믿는 며느리였던 저를

이 집안에 축복이라며 손을 잡아주시던 이모님을 저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가 .. 애 쓴다. 고맙다!'라는 그 따뜻한 목소리는 낯선 땅에서 만나는 유일한 훈풍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안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만나뵈올 수 있는 이모님을 뵐 때는

책임과 의무만 존재하는 일터같은 곳에서 제 피붙이를 만나는 것만큼 반갑고 의지가 되었답니다.. 

 

아버님 장례식 때 .. 절을 하지 않고 향과 술잔을 올리지 않는 저희 식구들에게

'집안에 여자 하나 잘못 들어와 집안이 이꼴이 되고 말았다'며 분노하는 아주버님 뒤에서

따뜻한 위로의 눈빛으로 저를 돌아보시던 그 눈빛은 또 얼마나 위로가 되었던지요.. 

  

이모님의 부고소식을 듣기 전인 어젯밤에 꿈을 꾸었더랬지요.

까만 그랜저였지만 영결식에 사용되는 차처럼 긴 차가 손살같이 바람을 가르며 허공으로 달려나갔지요. 

차가 자나가고 나니 하얀 쌀자루 두 개가 제 앞에 놓여있었지요.

한 자루에는 깨였고 다른 한 자루는 찹쌀이 들어있었습니다.

 

오후가 되어서야 어젯밤 꿈이 이모님 부고를 들을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얼마전 병원에 갔을 때 이모님의 힘없지만 또렷하게 하셨던 그 말씀들이 연결되어 생각나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제 꾼 꿈이 아무래도 이모님의 기도와 같은 염원같다고 ..

어쩌면 혼수상태이면서도 이제껏 숨을 놓지 않고 버티신 것은

당신의 간절한 기도가 다 마치시기 전이어서 그러신 것 같다고 ..

이모님의 살갑고 뜨거운 사랑의 마음이니 그 마음을 어머님께 전달해 드리는 것이 합당한 것 같다고 ..

그리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님께서 슬픔 중에 아주 기뻐하셨습니다.

그 이모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며 .. 말을 잊지 못하셨습니다. 

 

이모님께서는 숨을 거두는 즉시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안길 것으로 생각하시고 계시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부르실 때까지 영면에 드시는 것이란 사실을 ..

아무렴 어떻습니까..

이모님께서 눈을 뜨시는 그 시간이 바로

이모님께서 하늘소망을 가지고 그토록 뵙고 싶어하던 하늘나라 하나님 앞일테니까요..

 

시댁의 큰어른이시라기보다

의지되는 그리스도인 큰 자매님의 느낌이 더 강했던 이모님!!

먼 훗날엔 제 느낌 그 느낌으로 이모님을 만나뵙겠지요..

 

그날까지 이제는 더이상 고통과 고민없이 평안히 주무시기 바랍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는 시간에 함께 했던 날들이 새삼 감사로만 채워지고 있습니다.

모두 꽃처럼 아름답고 고운 기억만 남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부디..  자애롭고 신실하신 우리 하늘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평안히 주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