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런 저런 이야기/3

조직의 개념

 

사도들이 활동하던 일 세기에도 회중이 있어
믿음의 형제들이 권면하며 서로 격려하여 영을 서로 세워주었습니다.


일 세기 믿음들이 회중으로 연합되어 있었다고 해서

믿음 생활은 꼭 조직이나 교회에 연합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믿음 생활에서 조직의 필연성을 논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조직에 대해서 순전한 마음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 세기 때의 회중은 순수 복음 자체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때의 회중과 현재의 회중이나 교회를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일 세기 때 사도들에 의해서 세워진 회중은,
조직이란 이름으로의 교리가 없었습니다.
그 교리로 권위가 세워지지 않았으며,
그 교리로 형제들의 신앙을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성령을 받은 이들의 예수님의 말씀을 가진 사도들의 열띤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 회중은 조직의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그에 반해 조직의 개념은 예수님을 핍박하던 이들의 모임에서 그 본색이 나타났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가르치다 못해 이마에 띠를 두르고 손목에 띠를 두를 정도였으며
일상 생활 모든 것을 성경에 나와있는 율법에 맞도록 그들 사회 전체가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조직의 지도자들은 예수를 못박는 날에도

사람들을 가르치며 기도해 주었고 상담해 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점을 유념하여야 합니다.

 

사도들이 처형되었고 믿음들은 민들레 홀씨처럼 흩어졌습니다.
복음이 홀씨처럼 흩어졌지만 조직의 개념은 잡초처럼 자라났습니다.
여전히 성경을 들고 있었고 성경 말씀을 외치고 있었지만 그 안엔 생명이 없었습니다.
그 이후 생겨난 조직들은 복음의 기초들을 가지고 교리를 만들었습니다.
복음의 기초는 땅이 되었고 조직은 그 땅에 눈에 보이는 건물이 되었고

조직의 지도자는 입이 되었습니다.
그 보이는 것들이 땅에 뿌려져 민들레가 되고 그 민들레 홀씨들을

조직의 지도자들은 조직의 개념으로 억압하고 죽이고 핍박하였습니다.
중세의 암흑기 때에도 믿음을 핍박하던 것은 다름 아닌 성경을 손에 든 조직개념들이었습니다.
근대에 들어와서 그 많은 교회들의 조직들이 성경을 들고 순수한 복음에 인간의 사상과
추리들이 섞여 사람들을 옥죄고 조직의 믿음으로 가두어버렸습니다.

 

조직의 개념은 순수한 복음을 덮는 가라지의 사상입니다.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 수직구조의 권위가 필연적이라면 그것 또한 조직 개념의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그 권위가 악의 씨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형태의 교리가 필연적이라면 그것 또한 조직 개념의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그 교리가 진리를 구속하려드는 악의 씨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모이기를 힘쓰며 서로 권면하여 서로의 영을 세워주는 모임과
조직의 개념은 분명코 다른 것입니다.

서로 연합하되 앞서의 조직 개념이 들어가지 않는 모임이
사도들이 권장하던 회중의 개념이 될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 3'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여운 나비  (0) 2007.06.05
사랑하는 아이들아.  (0) 2007.06.03
모든 조직에 갇힌 새들에게  (0) 2007.05.27
친구야. 너 아니?  (0) 2007.05.26
아주 슬픈 꿈  (0) 2007.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