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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1/5

요즘 나의 생각 ..

요즘 내 눈은 단순해지고 있다.

 

지금은 생각도 못하는 일이지만

살림만 살았을 때는 먹는 음식에 유난을 떨었다.

 

본디 나는 입맛이 아주 까다로워 

약간의 차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투자하는 편이었다.

김치 냉장고에서 익는 김치맛이란 생김치도 아니고 익은 김치도 아니고

탈을 댈 수는 없지만 김치 특유의 살아있는 맛을 도저히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베란다에 항아리를 두고 김장 김치를 어느 정도 익혀

김치 냉장고에 넣어서 먹었었다.  

그런데 제 아무리 베란다라지만 완전 밖은 아니어서인지 너무 빨리 익는 바람에

또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또 고안해 낸 것이

아파트 1층 화단가 구석에 항아리를 묻어두고 먹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알고는

나도 따라 항아리 하나를 묻는 것이었다.

김장한 것 중 일부를 내려다 담아두고는

적당한 시기에 꺼내 먹으리라

마음 먹고는 기분 좋게 뚜껑을 닫았다. 

 

그해 겨울.. 시어머님 심장 수술을 받으셨고

약국도 정신없이 바쁜 시절이어서인지

늘 항아리 묻어둔 화단가를 지나다니면서도 

내가 묻어둔 김치 항아리 존재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싶지만 그때는 거짓말같이 정말 완전히 잊고 말았다.

다음 해 여름날 화단가에서 누군가 궁시렁 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 

돌아온 일요일 아침 .. 그 항아리 정리를 위해 몇 가지 장비를 가지고

화단가로 가면서 왠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뱀이 들어가 죽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엽기적인 생각도 들고

그 안 상태가 썩는 냄새가 나면 어쩔까 싶기도 하고 ..

진짜 겁나는 마음으로 그 항아리를 열고 비닐을 들어 올렸을 때는 

너무도 부피가 헐렁했다.

냄새도 그다지 심하지도 않았다.  

다 삭아버려 건더기 보다 물이 많이 고여있을 뿐이었다.

 

지극히 당연하여 깨달음이라 할 수 없는 것이지만

나에겐 어떤 사실이 생생한 진리로 와닿았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

내가 벌린 일은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해결된다는 것 .. 

또 한 가지는 ..

세월이 지나갈수록 겉치례적인 것은 삭고 아주 본질적인 것만 남는다는 것 .. 

 

요즘 우리 큰 애가 아주 널널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수능점수 발표날을 기다리며 ..

그래서 집안 일을 거들게 하고 있다.

진공청소기를 돌리기.. 때로는 아침 설걷이 .. 화분에 물 주기 ..

미키 목욕 시키기.. 세탁기에서 세탁물 꺼내 널기..등

 

점점 도수가 심해지는 거 아니예요?라 은근히 불만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요즘 기본적인 자기 생활의 모든 것을 실제로 느껴 보게 하기 위해서

사실 난 교육적으로 아이에게 시키고 있는 중이다.

 

집안 구석 구석의 먼지를 걸레로 닦으면서

늘 정리된 상태는 누군가의 수고로 그 상태가 이뤄진 것이라는 사실 ..

그리고 사람이 머무는 곳에는 계속 청소하지 않으면 더러워진다는 것과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도 자기에게서 빠진 머리카락으로 남을 불쾌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 ..

음식은 거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많은 수고로움을 거쳐서 나온다는 사실 ..을 느껴보게 하려는 뜻에서이다.

 

어렸을 적엔 그렇게 정리도 완벽하게 하던 아이가 어른보다 더 바쁜 생활로

자기 방 정리도 습관적으로 하지 않는 아이가 되고 말았다.

 

이제서야 아이에게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하겠는가란 질문에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모든 교육은 모든 자연스러운 생활 안에서 모두 배울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생활 안에서 배운 것에서 시작하여 점점 구체적인 것으로 알아가는 과정을 거쳐가야 하는 것이었다.

생활하면서 어떤 지식의 필요성을 느끼고 난 후에 그 지식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었다.

지식 습득의 빠르기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지식이 생활에서 연계된 샬아있는 지식인가가 중요한 관건이었다.

 

수학을 선행시키기 위해서 .. 영어 실력을 올리기 위해서 ..

아이들 책 읽을 시간을 희생시켜가며 학원에 학원을 보낸 것이

요즘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 되고 말었다.

 

며칠 전 .. 약국에 급하게 나가면서 아침 설걷이를 아들아이에게 부탁했다.

"어떻게 하는데요? "라는 기가 막힌 질문을 들었다.

세제를 스폰지에 묻혀서 닦지.. 그 나머지 것은 네가 이리저리 봐가면서 찾아 정리하면 돼..란

대답을 해주면서..

자기가 먹던 컵.. 자기가 먹던 도시락을 한번도 제 손으로 씻게 하지 않았던 

나의 교육은 실로 문제가 있었다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늘은 너무도 공평했다.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든 그 환경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그 환경에서 건강하게 살아간다면 

인간 생활에서 필요한 ..

어쩌면 생활에서 가장 기초적이며 바탕이이 되는 건강한 마음의 토양을 ..

소유할 수 있는 기회에 더 쉽게 다가가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토양은 많은 지식을 싹 티울 수 있는 바탕이었고

그 바탕은 다양한 생명을 키울 힘까지 전해둘 수 있는 에너지의 보고였다고 생각된다..

 

뭐든지 어떤 지식이 있어야만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의 패턴에

길들여진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난 정말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는 무지한 엄마였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지식의 거품이 다 빠지는 오십 대를 바라보면서 드는 생각들 ..

그 생각들이 ..

예전 주인의 무관심 속에 반 년의 기간동안 곰삭고 삭아

가장 자기 기본적인 몸만을 남겼던 .. 바로 그 배추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자기 실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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