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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알아간다는 것은 ..

당신을 알아간다는 것은

깊은 물속에서 물고기가 자기 피부에 맞닿아 있는 물의 장막을 한 겹 한 겹 뚫고 나와

어느 날 높은 산에서 그 바다 전체를 보는 것과도 같은 여정 같습니다..

굳이 비유가 불가능한 그 사실이 도리어 그 적합한 비유가 될 정도로 기기묘묘한 상황의 연속일 것 같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알아간다는 것은 

양파껍질을 한겹 벗기면서 야! 벗겼다 싶은 미소가 채 가시기도 전에

또 한 겹의 껍질이 또 또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의 사랑의 단면을 수없이 알게 되어서 좋지 않으냐고 물으시려는지요.. 

최종적인 답은 YES !! 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아시는지요..

뜨거운 뭔가가 느껴지면서 가슴 벅차오르던 감사가

그저 바람같은 바램의 손에 우연히 떨어진 단풍잎이었을 뿐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스스로 부끄러워져 상기된 얼굴을 말이예요..  

  

문제는 아버지의 뜻과는 전혀 관계없이

바라고 또 바란 것이 이루어졌다 감사해하는

유리벽 안 판토마임같은 우수광스런 행동들 때문이나

사실 아버지의 사랑은 제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상상도 할 수 없는 넓은 우주같은 것이었습니다.

 

자유의 광활한 공간이었으나

이제껏 저를 가두던 사상과 관념이 그 공간의 극히 좁은 공간 속에 스스로 가두고

칸 질러진 유리벽 속 유리벽과 유리벽 사이의 통로를 우연히 발견하고는 

없던 길이 열려진 것처럼 기뻐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던 자기 모습을

거울을 통해 보게 되었을 때의 수치감..

 

그 수치감은 사실 아버지께 가지는 감정과 별개의 것이나

그것에서 죄책감까지 느끼게 되었던 때 ..

저는 골방 구석에 들어가 웅크리고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잠을 청하곤 했었지요.. 

 

그때보다는 조금 자랐나봅니다.. 

그런 기분을 느낄 때마다 쓴웃음을 지으며 

'또 남들 다 보고 있는 유리벽 속 판토마임을 했나보다'라고 중얼거리니까요..   

그리고 사상과 관념이라는 유리벽들 ..아직 그것을 넘을 수 없는 벽이 되고 있음에 슬픈 눈빛으로

당신 계신 곳을 바라보고 섰으니까요.. 

 

그때보다는 조금 더 성숙한 눈을 가지게 되었나봅니다..

행복이라 여기는 것도 순간이고 불행이라 여기는 것도 순간이었으니까요..

빛도 그 빛을 드러내는 어둠과 연결되고 어둠 또한 어둠을 어둠이라 여기게 하는 빛으로 또 연결되어

수없이 많은 단면과 단면이 만나면서 결국 사방 빛 속에 놓여져 빛나는 거대한 사랑이라는 보석이

결국엔 당신의 뜻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 속에 가두어져 있으니까요..

 

사랑하는 아버지..

당신을 알아가면서 저는 점점 초라해집니다.

하지만 그 초라함은 그 옛적 저의 자중심을 산산조각나게 하는 초라함이 아니라

사람간에 경우을 따지며 고집하고 성토하고 싶은 것들이

사랑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도리어 

이른 봄날 ..  가난한 동네 ..

응달의 그좁은 골목길 옆 이끼붙어 있는 축축한 담벼락을 보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 도움을 청하고 싶습니다..

저로 영적인 면에 있어서 ..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 성숙한 여인이 되게 해 주시고

더 이상 유약한 어린 계집아이가 아니라 강한 여전사로 만들어 주셔달라고 말입니다.

이제는 어리고 유약한 껍대기가 너무 불편해졌습니다..

 

정의롭고 의로움을 바라는 것은 어린아이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온전한 사랑으로의 접근은 어린 계집아이의 좁은 가슴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좀 강하게 해 주셔야겠습니다..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에 제가 가진 어린아이의 담력과 가슴으로는 역부족인 길을 만났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