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를 만난 것은 그 아이 다섯 살 때였다.
예민하고 여리고 심성이 보드라운 귀여운 아이였다.
친구들을 데리고 동네를 휩쓸고 다니던 그 아이는 내가 오고나서 처음 일 주일동안은 나만 따라 다녔다.
내가 사는 집을 삼촌집이라 하지 않고 숙모집이라고 불렀다.
가재도구를 사러 시장에 데리고 나가면, 물건의 색깔 선택은 그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곤 하였는데
그녀석은 늘 빨간색만을 골랐다.
한 일주일을 밖에 나가지 않던 녀석은 그 생활이 실증이 났었는지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만, 동네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 와서는 대장노릇을 하는 것이었다.
집은 동네 고양이 몇 마리 풀어 놓은듯 부산해졌고 그 야생 고양이들의 발자국은 여기저기 찍혔다.ㅎ
점심 때 친구들을 몰고 와서는 난감하게 만들기도 했다.
제 먹을 양의 밥 정도를 두고 있는 터였으니 말이다.
난 원래부터 식은밥을 아주 싫어하는 체질이라서 밥이 남아 돌지 않게 하였었다.
요즘 정도의 배짱 정도이면 한두명은 몰라도 대여섯 명 정도의 아이들 같으면 각자 밥 먹고 오라고
내보내겠고만,
그 당시 순진하던 나는 라면 끓여 어린 손님 대접을 해야 했었다.
문제는 우리 조카 녀석은 밥을 먹여야 하는데 친구 따라 라면을 먹겠다고 우겨대니...
우리 어머닌 밥 먹이지 않고 라면 먹였다고 싫어하시고...
밥을 잘 먹지 않아 까탈을 부리던 그 녀석은 별난 주문 다 해내곤 했었다.
김치가 맵다고 보리차에 약간 씻어 주면, 우리 할머니처럼 입으로 양념을 빨아 내고 달라는 주문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런 주문을 받으면 성가시기 보다 이 아이가 나를 엄마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애틋해졌다.
그 아이가 나를 먼저 제 핏줄로 인식하니 그 벽 없는 마음이 나도 그 아이를 그렇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아이가 많이 컸다. 객관적으로 바라보아도 그 아인 참 반듯하게 자랐다.
온실 아닌 양지 바른 곳에서 자란 아이답게 인간적이고 타인을 배려할 줄도 알고 그러면서도
자기관리도 잘하여 제 가족 건사는 확실하게 할 것이라는 믿음까지 준다.
야생화 특유의 자기 향기를 내는 그 아이는 남자 아이이기는 하지만 고운 꽃같은 아이로 자라났다.
세월이 빨리 흘러버려, 내가 의지해도 될 만큼...
어제 와서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어렵단다.
우리 형제들 모이는 곳에 몇 번 따라 다니더니 그리스도인들의 사랑 많은모습들이 인상적이었나보다.
정말 그 아이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어, 그 하나님 방식의 사랑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그 사랑법으로 주변 사람을 사랑하여,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이 행복하게 되고,
그 행복함에서 나오는 사랑으로 자신이 또 다시 행복해지는, 사랑의 도미노 현상들 속에 싸여 정말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어제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람들의 사랑에 그리 큰 믿음을 두지 말으라고...
네가 하는 사랑도 그리 자부하지 말으라고...
오직, 하나님의 큰 사랑에 감사하며 그 받은 사랑으로 사랑을 배워서,
사람들을 정말 사심없는 겸손한 마음으로 사랑하게 된다면,
욕심 없는 가볍고도 담백한 그 사랑이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세월이 내 조카를 내 사랑하는 아들같이 만들어 주었다.
앞으로 펼쳐질 인생 그 아이의 날들이 하나님의 환한 빛 가운데
하나님을 닮은 그분의 자녀들이 누리는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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