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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그림

오늘은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를 세 번이나 쓰다가 구겨버리고 말았습니다.

 

차례차례 던져지는 돌들이 내는 파문과

돌들이 바닥을 치고 올라오면서 함께 따라 올라오는 흙탕물로

종일 제 호수는 뿌여니 하늘과 구름이 담기지 않았습니다.

 

저의 자가 정화기능이 고장난 것일까요?

하늘이 담겨야 그 자가 정화기능이 작동하게 되어 있기 때문일까요?

 

명주실 엉키듯 뒤엉켜버린 생각들로 심하게 울적한 날이었습니다.

 

 

별 것이 아닐지 모르지만 겨울의 한기와 함께 도대체 안정되지 않는 친구의 상황이 그려져

제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그 눈물이 무거워 결국

빛이신 아버지께 기도로 나아가지 못하고 도리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 쳐졌습니다.

 

아버지의 그 친구에 대한 사랑이 저의 사랑보다 못할 것이라 여겨져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그 친구를 보호하실 것을 못 미더워 해 그런 것도 절대 아니었습니다.

단지, 유난히 감성적인 제 마음이 지나치게 무거워져 아버지의 빛에 다다를 수 없어서였습니다.

 

제 마음도 이러한데 그 친구의 두려움은 얼마나 무거울까요.

그러나 그 친구는 그 두려움 속에서 믿음으로 빛을 보는듯 했습니다.

어쩌면 그 만큼 절실하기에 갸날픈 그 빛을 찾을 수 있었고 그 빛만을 의지하고 홀로 외로이

서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저를 감싸 덮어 안으셨던 아버지의 보호막에 대한 기억을

그 친구도 가지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파문과 뿌연 흙에 가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을 제 마음에 담을 수 없어 종일토록 답답했었습니다.

제 심장의 박동과 들숨과 날숨의 소리만 천둥처럼 들리는 날..

오늘은 무덤 속에 갇힌 날이었습니다.

 

무덤속에서 건져내 주실 뿐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 뿐이신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잉크처럼 검푸른 물 속에서 저를 구원하여 주실 분은 단 한 분 뿐이라는 것을 제가 산 날동안 알게 된

진리였습니다.

제 손을 아버지를 향하여 뻗었으니 그 죽음에서 건져 주시길 간구드립니다.

 

 

언제쯤이면 저의 눈물이 무거워 아버지의 빛을 타고 날아오르지 못하는 날이 없게 될까요?

언제쯤이면 제 아무리 큰 돌들이 무더기로 제 마음의 호수에 쏟아져 내리더라도

그 파문과 흙탕물이 저의 자가 정화작용으로 바로 맑아져

금새 하늘과 구름을 그 전처럼 담을 수 있게 될까요? 

 

피를 나눈 제 형제들에 대한 염려들을 어둠 가득한 구석에서 부둥켜 안고 있기보다

아버지 앞에 그 염려를 내려 놓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있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아버지 앞에 내어 놓지도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도 아버지께 대한 믿음 부족일까요?

 

 

오늘  아버지께 드리는 그림은 어두운 크레파스로 번개치는 듯한 선들로 가득 채워진 그림에

형광색 � 줄이 그어진 추상화입니다.

미운 그림이지만, 이 땅에 발목잡혀 있는 당신 딸의 그림이니 불쌍히 여겨주시기 바라며

오늘 받은 도화지를 부끄러운 마음으로 반납하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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