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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하나되게 해 준 선물

남들은 여러 벌의 갑옷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에겐 한 벌도 없었지요.

그들이 가진 갑옷이 많이 부러웠던 만큼 저는 초라했었습니다.

 

남들의 갑옷에 달린 물고기 비늘같은 층층의 껍질들은

햇빛을 받으면 반짝거려 화려하게도 보였습니다 

그래서 비와 땀에 젖어 몸에 붙는 저의 옷이 더 남루해보였습니다.

 

갑옷을 입은 이들은 말을 타고 달렸습니다.  

그들이 말을 타고 달려나갈 때

옆에 서서 구경하던 저의 눈썹과 머리엔

땅에서 일어난 흙먼지로 하얗게 되었습니다.

 

 

저에겐 갑옷이 없어

잡초의 날카롭게 날선 잎사귀에도

내 팔이 베여 실같은 붉은 선에 피가 맺혔습니다.

힘있게 달려 나가던 말이 없어 

흙먼지 뒤집어 쓰며 사람들의 발길로 난 길로 내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내겐 나를 보호할 갑옷과 내 발이 피곤하지 않게 할 말이 없어

이런 고달픈 길을 가는 것이려니 여기며 자포자기 하며 걷던 길...

 

땀에 젖었던 옷 바람에 말리고

흙먼지로 색깔조차 희미해진 신발, 개울물에 씻어 말려 신고 가는 길에서 만난

낮은 눈높이에서만 보이던 수 많은 들꽃들과 이름없는 풀들의 싱그러운 냄새들... 

가는 길이 고달파 시내에 발 담그고 땀 식히며 바라보던 파란 하늘 위에 구름들... 

 

흙이 더 이상 더럽지 않고, 이름 모를 잡초들도 반갑게 될 즈음,

땀냄새가 더이상 부끄럽지 않고, 지나가는 잠자리들이 정겨웁게 될 즈음,

난 더이상 화려한 갑옷을 못 가져서 스스로 초라하게도,

비와 땀에 젖어 달라붙게 된 제 옷이 남루하게도 생각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에겐 내 살을 베이게도 할 수 있는 지나치게 건강한 잡초도 부담스럽지 않게 되었습니다.

 

도리어 내 약한 피부조차 보호를 채 하지 못하던 초라한 옷과 

내 의지 아니고서는 한 걸음조차도 공짜 걸음이 없었던 고단한 발걸음이

저로 하여금,

제 마음과 제 눈에 자연을 담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저로 자연과 하나되게 해 준 것은 다름아닌 갑옷없는 맨몸과 맨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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