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는 구슬이 자기 의지를 가지게 되면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한다.
자신이 자리한 생각의 중심이 자꾸 바뀌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 답이 너무도 쉽게 나오니
자존심으로 새로운 면들을 자꾸 들이미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생각의 촛점이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기에
자신 속의 질문도 움직이고 그것이 움직이니 답도 따라 계속 움직인다.
답이 나온다 해도 앞서의 질문에 대한 진실된 접근은 없고 또 다시 생각의 촛점이 움직인다.
그렇게 구슬은 잠시도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구른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자신이 궁굼한 것에 대해서도
자신이 확인해 보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접근을 피한 채
그러한 상황의 실제 모습을 제대로 인식조차 못한 상태에서
도리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나선다.
자신의 차에 대한 점검없이 무조건 달려야만 차의 기능을 다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에게 보여지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논리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려는 주장들 앞에서
난 차라리 "우리 함께 나무가 되자"고 말한다.
나무처럼 자기 발과 시야는 한계의 구속에 갇히겠지만,
자신이 고개 돌려볼 수 있는 곳은 죄다 돌아보아
자신의 뿌리내린 그 자리에서 자신의 발과 같은 다른 뿌리들은 어떤 방향으로 향할 것인지에 대해서 결정하고
바라보아야 할 빛 있는 곳은 어디인지를 스스로 확인하여 자신의 머리를 향할 곳을 정하고
비록 그 한계속에 갇히기는 하지만,
차라리 하루하루를 스스로의 최선을 다해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나무들이 되자고 말이다.
구르는 구슬은 남들에게도 힘들게 하지만 회전목마 타는 것처럼
스스로도 중심을 잃게하고 지치게 만든다.
구르는 구슬은, 자의든 아니면 자기 기만에 스스로 속아 넘어간 것이든
결국엔 겸손함을 놓친 이들의 마음에서 많이 나타난다.
모든 것 다 포용하고 싶고, 모두에게 선을 베불고 싶고, 내 안에 모든 사랑을 다 품고 싶고,
내 한 발걸음이라도 실수하고 싶지 않고...
언뜻보면 겸손한듯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아니다.
그것이 겸손이 아니라 교만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마음 안에 자신이 생각하는 선이 가득차서 더 이상의 좋은 것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것은
바로 그것이 자연을 닮은 겸손이 아니라 겸손함을 닮으려는 인간적인 노력이 꽉 찬 상태인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것은 선한 노력이지만 하늘에 비쳐지는 모습은 수준있는 교만의 모습과 똑 같은 모습이리라.
더 이상 선한 것이 담겨지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바쁘다는 것은 이미 우리의 마음이 무엇인가로 가득차서
그것들의 속삭임으로 우리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진정한 겸손은
자신의 생각과 주장에 언제든 수정이 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둔 마음
내가 혹 모르는 것이 있는지, 더 배워야 할 것은 있는지
늘 살피고 늘 받아들일 틈을 열어두고 있는 상태일 것인데
나 역시 그 겸손하지 않은 교만한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모른 채,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며 자만하고 있지나 않는지
두려운 마음으로 오늘도 마음의 거울 앞에 서 본다.
수준 있는 고도의 교만은 스스로도 속을 수 있는 것이므로 지칫하면 스스로도 모를 수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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