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살아보니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사랑에 있었다.
그 사랑은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던 어린시절
학교 도덕시간에 배운
꼭 그대로
네 가지 종류의 사랑이었고..
그 사랑에 얽히고 엮이면서
내가 사는 것인지
그 사랑들을 배신할 수 없어 사는 것인지도 모르게
사랑이라는 이름이 되어
나로 이제껏 살 수 있게 했다.
나는 순간순간 화약고였으나
그 화약고을 허무하게 터뜨리지 않고
지금껏 무탈하게 견뎌온 것은
내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바로 그 사랑들 때문이었다.
난 머리가 그다지 명석한 편이 아니어서
계산할 줄 몰른다.
그래서 가슴이 움직이는 대로 산다.
가슴이 움직이는 대로 사니
사실 잔잔해 보이는 내 가슴 속은 늘 좌충우돌이었다.
그리고 어설픈 포장이 더 초라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초라해지지 않기 위해서 날 포장하지 않았다.
사실..포장하기를 포기한 상태처럼 자유로운 상태는 없다.
그 자유로움에다
감성이 이성보다 한 발 앞선 위험한 성향이 합세하여
나는 수시로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려야 했었다.
좋아서 죽을 것 같았고..
슬퍼서 죽을 것 같았고..
가슴아파 죽을 것 같았고..
행복해서 죽을 것 같았고..
허무해서 죽을 것 같았고..
외로워서 죽을 것 같았고..
고독해서 죽을 것 같았고 ..
우주라는 공간에 누군가에게 불리워져
무한한 침묵 속에서 대기하고 선 것 같이 두려워 죽을 것 같았고..
내게 죽음은 삶과 분리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였다.
죽음을 생각하기에 삶이 더 가치로운 것이 되었고
죽음을 생각할 수 있었기에 마지막 피할 길을 두고 사는 것처럼
삶에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그리고 더더욱 죽음은 내게
더 이상 포기할 수 없는 나의 자존심의 얼굴을 드러내게 하여
내 영혼의 모습을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게 하였다.
여러 사랑의 관계에 엮이어 있는 나의 죽음은
내가 내 사랑들에게 줄 잔인한 고통의 선물이 될 수밖에 없음에
나는 사랑들을 위해 살아야 했고, 사랑들은 나로 살게 하였다.
그래서 사랑은 모두
善을 낳는 섣불리 뭐라 단언할 수 없는 에너지 자체가 되었다.
나는 늘 내 감정에 지극히 충실한 화약고였으나
그 화약고 핀을 뽑지 않고 무던히 살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받았던 소중한 사랑을 .. 내 심장의 하늘에 별로 띄워 놓고 사는 까닭이었다.
내 심장의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오늘도 나로 내 생명에 불을 지피고 있다..
내 심장의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은
살아보니 내가 인지하던 사랑의 크기 만큼 빛나는 것이 아니라
본디 그 사랑이 가지고 있던 사랑의 에너지 만큼 더 밝게 변함없이 빛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내 가슴에서 변함없이 밝은 별로 떠 있는 우리 주님의 사랑을
간접적으로 늘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살면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사랑에 있어서도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리 연연해 하질 않는다.
굳이 설명하고 확인하고 확인받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가치를 지닌 사랑이라면
보이지 않는 우리 주님의 별이 그토록 밝고 빛나게 늘 떠 있는 것처럼
그에 비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늘 그자리에서 제 빛의 크기를 드러내며 떠 있을 것이니까..
사랑은 선한 것..
사랑은 사람을 살게 만들고 ..더 세워주며 ..더 삶을 굳건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사랑은 만져지는 것도.. 보여지는 것도 ..아닌 .. 그것을 내게 만드신 분의 에너지 자체였다.
그 사랑은 정직하고 가난하여
심었으면 반드시 싹을 내는
건강한 마음의 밭을 소유한 이들만의 몫일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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