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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들 /담아온 글 ...

[스크랩] 물에 대한 사소한 변론/이재훈

 

 

 

 

물에 대한 사소한 변론/이재훈

 

*

침묵도 때론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제 호흡의 표징 몇 자를 남깁니다.

 

 

*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통각이 없는 시간들.

모든 사물은 그저 멀리 있는 상징일 뿐입니다.

 

 

*

요즘은 하루에도 수백 번씩 제 존재가 바뀝니다.

때론 동물이었다가 때론 식물이고

때론 명징했다가 때론 무질서합니다.

나 또한 상징에 불과합니다.

 

 

*

바깥은 너무 빨라서

자꾸 안에만 있게 됩니다.

스스로 사랑하고 스스로 이별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내 걸음의 이류를 모르겠습니다.

다만 술에 취해 찡그린 제 얼굴이

당신의 기억에 남을까 염려됩니다.

 

 

*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말과

위선에 대해 번민합니다.

별은 늘 다르게 보일 뿐입니다.

 

 

*

그동안 숨어 있던 마음의 보풀이

비늘처럼 떨어집니다.

입김을 불면 그대로 내 살들이

냄새를 풍기며 날아갑니다.

비린내가 가득합니다.

 

 

 

* 명왕성 되다 / 민음사, 2011. 8. 1

 

출처 : 冬松
글쓴이 : 겨울소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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