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증인조직처럼 세계적이고도 조직적인 그물망 조직을 갖춘 곳들이나,
그렇지 않은 어느 특정 지역으로 교단이 크게 자리 잡은 조직이나,
아니면 교단의 구속을 떠난 Cell 교회나, 개인이나,
규모적으로 크고 작음은 어떠한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단지 우리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어떻게 숭배하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사람들이 자랑하는 세계적이고도 조직적인 그물망 조직은 사람에게는 대단하게 보일련지는 몰라도
그 안에 진정한 영과 진리의 숭배가 아니라면 하나님께는 거미줄과 같은 조직일 뿐일 것이다.
그래서, 전 세계적인 거대한 조직이라는 규모가 하나님께서 직접 관여하고 계시는
조직임을 증명하는 것처럼 은근히 여길 근거는 없을 것이다.
땅속 알뿌리로 연결되어 자라는 감자들,
넓게 연결되 많이 맺혀있는 감자나. 그렇지 않은 감자나
중요한 것은,
그 하나하나 자체가 얼마나 주어진 자연의 진실에 충실한 것인가일 뿐일 것이다.
결국, 조직의 크기 혹은 조직의 필요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소유한 복음이 얼마나 순수하고 건강한 것인지가 관건이지 싶다.
증인조직과 몇몇 조직들은 결국엔 자신들의 조직을 통해서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한다.
증인조직은,
예수께서 왕으로 직접 통치하고 계시는 실존하는 정부.
지상에 있는 유일한 하나님의 의사전달통로라 겁없이 주장한다.
이 조직이야말로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고 생각하기에
나름대로 소명의식을 가지고 여증조직을 알리는 일을 집집마다 전 세계적으로 하고 있다.
그 소명의식이란 조직에 의해서 주입된 사상인줄도 모른고 말이다.
성경을 들고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고 하지만
결론은 여호와의 조직 안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관심자로서 개인연구를 사회받아 기초적인 여증교리를 성서의 가르침으로 교육 받고 나서도
증인이 되기를 거부한다면
그 개인 성서 연구를 사회했던 사회자는 실망감을 갖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때까지의 노력이 헛된 것이었다는 실망감! 바로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보다 조직의 교리를 전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사실은 증인 조직을 떠나
눈에 보이는 머리 숫자가 그 조직의 성장의 척도가 되는 모든 곳에서의 현실이다.
그 숫자가 눈에 들어오고 조직의 규모가 눈에 들어오고
그것을 유지 발전하기 위한 조직의 규례들이 생겨나게 되면 그것은 복음의 방향에서 이탈된 것이다.
변절이다.
이것은 예수님 핏값으로 거저 얻게된 선물인 '구원'을 전함에 있어
우리의 마음이 변절된 것이다.
일 세기 당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너희는 오히려 '강도의 소굴'로 바꾸어 버렸다."라고말씀하시며
성전을 더럽히는 장사하는 사람들의 책상과 의자를 둘러엎으셨던
그 상황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 주께서 일 세기에 복음의 씨를 당신의 제자들로 시작하여 많은 믿음들로부터 뿌리게 하셨고
그 뿌렸던 복음의 씨를 거둘 시점에는
현대의 조직이나 교회들을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시는 것부터
시작하시지 않을까 감히 추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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