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도행전 15장 20절의 야고보의 결론적 사견은
모세의 율법에서 언급된 우상과 음행을 피하고, 그리고 피를 먹지말라 라는 율법지시 사항을
그 당시 믿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다시 강조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라는 것이다.
알다시피 이 회의에서 안건이란,
모세의 율법이냐 VS 예수의 믿음이냐 이라는 두 가지 성질의 것이었다.
즉 모세의 율법 중 중추적 역할을 하는 어떤 큰 법들,
예를 들어 살인 금지나 도적질 금지나 안식일을 꼭 지켜야 하는 십계명 명령들이 아니였다는 것이다.
또는 고기를 피와 함께 섭취하는 것을 금기하는 그 밖의 율법 준수사항이나
혹은 더 특별히 중요시되고 필수적인 나머지 율법 조항 중 몇 가지를 끌어내어
이것들을 이방인 신자들에게 계속해서 지키라고 강조하는 중이 아니라는 것이다.
야고보는 믿음이 온 후에도 변하지 않을 몇몇 율법의 연장선을 소개할려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이런 법으로써의 율법의 효력만기를 초월하는 어떤 특별한 율법을 생각에 두고
야고보가 이러한 결론적 사견을 내 놓았다면, 필히 그는 큰 실수를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만약 야고보가 율법의 재 구성을 염두에 두고 그래서 율법 중 피를 금기하는 법이 그리도 필수적인 사항이라 여긴 나머지
위의 결론을 내린 것이라면,
그는 틀림없이 더 중요한 살인금기나 안식일 지킴, 부모공경, 등 십계명의 모든 법들도 나열했을 것이다.
또한 어떤 동물이 깨끗하여 먹을수 있고 부정하여 멀리 해야 하는지 나머지 율법을 들먹였어야 했다.
자 한번 야고보의 말을 분석해 추리해 보자.
야고보는 우상과 음행(불법적 성행위) 과 목매어 죽인 고기와 피를 언급했다.
여기에서 그는 목매어 죽인 고기와 피를 멀리 할 것을 따로 따로 언급했다.
이점을 한번 분석해 보자.
야고보가 만약 율법 조항중 피를 생각하고 이 말을 했다면,,, 피와 관련된 율법조항이 그리도 신성하여서
그에 해당하는 피에 관한 율법효력을 지속적으로 연장 시키고져 이 말을 율법조항에서 끌어 내었다면,,,
그는 동물의 피와 관련된 그 밖의 모든 상황들을 나열 했어야 할 것이다.
즉,
목 매달아 죽인 고기뿐 아니라 사고로 죽어서 그 피가 노출 되지않은 동물들,
또한 병으로 죽어서 피가 제대로 그 육체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경우들,
그 밖에 유대인들의 관례상 무수한 피와 관련된 금기들이 그들 전통으로,
거의 율법과 같은 요구 수준에서 준수되어 왔던 것들을 언급했어야 했다.
여기서 야고보는 "피체 먹지 말라" 라는 율법에서 금기시하는 법을 다시 소개할려는 것이 아님을 증거한다.
그 회의에서 야고보가 내린 그 결정은
그 당시 이방들에게서 보편적으로 퍼져있던 어떤 행위들을 염두해 두고 언급하는 중이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었보다도 간과하지 말아야하는 요소는
그 때의 회의 분위기는 위에서 말한 모세의 율법이냐 혹은 예수께 두는 믿음이냐가 관건이였다.
이 말이란 율법 중 어떤 법이 다른 율법 조항들에 비교해서 더 중요한 나머지,
믿음 후에도 지속적인 구속력을 발휘해서
그 법만은 계속 존속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만약 이런 관점에서의 야고보의 발언이였다 추론한다면 아마 그 회의는 수라장이 되었을 것이다.
이점에서 바울은 회의 초기에 그의 증언으로써
그 당시까지도 율법이냐 혹은 믿음이냐 라는 선상에서
애매모호했던 온 사도들의 불분명했던 견해에 일침을 가했다.
이에 베드로가 동의했고 또 그의 증언에 이어서 야고보가 전적으로 긍정하고
위 성구를 자신의 결정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렇다면 야고보의 위 말은 무었을 염두해 두고 한 결정이였을까?
이방인들의 일상생활인 우상숭배 행위들 이다.
일반적인 과거 우상숭배 행위들
그 당시 거의 모든 이방사회 구성이란 신을 중심으로 세워졌다.
시람들의 정신과 마음속에는 신의 축복과 보호라는 개념이
그들 생활의 중추적 비준으로 세워졌던 것이다.
이방인들의 신 숭배행위들의 잔혹함과 부패함이란 이루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미 그들의 역사를 통해 혹은 성서속의 이스라엘의 이방숭배 유입으로 인한
그들의 인성 폐허를 통해 익히 알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이방 신 숭배의 잔혹함과 부패 뒤에는 항상 이들 신자들의 살인적인 욕심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신의 축복과 보호라며는
그 어떤 잔혹한 희생적 숭배행위를 치루고라도,
그 어떤 부패한 숭배행위를 마다 하고라도
자신들의 욕심에 희생을 다 내 주는 이 숭배행위들로 채웠던 것이다.
즉 욕심은 곧 우상숭배라는 것이다.
한가지 실례로 우리는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패한 음행을 떠 올릴 것이다.
그들은 이방신을 유입하여 산당을 산속 깊숙한 곳에 세워놓고
그들 남녀 모두 숲속으로 들어가 그릅 섹스로 우상행위를 한 것이였다.
우상숭배란 이전 글에서 간단히 정의를 내린것 처럼
자신의 축복을 기원하기 위해 그 숭배의 대상 앞에서 자신을 내 주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하는 가치교환을 의미한다 했다.
과거나 현재나 이방들에게 축복의 의미란
자기 가족성원이라는 풍성한 출산과 그 가족들을 위한 물질적 지지 그리고,
보호적 차원으로써의 신의 손길을 요구하는것이 주 요소들이다.
이러한 자신들의 가족 수의 대량출산과 물질적 축복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나라들의 신들을 도입하기 까지 한 것이다.
즉 우상 숭배에서 출산의 축복과 연결된 신당 섹스가 필수적인 행위들로 유입화 된 것이었다.
이 신당 섹스란
이미 그들의 제사직에서 거룩히 신성시 되고
신과의 접촉에 필수적인 고조의 흥분을 위해서 피를 사용했다.
신은 축복을 위해 희생의 상징인 피를 원한다 라는 잘못된 관념속에서
치루워지는 극단적인 행위들이 각 나라마다 난무했다.
이처럼 이방들의 신이란
1) 다산을 의미하는 순수하고 평화롭고 아름답게 꾸며지고 제작된 예술적 차원으로 추켜 세워진 섹스행위와
( 이 행위는 우상숭배의 주 의식 중 하나였다.)
2) 흥분의 고조를 위한 희생의 피의 남용이 각 나라마다 조금씩 틀리지만 거의 동일시 되어 의식화 되었다.
특히 음행, 즉 섹스행위는 신도들 모두가 참여해야하는 공동요소로써
이는 신을 중심으로 그 앞에서 이루워지는 남녀간의 결합이라는 화평을 의미하며
곧 이 남녀의 평화로운 섹스결합은 곧 출산을 의미했다.
이와같이 그 시대에 그 나라안에서 벌어졌던 우상숭배행위를 기억 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그리도 매번 음행의 덫에서 해어 나오지 못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성경의 많은 부분들이 이방종교를 음녀로 칭했는지도 이해할수있다.
.
이와같이 자신의 피를 이 우상 행위들을위해 사용 했고 또 동물의 피로 대신하기도 했다.
혹은 자신의 피부를 일부러 해하는 자학행위들로 피를 내는 행위들도 허다했다.
또한 이 피를 가치로 여기는 이방신의 요구에 따라 동물을 바칠때
피를 빼지않고 산 채로 불에 던져 굽거나 혹은
뜨거운 물에 삶거나 하여 그 피와 함께 동물의 온 육체를 이방신에 바치는 행위들이 일반화 된 것이다.
심지어 필요하면 동물이 아니라 인간희생들이 사용되었다.
좀 더 큰 희생이 필요하다는 이방 신들의 요구하에 자행된 것이다.
(여기서 이방신이란 말 못하는 형상들이 아니라 이 신을 만들어낸 인간으로된 이방 제사장들을 의미한다.)
이처럼 이방나라들의 신 숭배란
부패한 음행 의식에 동참하고
희생의 피의 남용에 동참하고
그리고 피와 함께 희생된 동물의 고기를 함께 먹는 일에 동참함으로
그 우상숭배에 참여 했음을 자신의 양심에 충족으로 찍는 것이다.
야고보는 이러한 이방들의 일상생활화 된 우상숭배 행위들과 관련된
요소들을 염두해 두고 음행과 목매어 죽인 고기와 피를 언급한 것이다.
즉 우상숭배의 의식생활들과 관련을 끊으라는 것이다.
만약 야고보가 내린 결정이 단지 이미 존재했던 율법의 강조를 위해 언급된 율법조항의 재 구성이였다면
바울이 고린도 회중에게 보낸 편지와 불일치 한다.
즉 야고보와 바울은 또 다시 토론으로 불거져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 회중에게 보낸 편지 중 우상의 재물을 먹는것에 대한 그의 견해를 피력했다.
여기서 그 당시 우상의 재물이란 피를 빼지 않은 고기를 뜻한다.
그리고 거의 모든 시장에서 이러한 우상에 바쳐졌던 고기들이 성행하였다.
시장에서 이러한 과정을 거친 고기들은
우상숭배의 의식을 위해 이방사람들에게 팔기 위한 목적이였거나 혹은
일반 식용으로도
혹은 우상숭배에 참여한다는 목적으로도 즉 신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라도
이들 이방인들은 이 고기를 구입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우상에 바쳐진 재물이란 아무것도 아니라 라는 견해를 소개했다.
그 재물이 피를 뺐던 안 뺏던 상관없이 혹은
그 동물이 우상에 바쳐져서 이방 신의 축복이 묻어있던 없던 상관없이,
예수를 믿는 신자들의 눈에는 그져 음식인 고기 덩어리 라는 것이다.
하지만 양심이 예민한 형제에게는 아직도 이런 고기를 취한다는것이
곧 자신이 우상에 참여 했다는 그 만의 믿음으로 자신의 양심을 죄에 가두는 일이 발생할 수있으므로
극히 조심 하라는 것이 그의 취지이다.
자 생각해 보자.
사도행전 15장의 결정이 야고보가 만약 율법의 언급을 의미한 말이라면
상대적으로 바울의 편지는 야고보의 결정에 반대하여 죄를 범하라는 격려가 되고 만다.
바울의 취지는 모든 음식이란 단지 음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상에 바쳐졌던지 피를 빼지 않은 불에 태운 혹은 , 삶은 고기라든지 묻지 말고 먹으라는 것이다.
왜 묻지 말라는 것인가. 모르고 먹으면 죄가 아니니 묻지 말라는 것인가?
과연 바울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살짝 빠져 나가는 방법을 신자들에게 유도하는 중인가?
그럴 수 없다는것을 우리는 잘 안다,
묻지 말라는 이유는 우리 믿는 신자들의 양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타인의 연약한 양심과 이방사람들의 오해 때문이다.
즉 그 음식을 취하는 당사와는 모르고 먹든 알고 먹든 이제 죄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 당시 정상적인 신자들은
이미 우선은 율법에서 그리고 그 어떤 피나 우상숭배에 사용된 재물에서
그리고 불법적인 음행의 행위에서 해방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간단한 재료들을 검토해 볼때
그 회의 당시 야고보는 우상숭배 의식과 관련된 음행, 목 매어 죽인 고기, 피의 남용를 언급했던 중이였다.
야고보는 이방 우상숭배자들의 생활 깊이 파고 든 의식들에서의 양심해방을 위해서
음행(불법적인 성 행위)과 목 매어 죽인 것과 피를 언급했던 것이다.
야고보는 율법의 재 활용을 추천한것이 아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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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라는 숭배적 정의란
일단 동물을 합당히 죽이는 과정에서 "땅에 흘려" 지므로
동물의 생명이 마지막으로 소멸되는 그 순간때 하나님에게 그 피를 상징적으로 돌려 준 것입니다.
즉 "동물의 영이 다시 땅"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죽이는 과정으로 즉 상징된 피 흘리는 과정을 밟아 주므로 ,,
생명과 죽음이라는 상황의 전이를 하나님만의 권리로 돌려 드립니다.
이미 이 과정을 거친 후의 동물의 피는 물질일 뿐 입니다.
더 이상의 가치를 소유할 수 없다는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이 그 생명과 죽음의 권한을 가져 가셨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흘려진 동물의 피를
식용으로, 의학용으로 또는 물감으로 등등,,
인간 주변에 필요한 곳에서 사용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가르치는 피에 대한 교리란,
마치 과거 이방 종교들이 행한 잔인한 피의 과대 남용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들 여증들은 피를 신성케 한다는 목적하에
오히려 무서워하고 신격화 하여
그 피 교리 앞에 사람생명을 바치는 미개한 잔인성 살인교리로까지 남용한 것입니다.
이들의 피 교리는 동물적 미개함에 그 근원을 둔 우상숭배 행위 입니다.
이들은 이 미친 동물적 교리로 스스로를 자학하는 행위인 수혈 거부까지
그 피 교리 제단위에 자신을 바치는 우상숭배 행위일 뿐 입니다.
사랑이 철저히 배제된 이 미개하기 짝이없는 동물적 우상숭배에서 해방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것이 가능 합니다.
"서로 사랑하라" 는 법 아래에서 모든것이 자유 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모든 속박하는 법으로부터 해방을 가져 오셨습니다.
이제 미개한 숭배방식인 종교의 미친 교리들에서 자신들을 놓아 줄 때가 왔습니다.
이제
첫 번째 숭배 방식인 종교적 숭배방식이 허물어지고
두 번째 숭배 방식인 영(뜻)으로 숭배하는 시간이 왔습니다.
두 번째 숭배 방식인 진리로 숭배하는 시간이 다시 돌아 왔습니다.
하나님의 뜻은(영) 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그 분의 뜻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의 보내신 자 예수를 믿고 서로 사랑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두 번째 숭배 방식은 완전한 자유를 의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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