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주변으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나를 대신해 운전을 맡아 주었던 어린 나의 친구가 말을 시작했다.
어릴적에 저 붉은 노을을 해운대 바닷가에서 간혹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아마도 어머니한테 맞을 짓을 해 놓고는
그 매가 두려워 아버지 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을 때였었다고..
마음이 불안하고 썰렁하니 붉게 물든 바다가 더 아름답게 더 감동적으로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고 ...
그 말을 들으면서 고감도여서 차라리 불편하였던 나의 감성센서는
깊이 들여다 보면, 늘 불과 얼음이 함께 공존하는 듯한 나의 주변 환경들로 더 발달된 것일 수 있겠다 싶어졌다.
그 센서는 사랑안에 이기심을, 분노 속에 애정을, 미움 속에 애착들을 감지하여
마음 여린 나에게 늘 전하여 주었다.
그래서 난 늘 피곤하였다.
늘 나의 센서는 말 이전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있었고,
나에게는 현실적으로 들리는 말과 내 센서에서 감지된 말 이전의 마음 상태가 한꺼번에 다가왔다.
어떤 대처도 못한 채 둘을 다 끌어 안고 어쩔 줄 몰라하던 나는
나의 고감도 센서가 때로는 나를 괴롭히는 저주라고까지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살 길을 터득한 것이
말보다 그 말 이전의 마음의 소리에 비중을 더 두고 반응하는 것이었다.
그 마음의 소리는 형체가 없는 것이어서
연민과 사랑으로 일관되게 대하지 않으면 큰 무리수를 둘 수 있는 것이었기에
연민과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 내 안의 나를 깍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내 주변 환경보다 이유없이 더 힘들게 살았다면
그것은 그 웬수와도 같았던 지극히 고감도의 센서 때문이었다.
그 웬수같았던 센서는 나의 양심을 움켜잡고 있었기에 더더욱 어찌할 수 없는 웬수가 된 것이었다.
나의 양심은 늘 그 웬수편을 들어주었으니까.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아버지의 정신세계가 어릴적 나의 우주가 되어
평화로움 속의 외로움과 풍요 속의 가난함과
분노 속에 존재하는 어찌할 수 없는 피붙이에 대한 애정이 나의 불과 얼음의 세계가 되어
아무도 몰래 그것을 고스란히 담고 느끼며 살고 있는 나에게는
그것이 늘 내적의 스산한 바람이 되어 나로 하여금 긴장의 맥을 놓고 살지 않게 만들었다.
사실 난 그 웬수같은 고감도 센서가 먼저인지
불과 얼음이 설키는 아버지의 정신 세계가 나의 센서를 다듬었는지는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센서는 눈에 보이는 이전의 것들을 살피는 눈을 가지게 하였고
조금은 슬프기에 기쁨을 더 기쁘게 기억하게..
조금은 아프기에 아름다운 것을 더욱 아름답게 기억에 담을 수 있게..
조금은 서러웁기에 눈물로 마음의 창을 더 깨끗하게 닦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주변은 어두워졌고 가로등들이 더 밝게 빛나는 시간
새삼스레 그 웬수같았던 고감도 센서가 나를 가르치고 다듬는 선생이었음을 느끼며
아픔은 결국엔 우리의 마음을 키우는 선생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재차 확인하였다.
반나절의 시간동안 내가 지나쳐왔던 골짜기와
스산히 서성대던 언덕들을 돌아 보아서인지 몹시도 피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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