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없이 사라지는 밀알이 되어도 저는 이제 더 이상의 원이 없습니다.
그것은
인생의 시작과 끝의 의미를 제 인생중에서 찾았고
그 인생들을 당신의 아들을 바쳐 아들을 통로로 당신의 피조물들을 죽음에서 건져 올리시며
그 아들에게 믿음을 두는 이들에게 당신 아들의 자리에까지 구원하여 올려주신
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본디 이 세상에서 구할 수 있는 보이는 작은 욕심 따위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결국엔 허망한 것이라는 것을 일찌기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의 본질은 바람이라는 것과
운좋게 억지로라도 붙잡아 둘 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과 함께 묻힐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보다 큰 욕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생명의 원초적인 이유와 목적을 알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피조물이며 우릴 만드신 창조주가 계시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창조주이신 그분들에게 우리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문제에 저의 온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저에게 가장 두려운 사실은 우리가 그분에게 버림을 받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나의 생명을 시작하게 하신 이에게로부터 버림을 받는다는 것은
어쩌면 부모에게 버림을 받는 것보다 더 무거운 형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세상 그 어떠한 것은 뺏겨도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서 버림을 받는 것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저에게 있어 진정한 죽음의 의미는 버림받는 것입니다.
그것도 불완전한 이들에게 버림받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이에게 버림받는 것은 완전한 의미의 소멸이라 생각했습니다.
너희가 거할 처소를 마련하고 너희를 데려러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이 2000년이 넘고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은
우리가 그분의 버림받았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하였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건내준 이에게서 버림받는 존재가 가장 불쌍하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뿌리가 뭉개지는 형벌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니까요.
그래서 지레 겁을 먹고 님께 공격용 비겁한 카드를 먼저 들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신들의 싸움에 휘말린 희생자라는 것과,
아담에게 선과 악을 선택하게 하신 이의 관대함은 도리어
죄를 지어보지도 못한 아담의 후손들에게는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이상의 무거운 형벌이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아담의 후손으로서 억울함을 주장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저에게 내 아버지께서는 제 얼굴의 가리개를 벗겨 주셨습니다.
그 가리개가 벗겨지고
우리의 아버지이신 우리의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과 관련이 있으며
그 구원 속에 아버지와 아들과 우리가 함께 하나되는 영광스런 약속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간의 두려움과 자기방어용 비겁한 카드의 질문들은 참으로 가여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깊은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지식의 짧음이었습니다.
바울이 우리에게 영적인 단단한 음식을 먹기를 희망하던 것도 바로 이 까닭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이야기 합니다.
예수의 대속과 그분의 약속을 믿으며 사랑을 실천하면 그것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충분하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믿음의 바다에서 발견한 바는 그것은 틀린 이야기 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어린아이에 멈추기를 권하는 장님의 인도와도 같은 것입니다.
제가 믿음의 바다에서 발견한 진리들은 요한복음에서 언급하고 있는 예수의 세계였습니다.
예수의 세계 안에서의 새창조였습니다.
제가 현재까지 발견한 진리만으로도,
주님의 복음을 위해 제 자신이
이 세상에서 흔적없이 녹아 사라지는 밀알이 된다하여도
그 어떠한 두려움이나 망설임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 마음은 하나님 제 아버지의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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