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영화엔 늘 교회나 믿음의 식구들이 가볍게 혹은 진하게 등장한다.
믿음의 가변두리에서 방황하며 믿음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께 접근이 되지 않고 겉도는 신앙인들의 모습..
가볍게 지나가는 그 장면들에서 예전 나의 신앙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기에
그들의 나름대로의 열심이 결국 형식적인 신앙에 머물고 마는 한계의 갑갑함을 도리어 아픔으로 느낀다.
영화 '박하사탕'은 '오아시스'처럼 머릿속에 남는 것과 가슴에 담기는 것이 다른 특징이 있다.
어릴적 학교 앞에서 설탕을 녹여 주물로 된 모형틀에 부어 칼이나 큰 물고기나 작은 하트 모양의 사탕을 팔았었는데,
설탕을 녹인 물을 주물로 된 틀에 부으면 나중에 그곳에서 식혀져 노랗고 딱딱한 설탕사탕이 나오는 것처럼 ..
배우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는 머리에 남고,
가슴에 담기는 이야기는 머리에 남은 이야기와는 별개의 세계가 남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영화는 주인공의
"이십 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라는 절규와 함께 달려오는 열차에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무슨 곡절이 있길래 이십 년 전의 동료들이 모인 자리에서 저렇게 제 정신을 놓은듯,
방향감각을 잃은 새가 두려움에 미쳐가는 것처럼 저러는 것일까라는 무거운 마음에
숨을 죽이고 영화에 나는 몰입해 들어갔다.
영화는 철로를 달리는 열차가 자주 나왔는데 그것은 역방향의 시간을 달리는 열차였다.
그의 본래의 인간성이 변질되었지만 선하고 지극히 감성적인 마음의 기운을 버릴 수 없는 한 남자의 일생을 더듬어
종착역인 선하고 지극히 감성적인 이십 대 초반의 순수하던 청년의 때로 인생의 열차를 거꾸로 서서히 돌아고 있었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 이 영화는 내가 아주 두려워하는 사람의 현상을 다루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착하고 여리디 여린 사람이 그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겪으면서 자신의 본질을 잃어가고 변질되어 가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본질이 한 번씩 드러날 때마다
그 괴로움을 덮고자 자신은 이미 그때와 다름을 행동으로 더 스스로와 주변 사람들에게 더 적나라하게 확인시키는 모습들..
주인공에게 만일..
평생 잊지 못하고 있었지만 결코 돌아갈 수 없었던 이십 대의 첫사랑인 그녀가
그의 인생에서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가 그렇게까지 막가는 인생이 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하게도 광주사태 진압군으로 투입되어 실수로 여리디 여린 여고생을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고
자신의 손으로 죄없는 이의 목숨을 앗아가게 된 그 사실을 스스로 용서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은 자신의 첫사랑이 그의 손을 보고 못생겼지만 착하게 생겨서 그에게 끌렸다는 고백과
충돌되면서 자신은 영원히 그녀에게 돌아갈 수 없는 존재로 스스로 판단하며
이별의 강을 혼자 넘어버린 것이었다.
만일 그의 인생에서 그녀가 없었다면, 자신이 돌아갈 수 없는 세계가 없었기에
그가 가진 순수함과 감상적인 선함의 세계와 함께 있었던 그녀을 잊기 위해 그의 본질적인 모습을 지우려
도리어 자신의 본질과는 다른 모습으로 달려나가는 불행을 겪지 않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난 늘 가지고 있다.
그 강함이란 다른 이와 싸워 이기기 위한 강함이 아니라,
외부의 끝임없는 자극으로부터 자신의 원래의 선함과 순수함을 변질되지 않도록 보존하고 지키기 위해서의 강함이다.
우리가 먼지임을 자복하고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우리 인간의 강함이 아닌 진정한 강함인 사랑으로
타인부터가 아닌 스스로부터 사랑하며 스스로에게 진정으로 관대해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범위를 넓혀 갈 때..
사람은 강해질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강함은 빳빳함이 아니라 유연한 것이며
강함은 외골수가 아니라 다양한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이 진정한 강함은 오직 이 세상의 강함의 진정한 주인이신 우리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분 안에서만 어린 새처럼 여리고 어린 아이처럼 순백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며
분명 그림자가 남는 이기적인 사랑을 넘어서,
빛 자체인 완전한 사랑과 하나되면서 모든 것을 이기며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진정한 강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떠난 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배신당하고 그것에 굴복하며 고운 본성이 변질되어 가는
적나라한 과정을 그린 슬픈 이야기였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어두운 영화였지만 마음에 많은 여운을 남긴 영화이기도 했다.
'살아가는 이야기1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Le Grand Bleu' (0) | 2007.12.24 |
---|---|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 (0) | 2007.11.26 |
영화 '오아시스' (0) | 2007.11.23 |
영화 '크루서블' (0) | 2007.11.07 |
영화 '라스트 모히칸' (0) | 2007.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