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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이야기/3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드립니다.

얼마 전에 만나뵈었던,  

유난히 눈이 맑아 슬퍼 보이던 한 형제가 그러셨지요.

 

핍박을 받으면서도 증인 조직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다고요.

 

물론 그 형제는 여증 교리에 문제를 느끼고 그 곳을 박차고 나오셨던 분이셨기에 앞서의 말은 

증인식으로 '양의 성향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과는 다른 성격의 말입니다.

 

즉 스스로 증인 공부를 하고 핍박까지 받으면서 들어오는 사람들에겐 어떤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반대에 부딪치면 반작용으로 자신의 주장을 더 강하게 세우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생각이 주변에 의해 휘둘려지지 않는

자기주관이 뚜렷한 자아가 아주 강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었지요. 

 

어제 형제를 만나고 저는 얼마전 어떤 형제가 남겼던 그 말이 생각났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저의 젊은 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땐 제 시야가 하늘을 향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지만

그 하늘은 하나님 계신 하늘이 아니라 내 사상의 하늘이었음을 지금에서야 깨닫습니다.

그 하늘은 믿음으로 보는 하늘이 아닌

내 사상의 하늘이었습니다.

나의 성처가 나의 생각이 나의 의문이 하늘이고 우주였습니다. 

 

형제께서는 지금은 저의 말에 동의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님께서 받은 상처는 

하나님의 세계 속, 하나님의 무관심으로 생겨난 것이 아닌,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의 세계 속 한계에 개인의 성향들이 부딪쳐 만들어진

하나님의 뜻과는 별개의 산물들이었음을 깨닫게 되시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님께서는 희생일 수도 있는 행동을 옮기기에 앞서 좀 더 알아 보았어야 했습니다.

앞에서 배운 것이 아무리 탄복할 옳은 이야기가 있다 하더라도 끝까지 조사를 해 보았어야 했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하나님의 무관심으로 빚어진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는 거짓 예언자들이 판치는 세상.

그 세상 속

한 희생자일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분노하고 슬퍼해야 할 현실은 바로 다름아닌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 가는 이들에게 그들의 조직의 덫으로

우리의 선한 의도의 발걸음을 가두어버린 조직들이 난무하는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돌보실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우리 주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님께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셨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켜 상처를 입힌 그 거짓 예언자들을 미워하는 마음만을 품은 채

처음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 자체에서 떠나 갈 것이 아니라

...

진짜 왜곡되지 않은 말씀을 찾기 위해

또 새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새로운 발걸음을 떼셔야 하였을 것입니다.  

 

앞으로

단 한번이 아니라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새로운 걸음을 떼어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조급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믿음의 길은 과정이 전부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과정 중에 우리의 마음이 늘 한결같은 사랑과 믿음으로

우리의 욕심없는 깨끗한 양심이 호소하는 대로 빛을 따라가는 그 발걸음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일테니까요.

 

그 마음이면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릴 분명코 진리의 빛안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혹여,

우리가 살아서 그 빛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하더라도

우리의 모든 발걸음을 지켜보셨던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흙으로 돌아간 다음이라도

하나님의 정하신 어느 때에 우리의 그 선한 노력들을 기뻐하시며

우리를 불러 일으키실 것입니다.   

 

형제의 모습은 옛날 저의 모습이기에

우리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형제께서 던졌던 자신의 희생이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한 몸짓이었다면

그 몸짓의 선택이 헛된 것이었다고 아까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열정적인 몸짓과 선택의 순수한 그 마음은 선하신 하나님께 이미 가납되었을 것이니까요.

사랑은 에너지이고 에너지이기에

그 에너지의 원천이신 하나님께로 우리 님의 그 에너지는 이미 돌아갔을 것이란 생각을 저는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을 하면 그 사랑이 향하는 당사자에게 어떻게든 그 감정이 전달되는 자연의 순리대로 말이지요.

 

그 당시 님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진실되었다면,

그때의 형제의 순수한 사랑이 그 당시 하나님께로 향하는 정성의 최선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만족하셔야 합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그 당시에도 그 진가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사랑을 떠나 보내고 나서 가지는 그 마음으로  예전에 가졌던 그 사랑의 진정한 진가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회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형물이지요. 사랑이 표현되는 수많은 면과 면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평면이 아니기에 한 면에서는 흠집이 날 수 있지만

조형물이기에 다시 징과 정으로 다듬으면

어떤 흠집이 남지 않은 새로운 작품으로 다시 탄생하게 되니까요.  

 

하나님께서 우리가 태어날 때 주신 원석은 

본디 우리가 조각할 크기의 조형물에 비하면 엄청나게 커다란 것이어서

우리의 믿음과 사랑만 분명하다면 실수에 실수를 반복하여도

우리가 만들어갈 아름다운 작품에는 별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작품에 들어간 정성과 충절과 순수한 열정은 하나님께서만 판단하실 일이구요. 

 

만일, 형제의 하나님 사랑전선에서 상처를 입었다고  

성경과 예수님의 존재와 그분의 중보의 순수성을 버리고 폭넓고 화려한 인간 사상을 다 품을 마음을 가지셨다면

처음 가졌던 믿음들에 대해서 그때의 열정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사랑은 내가 그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는 뜨거운 열정보다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가 주고 생명을 바쳐 마련한 선물이 무엇인지 그 선물을 가슴에 소중하게 간직하려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를 위한다는 나의 생각과 행동보다 그를 마음 깊이 사랑하는 순수한 나의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 사랑이 나의 행동을 움직인다면

그것은 나의 그를 사랑하는 나의 생각이 나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눈빛과 그의 사랑이 나를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너무 잘난척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글은, 저의 예전 모습의 회고이며 반성입니다.

저의 예전 오만하던 모습의 회고이며 선하시고 인내로우신 내 하나님에 대한 참회의 글이기도 합니다.

 

우리 님의 순수했던 예전그 마음도 진실이었으며  그 진실이 벽에 부딪혀 

에너지 충만한 님의 사상이 곁길로 많이 새어버린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님의 하나님에 대한 그 뜨거운 사랑을 새로 회복하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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