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하루 앞둔 날 밤이었습니다.
제 어머니 저를 안고 말씀하셨지요.
시집살이란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 장님 삼년이 지나서야 네 자리가 생기게 될 것이라고요.
그 땐 무슨 말씀인지 몰랐습니다.
살아보니 제 어머니 그 말씀이 정말 맞았습니다.
한 십 년정도 가족의 울타리에 머물다보니 제 자리가 정말 생겨 있었습니다.
아침에 게으름을 떨다가 약국에 늦게 나왔더니 애들 고모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길에 약국 문이 열려있지 않아 놀랬다면서 "몸이 괜찮냐고 걱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도 받지 않아 가슴이 철렁했다며
걱정하는 시누이 눈빛이나 그 시누이를 보는 저의 눈빛이나 서로의 눈빛에는 사랑이 가득하여
서로의 얼굴 보는 내내 미소가 저절로 가득하였습니다.
제 어머니가 말씀하신 그 기간은 나무 접붙히기 기간이었나 봅니다.
이젠 접붙인 자리에 살이 붙어 제가지보다 더 튼튼한 가지가 되었습니다.
너무 과민한 항원 항체 반응을 하여 소모되었던 그 시간들이 갑자기 아까워졌습니다.
그 시간에 서로 여행을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기회를 삼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날 어찌 생각할까하여 예민해지기보다 더 사랑해 드려 믿음을 가지시게 하는데 온 마음을 모았다면.
긴장을 풀고 무엇을 하여 더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다면,
십년 가량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성을 해봅니다.
지나고 보니 우리 모두 다 약함에서 시작된 것이고, 스스로 상처받기 두려워 미리 견재하다보니
사랑과는 거리가 먼 소모전을 하였던 것은 아닌가 생각하여 봅니다.
우리 어머님 고해성사와 같은 말씀
"고양이를 호랑이라 생각하니 호랑이로 보이더라! "
겉으로는 어쩔련지는 몰라도 모두 상처받기 쉬운 영혼들이었습니다.
자기 보호의 옷이 다양해서이지 본질은 약함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어머님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날 선 빳빳한 종이 한장이었지만 제게도 그것이 날카로운 철판으로 보였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 또한 저의 그릇 작음과 새로운 가족인 낯선 어른들의 사랑 또한 진심으로 믿지 못하는 저의 약함이었음을 반성해 보기도 합니다.
그 세월이 이젠 이십 년이 다되어 갑니다.
명절 날 밤샘하다시피 음식을 준비하여도 그 다음날 끄떡도 않던 몸이 요즘엔 몸이 그렇게 따라가질 않습니다.
그 힘 좋았을 때, 서로에게 기쁨이 되어주기 위해 손을 움직이고 마음을 움직였다면 훨씬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애들 고모한테 "요번엔 뭘 맛있는 걸 해 먹을까?"
하면서 우리가 이미 한 혈육으로의 정을 교감해보았습니다.
모두 모두 예뻐해줘야겠습니다.
사랑해 줄 기회가 아직 남아 있을 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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