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

저도 동쪽을 향해 난 창문이고 싶습니다.

이십 년 전 ..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왔었지요.

 

말은 빨랐지만 영 걸으려 하지 않았던 제 아들아이를 업고

이사를 왔었지요.

 

그때 저희 집 부엌 쪽에서 보이는 아담한 언덕은

제가 좋아하는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 소나무 숲은 자그마한 산길로 이어졌었구요.

 

해질녘이면

아이 하나 일 때는 그 아이를 업고

둘이 되었을 때는 하나는 걸리고 또 하나는 업고 그 언덕을 올랐지요.

 

지대가 높아 노을진 하늘에 서서히 어둠이 내리고

하늘에 별과 달이 뜨는 검푸른 하늘이 다시 돌아올 즈음 

내려오는 길에 스치는 저녁바람에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제 기억에 참으로 평화로운 시간의 한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땐 선녀옷을 잃어버려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 선녀의 마음으로 

하늘을 그리워하며 기도를 하노라면 ..

꼭 그때마다 큰애가 그 기도를 끊었지요.

"엄마.. 지금 무슨 생각해?" 라고요..

그때가 바로 엇그제 같습니다.

 

어느날

늘 오르던 언덕 주변에 소나무들이 잘려나가고

황폐해지더니 그곳에 학교가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그 소나무숲 언덕은 저와 제 아이들의 기억속에 존재하는 언덕이 되고말았습니다.  

 

학교의 모든 창문은 동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학교가 그대로 앞으로 걸어 나가면 장산이 나타나고 그 장산을 넘으면

동해 앞바다 해운대가 나올 것입니다.

그래서 해운대 앞 바다에서 올라온 해는 

제가 아침마다 보는 학교 유리창에  한 날의 시작을 알려줍니다. 

 

신새벽 캄캄한 중에 약간의 붉은 기운과 푸르스름한 기운이

동쪽을 향하고 있는 유리에 비쳐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순식간에 날이 밝아옵니다.  

 

저도 동쪽을 향해 난 창문이고 싶습니다.

새 날의 해가 떠 오르는 것을 그대로 비추는 ..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독  (0) 2008.11.23
저는 당신의 한 없는 사랑을 믿습니다.  (0) 2008.11.21
저로 산 제물이 되게 하소서.  (0) 2008.11.18
사랑하는 아버지..  (0) 2008.11.18
저 안에 공존하는 빛과 어두움  (0) 2008.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