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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이야기/3

시공간 개념의 확장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우주같이 푸른 눈에 비친

인생들이 쌓아올린 과학이라는 바벨탑의 모습은 

그것을 이루어가는 형태적인 면에서

자연과 더불어 이어가고 있는 인생을

자연의 이치와 순리를 체계화시키고 구체화시켜 놓은

동양철학의 사상적 체계와 그다지 다르지 않을 성 싶기도 하다.

 

사실 어떤 편견을 내려놓고 본다면,

영역만 다를 뿐

인생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영역에 관해

예의주시하고 추리하고 적용하고 수정하고 또 적용하기를 반복하여

자체가 가지는 의미를 살피는 가운데 인생들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투지는

어쩌면 동일한 마음에서 시작된 서로 다른 형태의 길일뿐이지 않을까 싶다 ..

그저 모두 인간적 노력에 지나지 않을 뿐일지 모른다..

 

그 모든 것을 우리 이성과 지성을 다해 살피는 가운데

사람을 이롭게 하고 그 기묘막측하신 지극히 높은 분의 영광스러움에 경탄하며

그 영광스러우신 영역으로까지 우리를 초대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결국엔 어떤 이들이 쌓든간에 그저 크고 작은 바벨탑 쌓기와 같다는 생각이다..   

 

 

시공간 개념의 확장은

영원성의 개념과 에너지 개념 

그리고 무소부재 하시고 무소불위 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에 두는 믿음이

함께 다루어져야 할 것이라 생각이다.

즉 그것은,

존재하는 그 모든 것의 시작 되시는 하나님의 영역에서 추리 가능한 영역인데

그 영역은 오로지 한 길만 있을 뿐이었다.

 

길이신 예수 ..

그분께 두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가족관계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영광안으로의 초대를 받은 이들의 눈을 통해서만 보여질

신의 영역 ..

그 영역에서 우리의 인식 아래 시공간의 세계가 허물어지고

실제하는 그 영역이 어슴프레하게나마 보여지며,

 

시공간의 개념은 과학을 기초로한 사고가 아닌

곧 시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음을 보여주셨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셨던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이시며 피조물인 우리들의 구원의 통로가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두는 온전한 믿음의 영역에서만이

그것은 그 신비한 베일을 벗을 수 있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시공간의 우리네 인식 너머 실제하는 시공의 세계가 풀려야

어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공의와 지헤와 능력이 바로 서게 될 것이기에

나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그 믿음의 작은 조약돌 하나만 손에 쥐고서

심오한 과학의 영역인 현대판 골리앗 앞에 서는 격이지겠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인류의 첫조상 아담과 하와에게 불순종의 댓가로 주신 '죽음' 또한

당신의 절대적인 희생을 바탕으로한 공의로운 유보적 보호장치였음이 드러나게 될 것이고,

그리고 불완전한 세상에서 겪는 모든 괴로움들은

이미 그 고통의 근원을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으로 해결하고 난

오로지 우리가 이겨내야 할 마땅한 것으로서

원죄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아 그 땅에서 잠시 있으면 벗게 될 육으로 받는 

저주 아래있는 자연의 폭풍우요 소나기요 폭염이요 회오리바람이요 폭설이요 우박같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스런 세계 안에 존재하는 그 시공간의 영역속으로 들어간다면

기억도 나지 않을 모진 꿈 속의 한 순간같이 되고 말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말을 일고 눈에 감사의 눈물로 화답하게 될 것이다.

 

비록 우리가 욥의 고난 앞에 서게 된다 하더라도

양심이 있는 우리라면

그 고난으로

당신의 한 몸에 인류 전체의 죄와 사망의 권세를 지고 죽으심으로서

그 암흑의 세계로부터 온 인류를 구원해 내시고, 모든 구원의 길이 온전히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앞에서

이땅에서 당하는 도대체 연유를 알 수 없는 고난과 아픔은 

산불이 나는 데서 탁 탁 튀어오르는 하나의 작은 불똥과도 같은 것임을 깨닫고

신음하는 우리의 입을 막고 말 것이다.

 

시내산에 올라갔던 모세가 사용한 시간과 시내산 아래 모였던 무리들이 기다렸던 시간의 갭 ..

지극히 주관적인 시각이겠지만 성경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시공간 안으로 불려올라갔었던 모세..

우리 인생들의 삶과 죽음의 바탕이 되는 시공간 영역이 하나님의 기억 속에 저장된다면

그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는 시공의 영역과 우리 인생들에 속한 시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역학관계  .. 

 

에덴동산 한가운데 있었던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그 열매.. 

생명을 계속 유지하게 하는 나무와 그 열매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열린 실과 그리고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나무의 실과

그리고 첫인간 부부..

법 아래 순종으로 균형과 평형으로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유지하며 그곳의 주인으로

그 땅을 다스릴 수 있었던 그들 ..

균형 ..  그리고 법.. 그리고 불순종 ..

생명나무 열매를 더이상 먹고 죄인으로 영원히 살게 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생명나무가 있는 동산으로부터 추방될 수 밖에 없었고 ..

추방되기 전에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약속 .. 씨에 관한 약속 ..

뱀의 후손은 여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나 여자의 후손은 그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란

희망적 예언 ..

추방됨 .. 땅의 저주를 받음 ..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엉겅퀴가 가득한 땅에서 소산을 얻을 것이고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있게 될 것임과 죽으면 땅으로 돌아갈 것임을 그들의 불순종의 댓가로 받음 ..

제사제도를 통해 대속양의 의미와

대속양의 피뿌림을 입는 장소가 가지는 성소 안에서의 의미와 구원의 형태

예언의 성취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의 탄생 그리고 그의 죽음 그리고 영으로의 부활

아버지의 영광 안에서 하나되심.. 모든 구원의 길의 완성 ..     

하늘 시온이 세워짐.. 예수님의 씨뿌림의 비유 .. 일 세기 때의 이른 비 성령의 역사..

알곡과 가라지가 모두 함께 자라는 이천 여년이 넘는 공백기 .. 예수께서 당신의 자리에서 일어나심..

알곡과 가라지를 가를 추수꾼의 등장 .. 늦은 비 성령의 역사 ..추수꾼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증거

알곡이 하늘로 거둬지는 시기와 .. 마른 뼈들이 서로 맞춰지는 에스겔서의 환상의 실현 ..

구원에 속한 깊은 비밀에 속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광스러우신 하나님의 가족관계로 안으로 들어감..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들 ..하늘 예루살렘에 거룩하게 서 있는 성.. 하늘 시온 ..

살아서 구원받는 무리인 하늘 성소 .. 예수 그리스도를 맏형으로 하는 하나님의 가족들 ..

죽어서 하늘로 차례로 부활되는 하늘 예루살렘 백성들 ..

천년동안 거룩한 성시온에서 나오는 진리의 물로 씻고 회복되는 하늘거민들 ..

새하늘의 완성 ..   

 

나에게 있어 이 성경 말씀의 바탕이 되고 있는 성령의 시공간적 세계는

우리네 인생들이 소비하고 있는 시공간과 다른 영역이란 생각이다.

 

어떤 광활한 '거울'의 세계 ..

 

성경말씀이 성령 자체로서

어쩌면 우리 인생들을 비추며 또 우리의 모습을 담고 있는

살아있는 유기적 관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의 얼굴에 점을, 비춰지는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서 찾으려 하면

보이지만 손으로 그 점을 찾아내려면 전혀 다른 세계에 다다른 것같아 도저히 찾아낼 수 없고

포기하고 떨어져서 다시 보면 다시 보이는 .. 그런 신비한 거울 .. 

그래서 난 성경말씀 자체는 어떤 세계로 인식하고 있다.

 

진실과 사실을 담고 있는 문자들의 조합으로 조사하면

실체의 세계에 절대 다달을 수 없어

오직 진실한 믿음을 통해서만 그 문자 너머의 세계를 볼 수 있는

그 성경말씀은,

살아계신 성령의 세계 자체이시란 생각을 나는 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

그 보혜사 역시 하나님의 거룩한 에너지의 세계이듯 

성경말씀 또한 깊이와 폭을 다 헤아릴 수 없는 에너지의 세계라고 나는 감히 이해하고 있다.

 

이 에너지의 세계를 그래도 멀리서나마 실체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공간의 개념을 확장시켜야 한다고 본다. 

그 확장은 말씀의 주체되시는 분께 두는 완전한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일테고..

 

서로다른 시공간의 통로이자 연결고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 예수이시다.

영원이란 시간을 소유하신 분께 흡수되어 그 분 안에서 그분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역학관계..

그런 의미에서 그 옛날 에덴동산 한가운데 있던 생명나무는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는 신실한 독생자 예수님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