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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1/5

구원에 대해서 ..

남산 바로 아래 후암동 언덕빼기

서울에서 처음으로 우리집이 되었던 빨간 벽돌 이층집 ..

이층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려면 위태로운 철재 사다리를 통해야 했었다.

여름날 밤에 돗자리와 얇은 이불을 들고 약간의 간식거리를 들고

불빛 하나 없는 옥상에 올라가면 하늘에서 무수히 별이 쏟아질 것 같았다..

조금전 형광등 아래 사람의 소리가 도리어 낯설게 느껴지는 전혀 새로운 세계였었다..  

 

돗자리를 깔고 누워 있으면 바람 하나 없어 무덥기만 한 여름밤이라도 이내 땀이 식었었다.

그곳에서 난 처음으로 선악과 사건을 알게 되었다.

 

이모집에서 가정부로 일하시던 아줌마였지만 내 어머니가 아프셔서 우리집 일을 잠시 도와주실 때였다..

사람이 늘 그리운 외로운 집안이었기에 그분은 우리에게 그저 이모와 같은 분으로 여겨졌더랬다.

 

그분은 절실한 크리스챤이셨는데 전혀 종교성이 없던 이모에겐 예수에 미친 아줌마로 보여졌었고

우리 어머니에겐 정 붙일 곳이 없어 저리 되었다는 연민으로 보여졌기 때문에

어린 우리들도 어른들의 그런 생각들을 기본적으로 가지고서 그분을 바라보고 있던 터였었다.

 

그러나 특별한 공간에서 그분을 통해 듣던 성경 이야기는 그 특별한 공간만큼 

특별하게 내 마음에 그대로 새겨졌었다..

 

그때 나는

"하와 한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죄없는 우리까지 불행해져야 하나요?"

"선악과 자체가 없었다면 죄도 생기지 않았을텐데 왜 그 나무를 두셨을까요?" 질문을 했었고

그분으로부터 그당시로는 납득할 수 없는 억지같은 하나님 사랑에 대해 변호성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이야기에 '예수'라는 단어가 수시로 언급되어 있었기에

나의 질문 세트에 그 예수가 그 자리에 답으로 안착하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그 세트에 함께 늘 존재하게 되었고

그 후 거의 사십 년이 지나서야 나 개인의 인생에서는 확고부동한 답을

그 예수로 찾게 되었다. 

 

보통사람들보다 유난히 작고 볼품없어

그분이 성경에서 나오는 삭개오 이야기를 해 줄 때

오빠와 나는 서로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웃을 정도였지만 

그분이 양쪽에 오빠와 나를 끼고 성경 이야기를 해 줄 때에는 입은 입대로 따로 놀 뿐

눈은 그분의 마음과 함께 어떤 아름다운 꿈 속을 헤매는 것 같이 보였다..

그때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아 ! 저 모습을 보고 이모가 예수에 미친 여편네라고 그랬구나'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 안에는 이모의 그 자극적인 폄하의 말과 내 어머니의 연민성 생각이

저 아줌마의 말을 그대로 들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낳았고

그래서 나 나름대로의 방어벽을 쌓아두고 있었다.

그리고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골라서 자꾸 하여서

그 질문을 해결 못하는 그분의 모순된 모습으로 그분의 이야기를 밀쳐내 버릴 분명한 명분을

내 스스로 가지고자 했었다.

그러나 그 숨겨진 악의성 질문 하나하나에 너무도 순박하고 진실되게

또 정성스럽게 꿈을 꾸는듯한 표정으로 답을 엮어나가는 그분의 모습에

나는 나의 유치한 방어벽을 스스로 무너뜨려버렸다.

그것은 골탕 먹이려고 던지는 질문을 받아 정성껏 설명하려는 그 아줌마를 보면서

죄스런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미안한 마음과 죄스러운 마음에 도리어 더 열심히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경 이야기에 빠져들고 말았다..

 

어렸을적에 내 안에 이중적인 악함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은

장본인 중에 하나가 바로 땅딸이 아줌마라 부르던 그 아줌마였다..

  

그분에게 구원이란 그저 죽을 수밖에 없는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났으니

우리가 죽고나서 가게 되는 하늘나라..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다 갚으셨기에 갈 수 있게 된 예수께서 계신 하늘나라에서

그분과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자신과는 달리 남편은 키도 크고 아주 잘 생기셨다고 늘 자랑하셨다.

경찰 공무원인데 경장이란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신 분이라 했었다.

지금은 떨어져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분이 찾아 올 것이며

또 유명대학 법대에 다니는 동생이 성공하면 그땐 자신의 고생은 끝이라 하셨다.

 

하지만 어린 우리는 알고 있었다..

남편의 매질에 못견뎌 아이를 두고 야간도주 했다는 사실과

유명 법대에 다니는 동생 공부를 시키고 있지만 동생을 만나러 가면

동생이 전혀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

 

그분에게 구원의 희망은 꽉 막힌 괴로운 현실에서 숨통을 트일 수 있는 유일한 출구였다.

 

그분을 통해 들었던 성경이야기가 내 가슴 속에 복음의 기초 씨앗으로 뿌려졌음을 나는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러나 꼭 그분의 탓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예수를 통해 인류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은 

그분의 실제하는 사랑의 선물이라기 보다 고통스러운 삶에서의 탈출구로서의 도피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여

구원에 대한 꿈은 인생의 비겁자들이나 할 일이라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내 오랜 믿음에는 구원에 대한 생각은 거의 없었다.

단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진실만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까지가 내 믿음의 뿌리 부분이 되는 기본기였다.. 

                             

구원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나의 믿음은

더이상 감출 수 없는 실제하는 존재로 태어나게 되었고

이제껏 모호하기만 하던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적어도 나에게는 절대 부인할 수 없는 실제하는 진실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있게 이야기 한다.

성경의 주제와 핵심단어는 '구원'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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