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바닷가였던가
커다란 까만 고무 튜브 위에 걸쳐져 있다가
튜브가 뒤집히며 물에 빠져버렸다.
수면위 하늘과 수면아래 뿌연 물 속을 오르내릴 때 그 웅웅거리는 낯선 세계의 소리와
허공 속에서 점점 얼어붙는 것같이 어둔해지는 몸동작으로 인한 낯선 두려움 속에 가두어지던 기억..
그때의 그 느낌, 채 소리도 되지 못한 소리의 기억은 너무도 선명하다.
그땐 울 수가 없었다.
소리지를 수도 없었다.
울거나 소리지를 수 있는 것도
턱까지 차오르는 두려움이 물러나고 난 후에야 가능한 것이라는 걸
난 그때 이미 알게 되었었다..
순간이 멈춰진 무한한 시간 속에 내팽겨쳐져 시간을 이탈한 것 같았다.
숨막히는 고통이 그렇게 그렇게 계속 이어질 것같은 두려움
그 두려움이 진짜 두려움이 되었었다..
물에서 건져올려져 모래바닥에 눕혀지고 난 다음
내 눈에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 구름이 지나가는 것이 보일 때
그때서야, '아.. 이젠 살았구나! '라는 여유로운 마음이 생기고 나서야
난 마음껏 소리 내어 울 수 있었다.
그때처럼 꼭 그때처럼
수면 위 아래를 오르내릴 때의 느낌 그대로
느껴질듯.. 손에 닿을듯..
그러나 결국 느껴지지도 닿지도 않는 괴로움에 울 수도 없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질식되어 죽을 것만 같다.
아니 솔직히 내 머리가 자기 역량을 못이겨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다..
우리네 인식 너머의 시공간의 세계
그 시공간의 세계에서 보면 우리 인생들이 함께 사용하고 있는 시간개념은
한계 지을 수 없는 거대한 공간을 가르는 한 줄의 미세한 거밋줄같은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의 주인이시자 근원이 되시는 우리 하나님께는
사람에 속한 그 거밋줄에 그어진 미세한 점같은 시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시간이
당신의 시공간의 영역 속에 거대한 나무의 한 가지에 매달린 잎사귀에 점같은 영역이고,
우리 인생들에게 흘러가버리고 마는 시간일지라도 그 어느 시간도
그분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아니하는 한
그분께는 영원히 존재하는 진실 자체의 에너지로 담기는 것이기에
그 순간은 영원히 그분 안에서 살아있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온전히 바쳐 이루어내신 구원의 통로가 완성된 이후로
구원을 이룬 자들에게는
우리네 육신의 죽고 사는 자체는 사실 큰 의미는 없지 싶다.
시간은 생명의 씨 자체가 되신 둘째 아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원죄 아래 있는 그 모든 생명들에게 그저 바람처럼 달리는 개념일 뿐일지도 ..
우리네 인식체계의 그 허술함과 온전치 못한 지식과 관념들의 공해 속에서
이땅에 진리 자체이시고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속한 구원의 은혜를 아는 데
요구되는 유일한 것은
감사한 것을 감사하게 여길 수 있는 정직하고 가난한 마음 뿐이라는 사실 앞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자비하심에 가슴이 먹먹해 질 뿐이다..
이땅에 존재하는 진리에 제대로 접근된 과학지식이 커지면 커질수록
하나님의 영광은 더더욱 드러나고 사랑 아래 있었던 인류는
자기의 발을 드러낼 수 없어 그분의 영광 앞에 엎드러지고 말 것이다.
그때 믿음으로 그분의 영광스러운 가족관계 안으로의 초대를 기쁘게 받았던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아버지의 영광 안에서 해와 달처럼
아버지의 영광 안에서 환하게 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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