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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이야기/3

잘못된 충성심

잘못된 충성심이든 바른 충성심이든 그것의 발로는 상대가 있는 사랑에 근거한다. 

하지만 그 사랑도 자신의 온전한 정신과 건전한 사고 그리고 사랑에 대한 순수성의 유무에 따라 

그 사랑의 결과물인 충성심이 바른 것이 될 수도 잘못된 것이 될 수도 있다.

 

남편이 카페의 일로 경찰서에 출두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보면서 마음이 착찹하였다.

화가 나는 것도 아니고, 원망의 감정도 아니고,

못난 동생 나름대로는 집안을 위한다고 설친 꼴이 자신은 물론 집안 전체에 누를 끼쳐 그것을 수습해야 하는 씁쓸한 마음이랄까?

품을 수도 내칠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을 어찌 해결해야 하는 것인지..

  

양의 가죽을 쓴 늑대처럼 사랑이란 가죽을 쓰고 자기 감정적 사치의 한 표현방법으로 사랑을 이용하고 있든지,

아니면 분명 목적을 가지고 말을 타고 달리기 시작하였으나

달리는 과정의 일상이 목적을 잊게 만들어 목적지없는 질주가 되었든지, 

상대를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행하면서도, 상대의 뜻을 고려하지 않는 자기사랑의 실현으로

사랑이란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어버리는 더렵혀진 사랑이란 이름 앞에 서있는 초라한 인간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때때로 통곡하고 싶도록 슬퍼진다.    

 

난 한 번씩 사랑은 날카로운 칼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잘 사용하면 모든 것을 질서의 세계속으로 정리되게 하고 나뉨의 피해를 최소화 시키는 이로운 도구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상처와 눈물을 남기는 참혹한 해를 낳는 도구로 전락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세상의 사랑 또한 온전하지 않아 그 사랑에게도 그림자가 존재함을 본다.

사랑 뒤에 미움, 사랑 뒤에 질투, 사랑 뒤에 소유욕,  

그러나 불완전한 것이어도 그것으로 인해 어느정도 이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온전한 빛이 와서 그 사랑속에 우리가 스며들어

빛이신 예수님의 사방 빛나는 빛을 받아 그림자가 없어지는 때,

그 때 불완전한 사랑의 옷을 벗는 순간이리라.

그 때가 육신의 옷을 벗고 빛이신 예수님과 하나되는 때가 아닐까 싶다. 

 

부족하기만 한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되는 그 영광스런 시간을 원한다고 그리 될 수는 없을 터이고,

그 목적지점을 향해서 나아갈 적에 우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겸손히 자신의 사랑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하나님 사랑이 자신이 속한 조직사랑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채울 수 없는 내적 허함을, 명분을 둘 수 있는 어떤 일에 몰두함으로 그 내적 허함을 덮는 덮개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본디 하나님 사랑엔 관심없고 그 사랑에 관련된 생활이 일상이되어 

그 생활에 젖어 사는 것으로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과연 우리는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과 우리의 대속주 되시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

그분의 진정한 뜻과 그분께서 우리로 알기 원하시는 그 뜻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인지,

이 세상에 존재했고 또 현재 존재하는 그 많은 크리스챤 중에 하나인 우리는 그들 중에서 어떤 모습 어떤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  

가장 순수했고 순결했던 일 세기 때의 복음 전부를 우리가 지금 그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혹시나 우리가 알고 있는 성서지식이 일 세기 때의 복음과 다른 것은 없는지...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이자 율법의 마침이 되는 사랑을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시키냐에 고민하기에 앞서

사랑의 정의가 되는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던 사랑의 거대한 빛에 비추어

나의 사랑을 담는 그릇이 깨끗한 지에 대해서, 그 그릇의 크기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고

나의 한계와 나의 진정한 모습을 깨닫는 것이 먼저이지 싶다.

나의 그릇을 알고 나의 그릇에 맞는 사랑을 담고, 그 그릇 작음에 대해서 슬퍼하며 간구하여 그 그릇을 키워나가는 것이

진정 사랑을 실현하고 싶어하는 사람의 모습일 것이며 진정 겸손한 사람의 자세일 것이다.

나의 사랑의 역량을 무시한 채 머릿속의 사랑을 실천하려 달려나가다 보면

심장없는 사람 무서운 사랑이라는 이름의 칼을 들고 말을 타고 달려나가는 불행한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상태를 '잘못된 충성심'이라 이름 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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