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볼품은 없으나 항상 그분이 입고 있는 옷과 몸의 청결상태는 최상이었다.
늘 겸손한 모습에 나이 어린 내가 그 모습을 당연스럽게 서서 받기에는 미안스러워
나의 눈빛과 목의 자세를 함께 낮추게 하는 분이었다.
우리 약국에서 약국식구들의 점심과 저녁을 책임져 주시던 분이셨다.
알뜰함과 부지런함에 있어서는 내 이제껏 만난 분들 중에 최고였다..
젊은 시절, 남편의 외도와 가출 그리고 노름으로 인한 경제적 여려움 속에서도
새까만 눈망울로 엄마만을 쳐다보며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어린 두 자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게 할 수 없어
이를 악물고 공장으로 공사장으로 닥치는 대로 일해서 두 자녀를 키우셨다고 했다.
가출하고 거의 일 년만에 돌아온 남편이 입고 있는 속옷이 낯설었을 때,
그 순간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고 눈물을 지으셨다.
아주머니가 약국에 계실 때만 하여도 아저씨가 회사 택시 기사를 하셨는데,
툭하면 노름을 하느라 사납금을 맞추지 못하여
부족한 금액을 회사로 입금시키라는 전화를 회사로부터 수시로 받아야 했었지만,
회사에서 퇴출되면 그 무질서한 생활이 더 심할 것을 예측한 아주머니는 어떻게든 돈을 맞춰 회사에 넣어 주었다.
그 아주머니의 두 자녀 중, 딸이 그의 어머니를 닮아 성실하고 부지런하여 열심히 돈을 모았다가
그 어머니의 근심이 있을 때마다 그 근심을 조금 덜어드리기도 때로는 완전히 해결해 드리기도 하였다.
그 딸은 성실한 남편을 만나 아이 둘을 낳고 잘 살고 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해서부터 결혼할 때까지 야근이나 특별 수당을 받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마다 않고
다 찾아가며 번 금쪽같은 돈을 자신의 어머니의 눈물 앞에 아낌없이 내어 준 훌륭한 딸이었다.
그 아까운 돈을 자신의 아버지나 오빠가 그 자신들이 써보지도 못하고 헛되이 날린 돈을 메꾸는데 사용하면서도
그의 어머니처럼 아버지나 오빠를 마음으로 끌어 안고 사는 요즘 보기 드문 효녀이기도 했다.
요즈음 그 딸이 낳은 두 아이를 그 어머니가 돌봐주고 계신다.
조금은 촌스럽지만 늘 단정한 머리와 금방 물 일을 하고 씻은 것같은 손으로 갓 낳은 아이를 얼래고 달래며
약국 앞 시장통을 왔다 갔다하며 서성이신다.
마당없는 당신 집이기에 그 길이 당신의 앞마당처럼 다니신다.
약국 유리에 비치는 그 어머니를 보면, 난 늘 거리의 성자의 모습인양 존경스러운 눈으로 그분을 바라본다.
내 가족들에게조차 내가 주는 물 한 잔이라도 꼭 필요한 음료가 되길 바라고
내 가족들에게조차 내가 하는 말이라도 그들의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의 양분이 되길 바라는
늘 내가 살아있는 나에게는,
자신이 소리없는 거름으로 녹어 내려 자신의 가족들에게 자신이 거름이 된 사실조차 몰라도
그들의 생명을 강건하게 하는 것만 옆에서 소리없이 기뻐하는 그분의 모습은
어떤 면에서는 내가 진짜 배워야 할 부분을 가진 나의 스승의 모습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아무 가치가 없어 보이고
자신이 몇 달을 애써 모은 돈이 남편이나 아들의 사고치고 난 뒤치닥거리의 돈으로 의미없이 써진다 하여도
그 뒤치닥거리용으로라도 써지는 것을 의미로 삼는 그 마음.
내가 아니면 그 뒤치닥거리를 누가 해주겠냐며
청심환 사먹으면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스스로를 달래며
일벌처럼 일을 찾아 돈을 악착같이 버는 그 어머니의 마음의 자세야 말로, 내가 꼭 배워야 할 자세였다.
한 여자로서의 삶은 여기저기 찢어지고 흙먼지 뒤집어 쓴 비닐하우스같을지라도
그 비닐하우스 속에서 자신의 본분을 늘 잊지 않고 크게 욕심내지 않으며
자신의 뿌리 내린 땅에서 진솔하게 살아남은 건강한 민들게 같았다.
그분을 가까이에 두고 뵈면서 자신의 행동 그 무엇이 진짜 힘있는 것이고 가치있는 것인지를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비록 세상적으로는 초라할지 모르는 그분은 내가 살면서 만난 작은 스승의 한 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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