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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1/5

영원한 이별을 눈 앞에 두고서..

내가 사는 곳.. 반송

이십여 년 전에 시어른들이 될 분들께 인사를 드리러 오면서 ..처음 들어본 동네였다.   

 

도시고속 도로를 지나고 자그마한 동네가 나타나서 ..

여긴가 싶어 옷매무새를 바로 잡았으나 차는 계속 달리고 있었고 ..

오히려 그때 부터는 아예 시골스런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길 양편에 미나리강이 스쳐지나갔다.

 

"여기도 부산이예요?"라고 남편에게 물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는 질문의 답을 듣고 얼마되지 않아 서서히 한 동네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산이란 도시와는 완전히 분리된 특별한 곳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난 그렇게 반송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해서 이곳 반송에 이십일 년 째 살고 있다.

 

결혼하고 나서 처음 시장을 보면서

이곳의 분위기가 이제껏 내가 살아왔던 곳의 분위기와는 너무도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 용돈만 받아 쓰다 보니 

시장에서 파는 부식들의 일반적인 가격대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였었다.

 

처음 시장을 나간 날..

도라지 무침을 할까 싶어 도라지를 달라고 하였고..

가격을 말하기도 전에 먼저 도라지를 담고있던 시장 할머니는 

일상적으로 파는 가격대의 반의 가격을 말을 하던 내 얼굴을 향하여 

"마수부터 재수없네"라는 말과 함께 담고 있던 도라지가 담긴 비닐 봉지를 냅다 던지는 것이었다.

난 물론 .. 가격의 대중을 몰라서 그런 것이었지만 그 속사정을 그분도 알 리가 없었던 것이다.

순간 그런 모욕은 처음이라 어떻게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죄송해요"라는 말을 남기고 도망치듯 돌아 나오는 길에 ..

뒤에서 옆에 있던 상점의 사람들의 "할매요.. 사람 잘 만난 줄 아소.. 그런 법이 어딨는교 "라고

나무라는 소리가 나를 더 부끄럽게 만드는 것 같았다.

 

물건의 상태가 불량해서 가격만 묻고 돌아나오면 

면전에서 거친 말이 물길 난 곳에 물 흐르듯 나왔기에  

물건을 사려면 물건을 파는 사람에게 묻지말고 내 눈으로 재빨리 살피고 판단해야 했었다.

한동안 시장 가기가 무서웠었다.

 

그래도 한 보름이 지나니 내가 원하는 물건을 사면서도 언짢은 소리를 듣지 않고

시장 사람들을 사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

이곳 사람들은 다양한 환경을 접해보지 않아 생각과 감정이 아주 경직되고 단순화 되어 있어서

거칠 뿐이지 마음이 거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나운 맹수같았던 할머니집도 단골이 되어 들락거리게 되었고 ..

조금 친해지자

그때의 날벼락의 황당함을 말씀드렸더니 "가가 니가?"라며 웃으셨다.         

 

남편이 약사이기에 난 자연스럽게 약국에서의 생활이 일상이 되었고 ..

약국을 드나드는 이웃들이 내 이웃이 되어 산 세월동안 ..

참으로 많은 얼굴들이 내 기억속에 묻혀져 갔다.

  

어떤 경우는 가족 일가 전체가 단골로 지내다보니

그리 멀지 않은 친척처럼 지내는 경우도 생긴다.   

 

 

이젠 남같지 않은 할머니..

거의 매일 약국에 들르시나 전혀 반갑지 않은 할머니다.

그분을 뵙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그분께 약을 팔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다.

영양제도 아닌 진통제와 감기약과 위장약을 그렇게도 부지런히 사 나르시니..

그러지 마시라 하여도 당장 아프니 할 수 없다며 보약처럼 드시는 그분을 뵙는 것이 사실은 괴롭다.

어려운 살림에 그 약값들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기도 하고..

 

여관을 크게 하시던 시댁.. 아주 미남이셨던 남편에게 시집오셨으나..

섬세하고 여린 꽃같은 젊은 시절 그분에게 돌아오는 것은 태산같은 여관 일과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일들로 인한 눈물이었다.

 

의처증까지 있던 남편으로 어느 날 하루 편한 날이 없었고

어머니의 평탄치 않았던 날들로 남자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심을 갖게 된

하나 뿐인 딸은 .. 

독신으로 이제 환갑을 바라보고 있다. 

 

애처로운 새 두 마리 .. 서로 의지하고 사는데..

할머니가 요즈음 예전 같지 않으시다.. 

 

오래 그분을 보아 왔었고 ..

내 친정쪽 어른들의 노환으로 수명이 다 될 때의 상태를 가까이 보아왔던 내 눈으로는 ..

아주 불안해 보였다.

 

그 까다로운 할아버지의 간병을 하며 비유를 맞추며 쩔쩔매며 살 던 때에는 ..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나면 좀 편해질 줄 알았더니 ..

지나고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이제는 나이 든 딸..

엄마보다 여기저기 아픈 곳이 더 많아.

당신 죽고나면 누구를 의지하고 살까싶어 눈을 감지 못하겠다는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에 가만히 눈물이 고인다.

 

할머니는 돈이 생기면 딸의 보약을 지어 먹일 생각을 하고..

딸은 어머니의 보약을 지어 먹일 생각을 한다.

그분들을 보는 것은 아픔이다.

 

고마운 사실은 ..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우리에 대한 믿음만큼

우리가 건네는 약들이 한약이든 양약이든 모두 큰 효과를 본다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우리 식구들을 믿는 믿음이 그 약의 효과를 상승시키고 있다고 나름 생각하고 있다.

 

법이 없어도 아무 문제없이 살고 ..

천 년 만 년 산다해도 이땅에 조금의 더러움도 남기지 않을 

여린 꽃 여린 풀과 같은 자연 그 자체이셨으나 ..

어찌 그리 비바람 피하고 뜨거운 햇빛 가릴 보호막 없이 야생에 내 몰려 사셨는지..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미 말라버린 꽃이 되어

습관처럼 서 있는데 ..

바람은 불어 

가녀린 몸을 흔들고 있고

눈에 촛점은 풀려 ..

촛점은 하늘을 이미 향하고 있다. 

 

은혜일련가..

마음의 짐마저 모두지 못하고

연기처럼 풀어 놓고

눈은 허공에서 자맥질한다. 

 

"엄마! 왜 그래..

 난 어떻게 살라구..

 조금만 더 살다가 ..조금만 더 살다가 ..

 나랑 같이 가! .."라고 붙잡는 딸의 절실한 안타까운 마음을

 헤아릴 마음의 주인은 이미 맥을 놓고 있고..

 

 "내 저거 두고는 눈을 못감는다"라고 안타까워하던

 그 마음마저 힘없이 놓아버린 ..

 이미 말라버려 ..

 서 있는 것은 생명력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고사되었으나 오직 습관이 되어버려 서 있는 것처럼 된 할미꽃은, 

 이제 이 세상의 무거운 짐으로부터 해방되기 시작하고 있다.

 

이제 또 기억 속에 묻혀져 그리워질 얼굴이어서

아침마다 이리보고 저리보고 한다.

그때마다 속으로는 눈물이 고인다.

차마 앞에서는 속내를 드러낼 수 없어

보통 때처럼 마주하지만 ..

돌아서는 모습에 자연스레 스미는 눈물을 억제할 수 없다.

 

함께 마주한 세월이 그렇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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