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땅은 지금처럼 짜임새 있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생물 하나 없이 텅 비어 었습니다.
어둠이 깊은 바다를 덮고 있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서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빛이 생겨라" 그러자 빛이 생겼습니다
그 빛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빛과 어둠을 나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습니다.
아침이 되니, 이날이 첫째 날이었습니다.
2.
"물 한 가운데 둥근 공간이 생겨 물을 둘로 나누어라"
하나님께서 둥근 공간을 만드시고, 그 공간 아래의 물과 공간 위의 물을 나누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공간을 '하늘'이라 부르셨습니다.
저녁이 지나고 아침이 되니, 이날이 둘째 날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첫째 날과 둘째 날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저녁이 지나고 아침이 되니'란 표현이 담고 있는 의미 또한 마찬가지다.
창세기 1장 1절 "태조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에 '하늘'과
둘째 날에 언급된 '하늘'은 동일한 의미의 하늘로 와닿지 않는다.
창세기 1장 1절에 굵직한 그 말씀의 하늘과 땅은
우리에게 인식되거나 인식되지 않거나
거대한 영적 에너지 흐름의 세계로
하늘의 지배와 영향력 아래 땅이 있게 되는 실제하는 에너지 관계의 영역으로 이해함은 어떨까?
에덴동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앞에서 아담이 아닌 이브를 꾀여낸 사탄은
어둠도 어둠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가 있어야 그 어둠을 실제하는 에너지 영역으로 드러날 수 있기에
사탄이 이브를 통해 아담까지 엮어서 그들의 미래의 후손까지 그들 생명의 바탕이 되는 시공의 세계에서
어둠의 실제 왕좌를 취할 요량이었던 건 아닐까?
태초에 빛으로 하나님의 모습과 형상으로 드러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 맞먹는 자리로의 등극?
으로의 이해는 무리일까?
하지만 이 추리로 대체 사람이 무엇이 관대 이토록 사랑하십니까?라 표현된 성구가 떠올려지며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의 천지창조에서 아주 특별하고도 귀한 그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같은 맥락에서
여섯째 날 창조된 동물들조차 생명 유지에 필요한 본능 이상의 욕심과 악함이 없는 반면
명색이 하나님의 모습과 형상대로 창조가 시작 되었던 사람 중에
그녀석들보다 못한 악한 군상을 볼 때,
그 욕심과 악함을 발생시키는 그런 에너지의 세계는
빛을 드러내기 위한 순리의 바탕으로 어둠이이었으나 그 과정을 역행하는 영적 에너지가
그들을 지배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여섯째 날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특별한 공간인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모습과 형상대로 지어짐이 완성되어
죽으실 수 없는 하나님처럼
영의 몸을 입는 단계를 밟게 하셨다.. 라고 이해할 수 있는 근거는
예수님께서 이땅에 둘째 아담으로 오셔서 아담이 이루지 못한 바를 다 이루시고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히브리서 말씀대로
새 아담 자격으로 오셔서 먼저 아담이 빚진 그들 후손에게 매인 죽음의 권세를 당신의 어깨에 둘러매시고
당신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빚을 갚고 죽으시고 죽으신지 삼 일만에 영으로 부활하셔서
당신을 통해 창세전 하나님의 모습과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신 그 뜻의 길이 되어주셨다는 사실이다.
히브리서에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종용하는 말씀은 그것을 더 확실하게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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